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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2월호
국내외 여행지를 화폭에 담아내는 김인선 화백
국내외 여행지를 화폭에 담아내는 김인선 화백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8.12.26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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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화폭에 담은 한국화가 김인선
“여행지에서 만난 자연과 생명을 놓칠 수가 없어요”
사진 / 박상대 기자
따듯한 한국화를 화폭에 담아내는 명품화가 김인선 선생이 오랜만에 작품전을 연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따듯한 한국화를 화폭에 담아내는 명품화가 김인선 선생이 오랜만에 작품전을 연다고 한다. 내가 백두대간을 탈 때 설악산 구석구석을 화폭에 담아낸 작품 전시회를 본 후 팬이 되었다. 인사동을 산책하던 중 작품전이 열리는 갤러리에 찾아갔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시도하는 진정한 작가. 창조적인 몸짓이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전 김인선 화백과 그림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찾아낸 아련한 추억
글을 쓰는 작가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오래전 설악산 정상 능선에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본 적이 있다. 프로정신도 좋지만, 이삿짐처럼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산꼭대기를 누비고 다니는 화가가 ‘미쳤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전 김인선 화백을 만났을 때,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젊어서는 현장에서 많이 그렸는데, 나이 들면서 현장에선 스케치만 하고, 사진으로 촬영한 것에 상상력을 가미한다”고 대답한다. 인사동 G&J광주전남갤러리에서 마주한 김 화백의 그림 중에는 중국 고비사막이나, 미국 뉴멕시코주 화이트샌드 공원, 중국 실크로드, 한국 설악산 풍경이 여러 편 눈에 띈다. 여행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여행지를 누빈다고 하니, 화가는 현장을 여행하면서 작품을 스케치하거나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화가에게 여행은 필수적인 몸짓이다.

“때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행객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와서 그림으로 표현하지요.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나 풍경,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을 그릴 수는 없지요.”

김 화백은 고향과 아버지에 관한 추억을 그림 속에 자주 담아낸다. 그것을 알아챈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관람객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인선 화백. 사진 / 박상대 기자
관람객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인선 화백. 사진 / 박상대 기자
김인선 화백의 그림에는 토속적인 색채가 많이 담겨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김인선 화백의 그림에는 토속적인 색채가 많이 담겨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김 화백은 소년시절, 아침마다 눈을 뜨면 해남 두륜산의 서쪽 능선을 마주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태양이 아직 산마루를 넘어오지 않은 시각에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소를 끌고 집을 나서면, 두륜산 능선은 어두운 그림자에 잠겨 있었다.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있는 여명을 본 것이다. 그 여명을 그림 속에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공력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해님이 산을 넘어 살며시 고개를 내밀 때, 김 화백은 풀잎에 매달린 영롱한 아침이슬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논두렁과 밭두렁, 야산 숲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주알이 빛나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화가의 길을 걸을 때 소년시절의 그 풍경을 화선지에 담아냈다. 풀잎에 매달린 채 찬란하게 빛나던 아침이슬 그림은 국전에서 특선을 받았다. 아버지가 이른 아침에 소를 먹이러 내보내지 않았다면 그토록 영롱한 아침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붓으로 그려낼 수 있었겠는가!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 가운데 ‘화이트샌드 공원’과 ‘고비사막’ 작품 속에도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떠난 아버지의 그림자가 담겨 있다. 사막에서 오랜 세월 바람에 흩날리며 새겨진 모래 이랑들이 그것이다. 모래 이랑은 먼먼 옛날 아버지가 새로운 씨앗을 파종하기 위해 쟁기로 갈아놓은 밭이랑과 다를 바가 없다. 기나긴 봄날 밭을 갈아놓고 아버지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실 것이다.

화폭에서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을 보다
김 화백의 풍경화 속에는 얼핏 보면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들이 보이지 않는다. 농부나 고승은 물론 새나 사슴이나 강아지 한 마리도 없다. “잘 보면 있을 겁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많은 생명체들이 숨어 있지요.” 김 화백의 장난 섞인 시선을 좇다 보면 실제로 생명체들이 보이고 많은 소리들이 들린다.

