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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신정일의 1300리 낙동강 걷기 ⑫] 강을 오가던 나루는 터만 남았어도, 역사는 아직 남아있네
[신정일의 1300리 낙동강 걷기 ⑫] 강을 오가던 나루는 터만 남았어도, 역사는 아직 남아있네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 승인 2019.02.0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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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대교에서 창녕 우포늪까지
달성군 현풍의 비슬산과 곽재우 장군 묘소
낙동강 인근의 자연 습지 우포늪
고령에서 창녕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걷기 구간. 다람재에서 내려다보면 도동서원이 보인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고령에서 창녕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걷기 구간. 다람재에서 내려다보면 도동서원이 보인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편집자 주
평생을 산천을 걸으며 보낸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신정일 대표는 낙동강을 세 번째 걷는다. 지난 2001년 9월, 517km의 낙동강을 걸었으며, 그로부터 여덟 해가 훌쩍 지난 2008년 60여 명과 함께 이 길을 걸었다. 다시 10년이 흐른 지난 2월부터 1년간의 일정으로 ‘우리 땅 걷기’ 회원 90여 명과 함께 ‘낙동강 1300리 길’을 걷고 있다. ‘신정일의 1300리 낙동강 걷기’라는 제목으로 낙동강 걷기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여정을 연재한다.

[여행스케치=고령, 창녕] 강물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흐른다. 겨울에서 봄과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그 세월을 흘러가는 강물은 소리도 없이 흘러서 가고, 그 위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드는 88고속도로의 고령대교(88낙동강교)에 차들은 쌩쌩 거리며 지난다.

대구 달성군 현풍면의 진산인 비슬산
경북 고령군 성산면으로 건너가던 오실나루터는 기능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고 여정은 남동의 사부랑 마을에 접어든다. 제방 너머에서 새들은 날아오르고, 저만치 대구 달성군 현풍면이 보인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고령교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인근의 낙동강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인근의 낙동강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현풍의 진산 비슬산(琵瑟山)은 대구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으로 대견봉(1083m)이 최고봉인 산이다. 산성산(640m), 비파산(360m), 앞산(660m), 대덕산(546m)을 거느리고 청룡산(794m), 삼필봉(168m)을 품고 있다. 산세는 남쪽으로 내려와 대견사지를 지나 조화봉(1058m)과 관기봉(989m)을 일으켜 세운 후 유가면 본말리까지 뻗어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시절 비슬산에는 99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유가사(瑜伽寺), 소재사(消災寺), 용연사용문사(龍門寺), 임휴사(臨休寺), 용천사(涌泉寺) 등의 사찰이 있다.

비슬산에 남아있는 사찰 중 한 곳인 유가사.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비슬산에 남아있는 사찰 중 한 곳인 유가사.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 비슬산이라고 하는데 산꼭대기 바위의 모습이 마치 신선이 앉아 비파를 타는 모습과 같다하여 비(), 거문고 슬()자로 표기하여 비슬산이라고 전한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천지가 개벽할 때 세상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으나 비슬산 정상의 일부는 물이 차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이 있어 그곳의 형상이 마치 비둘기처럼 보여 비둘산이라고 부르다가 비슬산으로 변하여 전한다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포산(苞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들이 놀러왔다가 산을 구경하던 도중 이 산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비슬은 인도의 범어(梵語) 발음을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 것이고, 한자로는 포()라고 해서 포산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높고 귀하다는 의미가 담긴 우리말 이름 벼슬또는 솟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동서원 지나 곽재우 장군의 흔적을 찾다
여정은 오산리 홀개 마을을 지나 다람재로 이어진다. 느티골과 정수골을 사이에 둔 이 재는 그 생김이 다람쥐를 닮아 다람재로 불리는데, 고개를 넘어서면 한 폭의 그림 같은 도동서원(道東書院)이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굉필(金宏弼)을 모신 서원이다.

낙동강가에 자리 잡은 도동서원을 지나면 지금은 흔적이 사라진 개포나루터에 이른다. 이곳 개포와 구곡동 일대에서는 나라 안에 제일 좋은 진흙이 나왔다. 그래서 옛날부터 기왓굴로 이름이 나 마을 이름도 와나루(와진) 기왓굴로 불리고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던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 전경.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던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 전경.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도동서원의 은행나무.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도동서원의 은행나무.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묘소가 있지만, 어느 무덤이 그의 무덤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묘소가 있지만, 어느 무덤이 그의 무덤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802년 통일신라 애장왕 때에 창건한 합천 해인사의 기와도 이곳 개포 일대에서 만들었다고 하고 남대문이나 경주 불국사, 강릉 오죽헌, 안동 도산서원의 보수 때도 이곳에서 만든 기와를 썼다고 한다.

