186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12월호
[골목 여행] 부산의 아련한 기억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걷다
[골목 여행] 부산의 아련한 기억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걷다
  • 권동환 여행작가
  • 승인 2018.11.21 10:18
  • 댓글 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소막마을
원조 밀면의 100년 역사, 내호냉면
많은 이들이 찾았으면 하는 '우암동 189번지'
우암동 189번지에서 멀지 않은 우암동의 랜드마크이자 부산의 리우데자네이루로 불리는 동항성당 풍경.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우암동 189번지에서 멀지 않은 우암동의 랜드마크이자 부산의 리우데자네이루로 불리는 동항성당 풍경.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반짝반짝 빛나는 광안대교의 야경과 홍콩을 연상시키는 듯한 해운대의 빌딩숲들이 공존하는 ‘부산’은 누구에게나 추억 하나쯤은 있을 매력적인 도시이다. 이렇게 잘 가꾸어진 꽃밭과 같은 부산에도 아픔이 있었단 사실에 대해 무뎌진 것 같다.

역사적 아픔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우암동에서 상처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아픔은 치유의 대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아픔을 여행해보는 것만큼 보람찬 처방전은 없을 것 같다.

[여행스케치=부산] '부산시 남구 우암동 189번지'. 2001년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서 주인공 준석(유오성)이 재판 중 본적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 영화 대사에 나오는 ‘우암동 189번지’는 허구가 아닌 6.25전쟁 당시 감독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피난을 내려와 정착한 동네를 지칭한 것으로, 곽경택 감독 부자의 실제 본적이다. 소막마을(우암동189-1123 외 16필지)과 내호냉면(우암동 189-671)을 통해 과거를 떠나보자.

우암동의 민낯, 소막마을 그리고 피난민
우암동의 또 다른 이름 ‘소막마을’은 소 막사가 있었던 마을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들이 우리의 소를 약탈했다. 지금은 사라진 옛 항구 동항(東港) 인근 간척지에 대형 우사(牛舍)를 지어 소 반출의 근거지로 사용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현재의 우암동이다.

지붕만 막사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소막마을 입구.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막사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지붕을 볼 수 있는 소막마을 입구.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골목의 폭이 아주 좁은 소막마을.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골목의 폭이 아주 좁은 소막마을.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시간이 흐른 뒤, 6.25전쟁이 터졌다. 부산으로 도망쳐온 피난민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잠자리가 필요했고 그들은 소의 집을 개조하여 생활을 시작했다. 실제로 우암시장을 가로지르면 전쟁의 피해 속에서 살아남은 피난민들의 막사들이 최근 근대건축물로 인정받아 문화재가 되었다. 곳곳에 보이는 가옥들 속에서 지붕만 소 막사 형태인 오래된 집들을 통해 그들의 삶터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우암동에 터를 잡은 피난민 후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당시 소 막사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수십 명이 함께 생활했는데, 보자기로 칸을 나누고 가마니를 이불로 삼아 버텼다고 한다. ‘내일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으로 매일을 살았다던 그들 중 한 명이었던 곽경택 감독의 아버지는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소막사는 당시엔 고급 호텔에 속했어. 뒤늦게 온 나 같은 이북 피난민들은 소막 옆에 볏짚으로 만든 ‘초막’을 짓고 살다 불이 나는 바람에 졸지에 잘 곳을 잃어버릴 정도였으니까.” 다닥다닥 붙어있는 낙후된 집과 골목의 폭이 1m도 되지 않은 길을 걸으며 괜한 연민과 숙연함이 느껴진다.

100년 째 내려져오는 손맛
부산의 대표적인 음식인 밀면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냉면의 재료인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구하기 어려우니 구호물품인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던 데서 시작되었다. ‘경상도 냉면’, ‘밀 냉면’이라 불리다 시간이 흐른 뒤 ‘밀면’으로 불린 부산의 이 향토음식의 원조로 평가받는 내호냉면을 ‘우암동 189번지’에서 찾아보았다. 