다시 ‘화이트샌드’에서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들이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엿보이고, 중국 ‘명사산 월아천’에서는 작은 호수를 바라보며 사색에 젖어 있는 여행객들이 보인다. ‘일출계곡’에선 조금 전에 목을 축이고 숲으로 사라진 고라니들이 보이고, 중국 ‘화염산 고창 산성’에선 막 가로수 사이로 걸어간 고승의 뒷모습이 보인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화이트샌드 공원 모습. 사진 / 박상대 기자
미국 뉴멕시코주의 화이트샌드 공원 모습. 사진 / 박상대 기자
설악산 공룡능선의 아침. 사진 / 박상대 기자
설악산 공룡능선의 아침. 사진 / 박상대 기자
일출계곡에는 어둠과 밝음이 공존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일출계곡에는 어둠과 밝음이 공존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산안개가 유유히 흐르는 ‘설악계류’에선 판소리 명창을 꿈꾸는 수련생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리고, ‘가야동’에서는 사랑놀이에 여념이 없는 산비둘기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금방이라도 다른 산등성이로 날아갈 것만 같은 산안개와 바람에 흩날리는 진달래꽃, 그리고 새순을 밀어 올린 금강송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공룡능선’의 수많은 기암고봉들은 당장 산으로 달려오라고 손짓을 한다. ‘일출계곡’의 하얀 108계단은 김 화백의 삶이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뜬 후에, 그리고 해가 진 후에도 얼마나 경건한 것인지 엿보게 한다. 깊은 산속 산사에서 들려오는 선승의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경이로운 색채를 빚어낸 물감
화가들은 풍경화를 그릴 때 다양한 물감을 사용한다. 자신만 아는 물질로 원하는 색상을 만들어내는 일이 첫 번째 창작이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물감을 사다 그리는 화가는 아직 본인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색상을 창조해내는 일이 진짜 작품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과정이다.

“한창 공부할 때 선배들이 오래전 작품이 색이 변해서 덧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먹물조차 세월이 흐르면 퇴색하고, 본래의 미감을 잃어버린다는 것이죠. 서양의 빛바랜 유화들을 보세요. 모든 물질, 그림은 유한하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어요.”

김 화백은 식물성 천연물감도 사용하고, 황토나 흙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고향 해남의 산기슭에 있는 황토와 동네 뒷산의 규사가루, 먹물 등 여러 가지 물질로 새로운 색깔을 창조해냈다. 검정이지만 맑아 보이는 바위 능선, 새싹이 올라오는 숲속, 이른 아침 막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고 있는 산 능선, 모래사막의 크고 작은 식물들을 표현하는 색감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진정한 창작은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고, 일가를 이룬 작가들의 문장이나 화폭은 경이로움을 동반한다.

‘봉정’이나 ‘공룡’, ‘칠형제’, ‘설악’이란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그림에선 신선들이나 살 법한 바위들을 마주할 수 있다. 거대한 바위가 결코 하나가 아님을 일러주는 수많은 선들, 세모 네모가 주는 조형미, 혹은 기하학적 미감이 시선을 붙잡는다. 모든 그림은 점으로 시작하여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서 면을 이루고, 다시 면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그림으로 탄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저 많은 점들을 화폭에 담는 동안 60을 훨씬 넘긴 화가는 무엇을 꿈꿨을까?

김인선 화백과 인터뷰 중인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김인선 화백과 인터뷰 중인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김인선 화백은 한국화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에 두번 당선되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김인선 화백은 한국화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에 두번 당선되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화가는 그림을 그려서 흔적을 남기는데 나는 역설적으로 흔적을 남기지 말자고 다짐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가슴에 담겨 있던 것들을 비우는 작업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항상 조용하게 살아왔지요.”

김인선 화백은 해남에서 태어나 잔뼈를 키우고, 광주에서 의재 허백련 화백의 화풍을 이은 희재 문장호 화백의 문하에서 필력을 키웠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두 차례 특선에 오르고,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개인전과 단체전 200여 회에 출품하고, 남양주와 서울을 오가며 작품활동과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 화백의 그림여행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번 작품전은 12월 26일부터 1월 6일까지 인사동 G&J광주전남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작품전은 인사동 G&J광주전남갤러리에서 1월 6일까지 열린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작품전은 인사동 G&J광주전남갤러리에서 1월 6일까지 열린다. 사진 / 박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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