한편 강화도에 있던 팔만대장경이 인천을 거쳐 부산으로 옮겨진 뒤 낙동강 물길을 따라 이곳 개포에 도착한 뒤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다. 그 당시 영남지방의 스님 1천여 명이 머리에 경판을 이고 줄을 지어서 해인사로 날랐다고 하니 팔만대장경에 걸었던 기대가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개포 남쪽에 있는 배쟁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郭再佑) 장군이 왜군을 크게 이겼다는 곳이다. 길게 이어진 제방을 따라가다 보면 구지면 대암리에 이르러 곽재우의 묘를 찾을 수 있다. 곽재우의 묘에는 곽재우와 그 아버지 보재(寶齋) (), 그 할아버지 와성() 지번(之藩), 그 증조(曾祖) 현감 위() 사위 아들들의 묘가 있는데, 묘마다 비석이 서 있다.

무덤 곁으로 올라가자 먼저 온 몇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어느 무덤이 곽재우 장군의 묘소인가 물어보자 묘가 작은 무덤 앞에 곽재우의 비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옆의 것이라는 설도 있고 어느 것이 곽재우의 묘인지 모른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며 갈 길을 재촉한다. 그 당시 전란이 소용돌이 치고 간 뒤 어느 누가 곽재우 장군의 무덤을 기억이나 했을까?

오광대놀이의 본고장과 람사르습지인 우포늪
강이 휘돌아가는 멀리로 율지나루가 있던 율지교가 보이고, 적적한 산길을 넘어서자 합천군 덕곡면 밤머리 일대와 현기리 일대가 보인다. 조선 중엽 이후 낙동강 중류의 최대 나루터였던 율지나루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 농산물의 집산지였다. 전국의 보부상과 장꾼들이 몰려들어 큰 장터를 형성했던 율지나루터에서 경상도 지역에서 성행하는 가면무극인 오광대놀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밤나무가 많으므로 밤마을 또는 율지동이라 부르는 이곳에서 과거 밤마리 장이 열렸다. 기록에 따르면 밤마리 장은 옛 초계군의 북쪽 30리에 있었으며, 고깃배와 소금배들이 와서 머물며 한 달에 여섯 번 장이 섰다고 한다. 개화기의 한국지리교과서였던 <대한신지지(大韓新地志)>에는 강가 나루에 장삿배와 고기잡이 배가 숲처럼 왕래하고 노 젓는 소리와 뱃노래가 서로 어울려 끊어질 사이가 없다고 실려 있다. 밤마리 장은 정기적인 향시(鄕市)가 대규모로 열리기도 했지만, 난장이라고 하여 일정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상거래가 이루어졌다. 1999년 말에 율지교가 만들어진 뒤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작은 배만 매어있을 뿐이다.

자연 늪이자 람사르습지로 보호되고 있는 우포늪.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자연 늪이자 람사르습지로 보호되고 있는 우포늪.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우포늪에는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우포늪에는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율지교에서 우포늪이 멀지 않다. 우포늪이 자연 늪으로 확인된 것은 1983년 식물학자인 정영호 박사에 의해서였다. 20여 년 동안에 걸쳐 과거에 늪이었거나 현재 늪인 곳을 찾아다녔던 정영호 박사는 경상남도의 한 공무원으로부터 우리 지역의 어느 면은 물이 반, 늪이 반이다라는 말을 듣고 바로 찾아갔더니 그곳에 질날늪, 유전늪, 대평늪, 우포늪이 있었다.

우포늪은 창녕군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대지면 등 4개 면에 걸쳐 있는 자연 늪이다. 면적은 170ha로 여의도보다 약간 작은데, 1m를 넘지 않는 깊이에 밑바닥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가라앉은 부식질이 두껍게 쌓여 있다. 우포늪은 지금부터 14천 여년 전부터 형성되었다고 한다. 우포늪에는 34종의 습지식물과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된 가시연꽃, 35종의 부식질과 수초, 350여 종의 담수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우포늪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목격되는 곳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인 고니류와 큰 기러기, 오리류가 있고 겨울엔 희귀새인 노랑부리저어새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여름철새 17, 겨울철새 23종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을 지닌 것으로 인해 19891월에는 국내환경단체들의 노력으로 세계적인 습지보호조약인 람사르협약에 의해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고, 1997년에는 자연생태계 보호구역을 지정됐다. 그리고 지난 2018년에는 우포늪을 둘러싼 13개 마을이 람사르습지 도시로 인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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