우암동 189번지에 위치한 내호냉면 입구.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우암동 189번지에 위치한 내호냉면 입구.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내호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내호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내호냉면 메뉴판.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내호냉면 메뉴판.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곽경택 감독의 아버지가 일했던 곳이기도 한 내호냉면의 역사는 100년 전인 1919년 함경도 흥남 내호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쟁 이후 故이영순할머니(내호냉면 창업주 시어머니)의 동춘 면옥을 모태 삼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며느리(故정한금, 현 대표 이춘복의 시어머니)가 1952년 지금의 내호냉면을 개업했을 만큼 사연과 역사가 아주 깊은 가게이다. 

내호냉면은 깔끔하고 번듯한 다른 유명 밀면집들과는 달리 우암시장의 작은 골목 어귀에 위치하고 있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값싼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다른 곳으로 절대 가게를 옮기지 마라는 창업주의 유언 때문에 아직까지 ‘우암동 189번지’에서 동춘 면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Info 내호냉면
주소
부산 남구 우암번영로26번길 17

이전에 먹어봤던 밀면을 잊게 하는 맛
판잣집에서 개업을 하여 앞뒤로 조금씩 터전을 늘려 현재 판잣집 네 채를 합한 규모로 장사를 하고 있는 내호냉면의 실내공간은 아늑하기만 하다. 넓지는 않지만 좁지도 않은 적당한 공간에서 주문과 동시에 삶아지는 면을 기대하는 그 순간이 그저 좋기만 하다. 

기다림 너머 다가올 탱탱한 원조 밀면은 밀가루와 전분의 7:3 비율을 유지하는데 그 식감이 참 쫄깃하다. 한우 암소의 사골과 아롱사태를 넣어 몇 시간동안 푹 고아내어 만든 육수는 짠기 없이 목넘김이 부드럽다. 살얼음 위에 띄어진 붉은 양념장과 살코기 그리고 계란을 힘껏 비벼 무채로 면을 감아 먹는 한입은 정말 묵직하게 맛있다. 

쫄깃한 맛이 일품인 내호냉면. 전분이 많이 들어간 냉면의 색은 밀면보다 어두운 편이다.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100년 세월을 간직한 내호냉면의 밀면. 탱탱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자극적인 양념맛과 짠기 가득한 육수의 맛으로 먹는 줄 알았던 밀면의 진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는 이곳은 부산사람들에게도 특별한 가게다. 밀면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 역사와 원조를 맛본다면 더욱 보람찬 여행을 할 수 있다. 내호냉면에서 100년의 세월을 맛본다는 말은 가련했던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아련한 시간여행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우암동 189번지’를 찾았으면…
‘우암동 189번지’는 억울하다. 산업화 시대에는 인근에 조성된 공장과 항만 등에 유입된 노동자들에 의해 활기가 넘쳤지만, 그 이후 빠른 속도로 낙후되어 현재는 아픈 역사적 증거와 오랜 맛집이 있음에도 소외된 동네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현재 우암시장의 모습.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현재 우암시장의 모습. 사진 / 권동환 여행작가

그래서인지 최근 부산시에서 시간여행자들을 모집하여 ‘피란 수도 부산 유산’이란 이름으로 한국전쟁의 애환과 평화의 소중함을 떠올릴 수 있도록 우암동을 방문한 바 있다. 이처럼 우리의 역사적 아픔을 보고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요즘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동욱 2018-11-22 15:09:17
권동환 작가님,좋은글 감사합니다~^^
부산여행코스에 꼭 넣어야할 장소가되었네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많이 부탁드립니다

공다영 2018-11-21 17:23:53
좋은 정보 감사하니다. 부산하면 해운대만 알았었는데,, 부산여행때 꼭 가봐야겠어요~!

이유찬 2018-11-21 14:32:54
정작 우암동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도 몰랐던 내용이 많네요. 내호냉면은 고향가면 꼭 한번가봐야겠네요 ㅎㅎ좋은 글 감사합니다.

짱빠 2018-11-21 14:05:50
이쁜사진과 좋은글이네요 작가님~~
한번놀러가야겠네요^^

강민준 2018-11-21 13:59:30
저도 밀면 좋아하는데 꼭 가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