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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9월호
[건축 기행]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제주의 건축 이야기
[건축 기행]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제주의 건축 이야기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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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숲 살려 설계된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김중업 건축가의 서귀여중과 소라의 성
예술 품은 특별한 공간…기당미술관‧왈종미술관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제주에는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이 많아 건축 기행 형식 콘셉트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사진은 故 정기용 건축가의 작품인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기존에 자리하던 솔숲을 없애지 않고 건물이 솔숲을 끌어안은 모습으로 설계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여행스케치=제주] 제주에는 아름다운 집들이 많다. 멋진 풍광 때문인지 건축물이 돋보이는 효과도 있다. 이달은 한국 대표 건축가들의 작품 여행이다. 아는 만큼 더 많이 보이고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건축 기행. 건축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집은 100년을 내다보는 공사이다. 그 때문인지 건축가들은 짧은 유행보다 환경과의 조화를 고민한다. 특히 제주에서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를 강조한다. 제주라는 풍경 속에 담은 집의 이야기, 그 속에 담긴 사람의 역사가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감응의 건축가와 기적의 도서관 
제주에는 두 개의 ‘기적의 도서관’이 있다. 서귀포시에는 동그란 것, 제주시에는 삼각형 도서관이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주에서 한달살이 하거나 여유 있는 여행자들은 도서관이나 미술관 한 두 곳에 들르기 마련인데 이 두 도서관은 건축학도들이 꼽는 주요 스팟이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故 정기용(1945~2011) 건축가의 작품이라 그를 기리는 이들의 성지순례 코스이기도 하다.

선생의 건축물에는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철학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전북 무주의 면사무소에 면민들을 위한 목욕탕을 만들었다거나 경남 김해의 故 노무현 대통령 사저를 짓기 위해 사전에 조사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선생은 ‘말하는 건축가’, ‘감응의 건축가’, ‘공간의 시인’, ‘건축계의 공익 요원’ 등 별명도 많다.

제주의 두 기적의 도서관은 2003년 MBC 교양 프로그램 <느낌표> 중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각 지방에 하나씩 설립된 도서관 중 하나이다. 이때 1호로 선정된 곳이 제주도로, 두 곳 모두 정기용 선생이 설계를 맡아 2004년 5월 5일에 개관했다.

그는 늘 그래왔듯이 주민들의 이야기와 필요를 듣고 환경을 살폈다. 그리고 소중한 배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둥그런 형태로 지어졌고, 가운데에는 소나무가 자란다. 이 나무는 원래 있던 솔숲이다. 서귀포에서 이곳을 도서관 부지로 내어주었지만 건물을 짓기 위해 솔숲은 당연히 없애야 하는 대상이었다. 선생은 솔숲을 끌어안은 모습으로 도서관을 설계함으로써 아름다운 소나무숲을 살렸다. 도서관 안에는 자연광과 소나무 그늘이 자연스럽게 드리우고, 그 속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삼각형을 테마로 한 제주 기적의 도서관.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기울어진 삼각형 집체 위에 삼각형 천창이 열려져 있어 장난감집을 보는 것 같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이 둥근 형태인 데에 반해 제주 기적의 도서관은 삼각형을 테마로 하고 있다. 도서관 안에 들어가면 지붕에 뚫린 삼각형 창으로 빛이 들어오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기울어진 삼각형 집체 위에 삼각형 천창이 열려져 있어 장난감집을 보는 것 같다. 새의 나는 모습과 한라산을 테마로 했다고 하는데, 네모에 익숙해진 어른들의 눈에는 어색하기도, 색다르기도 하다.

잔디 마당으로 열린 옆면은 세로 창이 개방적이고, 출입문 옆은 비가 올 때 기울어진 지붕에서 물이 흘러내리도록 하여 작은 폭포가 되도록 꾸민 것이 재미있다. 어린이 도서관인데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 어른들은 여행자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Info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방문 시 독서를 방해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7시(매주 월요일 및 명절 연휴, 12월 31일 휴관)
주소 제주 서귀포시 일주동로 8593

Info 제주 기적의 도서관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및 명절 연휴, 12월 31일 휴관)
주소 제주 제주시 동광로12길 19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故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서귀중앙여자중학교. 층마다 넓게 드리워진 차양이 햇빛을 만나며 그림자가 생기면 차양과 그림자가 독특한 추상화를 만든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故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소라의 성.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김중업에서 소라의 성까지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 故 김중업(1922-1988)은 제주에 몇 개의 작품을 남겼다. 그 중 비교적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이 서귀중앙여자중학교이다. 원래는 제주대학교 농과대학건물로 지어졌고, 대학교가 모두 제주시로 옮겨가면서 지금은 여중 건물로 쓰이고 있다. 사면 모두 다른 이미지, 두개의 주 출입구마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앞뒤로 보이는 교실 창문은 하나도 같은 폭이 없다. 故 김중업 선생이 꽤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측 벽이 상당히 예술적이다. 층마다 넓게 드리워진 차양이 햇빛을 만나며 그림자가 생기면 차양과 그림자가 독특한 추상화를 만든다. 파란 하늘 아래 노란색 벽면은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고, 삼각형 차양 그림자는 검정으로 짙게 드리운다.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인물을 넣지 않아도 아쉽지 않은 포토 스팟이다. 

