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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골목길 여행] 한 권의 책이 주는 위안에 대하여,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골목길 여행] 한 권의 책이 주는 위안에 대하여,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8.11.29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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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과 책방에 고인 세월을 헤아려 보다
노란 고양이가 사는 작은 서점 '나비날다책방'
요일마다 주인이 바뀌는 문화 공간까지
40년이 넘도록 한 자리를 지킨 헌책방 아벨서점. 사진 / 조아영 기자
40년이 넘도록 한 자리를 지킨 헌책방 아벨서점. 사진 / 조아영 기자

[여행스케치=인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다. 헌책에 배인 묵은 종이 냄새와 손때, 탐나는 문장 아래 그어놓은 가느다란 밑줄이 어떤 의미인지를. 날 선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 느릿느릿 떠나는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산책은 마음마저 녹이는 근사한 여행이다.

과거 바닷물이 들어오는 수로가 있었던 마을, 작은 배가 철교 밑까지 드나들어 ‘배다리’라 불렸던 작은 동네. 인천 동구 금곡동의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현재는 가지런히 쌓인 헌책이 반겨주는 책방과 무인서점, 톡톡 튀는 문화공간이 여행자를 맞고 있다.

골목과 서점에 고인 세월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둘러보기 전, 골목에 어린 시간부터 더듬더듬 헤아려 본다. 시작은 개항기 제물포가 문을 열었던 1883년이다. 

중국,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낯선 외국인들이 물밀 듯 밀려오고, ‘인천 드림’을 꿈꾸던 이들이 모여들던 시절. 개항 이후 일본인들에게 개항장 일대를 빼앗긴 조선인들은 인천 동구 금창동과 송현동 일원에 마을을 형성했다.

나비날다책방은 배다리 여행 안내소를 겸하는 공간이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나비날다책방은 배다리 여행 안내소를 겸하는 공간이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서울로 갈 수 있는 외길인 쇠뿔고개을 비롯해 이곳은 조선인들의 거리가 되었고, 학교와 시장 등이 생겨나 북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중심 상권이 남동구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빛을 잃어갔던 배다리 일대에 헌책방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 이후부터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은 책방에 콕 박혀 책을 읽어갔고, 지성인들 또한 저렴한 가격에 책을 살 수 있었다.

현재 배다리 헌책방거리에는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 등 5개의 책방이 운영 중이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현재 배다리 헌책방거리에는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 등 5개의 책방이 운영 중이다. 사진 / 조아영 기자
tvN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진 한미서점. 노란 외관과 주인이 직접 만든 작은 책이 눈길을 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tvN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진 한미서점. 노란 외관과 주인이 직접 만든 작은 책이 눈길을 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헌책방 40~50개가 들어섰던 거리에는 아벨서점과 한미서점, 삼성서림 등 5개의 책방이 남아있다. 여전히 골목을 지키고 있는 헌책방과 ‘헌책 사고 팝니다’등 투박한 글씨가 쓰인 입간판은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도 아득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문이 닫힌 책방을 만나도 실망하기는 이르다. 점포별 운영시간과 휴무일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방문하고 싶은 책방이 있다면 미리 유선상으로 운영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40년이 넘도록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벨서점은 헌책방 고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공간이다. 간판 옆 ‘살아 있는 글들이 살아 있는 가슴에…’라 적힌 문구 일부는 희미해졌지만, 오히려 수십 년의 세월을 버틴듯해 아릿하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을 책들이 서가 분류에 따라 책장에 꽂혀있거나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있다. 

헌책방 고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아벨서점의 서가. 사진 / 조아영 기자
헌책방 고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아벨서점의 서가. 사진 / 조아영 기자

샛노란 외관과 주렁주렁 피어난 풍선넝쿨이 인상적인 한미서점은 2017년 종영한 tvN 인기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졌다. 노란 벽면에는 서점 주인이 직접 만든 조그마한 책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으며, 부담 없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누구나 풍선넝쿨 씨앗을 가져갈 수 있도록 담아놓은 상자까지 주인장의 인심과 온기를 전한다.