선생의 작품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한국에서 지낸 날이 얼마 되지 않지만 상당히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그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선생의 일생은 작품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일찌감치 일본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서울대에서 가르치다가 195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여기서 세계적 건축가 르 꼬르뷔제를 만나고 제자가 되었다. 이후 한국에 들어와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이때 제주에 건축물을 지었다.

그러나 1971년에 정치적 이유로 강제 출국 당하고, 해외에서 9년을 떠돌다 1979년에 한국에 들어왔다. 선생은 1988년 5월에 소천하였는데 그 유작이 서울 올림픽공원의 ‘평화의 문’이다. 군부 독재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출국 당하고 군부의 최고 업적이었던 올림픽의 구조물이 유작이 된 것까지 평범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소라의 성에서는 2층의 돌출부에서 떨어지는 필로티 구조를 볼 수 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과거 식당이었던 소라의 성은 현재 북카페이자 여행자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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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의 성에서 내려다본 제주 바다의 풍경.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서귀포의 북카페이자 여행자 쉼터인 ‘소라의 성’은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제주대학교 구 본관과 닮은 데가 있다. 2층의 돌출부에서 떨어지는 필로티 구조와 둥글둥글한 벽면을 보면 그 당시 이런 설계가 가능할 사람이 김중업 선생 외에 또 누가 있었을까 싶다. 그러한 이유로 건축가가 알려지지 않은 소라의 성은 김중업 선생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주대학교 구 본관을 닮기만 했다면 모작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소라의 성 자체가 가진 아기자기하고 놀라운 미학이 있다. 야자수 아래에 그림처럼 서 있는 소라의 성은 직선이 없다. 내부로 들어가면 동그란 벽면이 끊어지고 이어진다. 

아쉽게도 제주대학교 구 본관은 철거되었고, 지속적으로 제주의 여러 문화유산들이 철거되고 있다. 소라의 성 역시 사라질 위기에 있었지만 한동안 리뉴얼을 거쳐 여행자의 품으로 돌아왔다. 소라의 성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옥상에서 보는 전망이다. 절벽 위의 집이기 때문에 제주의 남쪽 바다가 말 그대로 ‘망망대해’이다. 마치 나와 바다 밖에 없는 것 같은 단순하면서도 벅찬 감동이다.

Info 서귀중앙여자중학교
평일 방문 시 수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중앙로 120

Info 소라의 성 
커피나 차는 셀프 서비스로 준비돼 있고 금액은 자유롭게 지불하면 된다. 차량 이용 시 정방폭포 주차장을 이용한다.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주소 제주 서귀포시 칠십리로214번길 17-17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눌’을 형상화한 기당미술관의 조형물. 눌은 제주에서 추수 후 부산물을 동그랗게 쌓아 놓은 것을 부르는 말이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동그란 ‘눌’의 형상이 그대로 드러난 기당미술관 서까래.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기당미술관에 전시된 변시지 화백의 팔레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작품을 담은 작품 
기당미술관과 왈종미술관은 전시작품과 건축물의 어울림이 좋은 곳이다. 기당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으로 제주 출신 재일교포사업가 기당 강구범 선생이 시에 기증한 건축물이다. ‘바람의 화가’ 변시지 선생이 초대 관장을 지냈고 제주 전통 농가의 ‘눌’을 모티브로 건축가 김홍식이 설계하였다. ‘눌’은 추수 후 부산물을 동그랗게 쌓아 놓은 것을 말한다. 실내에 들어서면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동그란 ‘눌’의 형상이 그대로 드러난 서까래가 인상적이다. 

왈종미술관은 관장 이왈종 화백의 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자신이 짓고 싶었던 미술관을 도자기로 빚었고, 이것을 기본 골격으로 하여 지금의 미술관을 완성하였다. 자연광이 비치는 전시실에는 왈종 선생의 밝고 재미있는 작품이 기분을 풍요롭게 한다.

미술관 내에는 수많은 향로가 눈에 띄는데 소라의 성이 식당이었던 시절 사장이었던 故 김철우 선생과의 우정이 담겨있다. 이왈종 선생이 제주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이곳에 미술관을 지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김철우 선생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자 이왈종 선생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향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화가인 이왈종 선생이 가마를 들이고 도예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이다. 왈종미술관과 소라의 성은 이 두 사람의 우정처럼 가까운 거리에 이웃하며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왈종미술관에서는 이왈종 화백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이왈종 선생과 故 김철우 선생의 우정이 담긴 향로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Info 서귀포시립기당미술관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이용요금 성인 1000원, 청소년‧군인 500원, 어린이 300원 
주소 제주 서귀포시 남성중로153번길 15

Info 왈종미술관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이용요금 성인 5000원, 어린이 및 청소년 3000원 
주소 제주 서귀포시 칠십리로214번길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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