Info 아벨서점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7시(일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7시, 매주 목요일 휴무)
주소 인천 동구 금곡로 5-1

Info 한미서점
운영시간
오전 9시~6시(평일은 8시까지 유동적으로 운영, 토요일 2시 이후 오픈, 일요일 오후 12시~오후 6시)
주소 인천 동구 금곡로 9

노란 고양이가 사는 작은 책방과 문화 공간
배다리에서는 헌책방 이외에도 개성 있는 독립서점과 문화공간을 만날 수 있다. 배다리전통공예거리 근처, 옅은 청록색 건물에 ‘조흥상회’라는 글씨가 남아 있는 나비날다책방은 헌책과 새 책, 독립출판물을 함께 파는 서점이다. 주인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면 배다리 여행 안내소 역할을 겸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무인서점으로 운영되는 책방의 대표는 다름 아닌 사랑스러운 노란 고양이 ‘반달’. 책장으로 둘러싸인 공간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먼 곳을 응시하다가도, 손님이 들어오면 지긋한 눈빛으로 반겨주는 넉살 좋은 고양이다. 

배다리전통공예거리 근처에 자리한 나비날다책방. 사진 / 조아영 기자
배다리전통공예거리 근처에 자리한 나비날다책방. 사진 / 조아영 기자
노란 고양이 '반달'이는 대부분 무인서점으로 운영되는 가게를 지키고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노란 고양이 '반달'이는 대부분 무인서점으로 운영되는 가게를 지키고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개인이 운영하는 책방은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밴 공간이기도 하다. 내부를 휘 둘러보면 가장 눈길을 끄는 책 또한 고양이와 관련된 서적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에 살어리랏다’로 시작하는 고려 가요 ‘청산별곡‘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 동명의 별칭을 지은 청산별곡 나비날다책방 주인장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더욱 잘 알고 싶어졌고, 관련 책을 500여 권 넘게 모았다”며 “그러다 보니 이곳 배다리 일대에서 ‘고양이 책방’으로 불린다”고 말한다.

과거 환경단체에서 활동했던 그는 생태와 자연, 인권에도 관심이 많아 함께 큐레이팅한 다양한 책을 선보이고 있다.

주인장이 직접 큐레이팅한 책들을 천천히 살펴보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나비날다책방에서는 고양이 서적을 비롯해 생태와 자연, 인권 관련 서적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나비날다책방에서는 고양이 서적을 비롯해 생태와 자연, 인권 관련 서적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아늑한 분위기를 지닌 책방 내부. 사진 / 조아영 기자
아늑한 분위기를 지닌 책방 내부. 사진 / 조아영 기자

조흥상회 건물에는 이색적인 공간도 함께 자리한다. 매일 주인이 바뀌는 ‘요일가게 다 괜찮아’와 1960년대부터 제수, 생활용품을 판매했던 조흥상회의 옛 물건을 모아 과거 사진과 함께 전시해둔 공간 ‘생활사전시관’이 바로 그것이다. 

요일가게에서는 요일마다 기타 교실, 글쓰기 수업, 번역가 원서 읽기 등을 진행한다. 누구나 수업에 참여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저렴한 가격으로 공간을 대여해주기도 한다. 2층의 생활사전시관에서는 백열등, 열쇠 꾸러미 등 1960~70년대에 쓰인 옛 물건과 과거사가 담긴 사진을 살펴볼 수 있다.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요일가게 외관. 사진 / 조아영 기자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요일가게 외관. 사진 / 조아영 기자
요일가게에서는 매일 기타 교실 등 다양한 강의와 소모임이 열린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요일가게에서는 요일마다 기타 교실 등 다양한 강의와 소모임이 열린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나비날다책방과 요일가게, 생활사전시관은 과거 제수, 생활용품을 판매했던 '조흥상회' 건물에 입주해 있다. 지금도 외관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나비날다책방과 요일가게, 생활사전시관은 과거 제수, 생활용품을 판매했던 '조흥상회' 건물에 입주해 있다. 지금도 외관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Info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옛 조흥상회 건물에 자리한 나비날다책방과 요일가게, 생활사전시관을 아울러 ‘생활문화공간 달이네’로 칭한다. 요일가게 관련 정보는 SNS로 확인할 수 있으며, 2층의 생활사전시관은 주말에만 개방할 예정이다.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나비날다책방)
주소 인천 동구 송림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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