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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1월호
[인터뷰] 기순도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제35호, “전통 장(醬)은 우리 음식의 뿌리입니다”
[인터뷰] 기순도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제35호, “전통 장(醬)은 우리 음식의 뿌리입니다”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9.03.22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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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간 우리의 전통 ‘장(醬)’을 담근 기순도 명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만찬에도 올랐던 종가의 씨간장
‘우수 농어촌 식생활 체험공간’ 선정, 명인과 장 담그는 체험 프로그램 운영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자리한 기 명인의 장고지. 사진제공 / 고려전통식품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자리한 기 명인의 장고지. 사진제공 / 고려전통식품

[여행스케치=담양] 미슐랭 3스타를 받은 뉴욕 르 베르나댕의 셰프 에릭 리퍼트와 세계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레스토랑 노마의 셰프 르네 레드제피는 한 명인의 장맛에 감탄했다. 특별한 ‘소스’를 연구하는 유명 셰프와 전문가들 또한 한국에 방문하면 꼭 찾는다는 전남 담양군 창평면의 작은 마을. 기순도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은 이곳에서 48년째 우리의 전통 ‘장(醬)’을 담그고 있다. 

‘명인’이라는 칭호는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20년 이상 한 분야의 식품에 정진했거나 전통방식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 혹은 명인으로부터 보유기능에 대한 전수 교육을 5년 이상 받고 10년 이상 업계에 종사한 이들 중 농림축산식품부가 시ㆍ도지사의 추천을 받아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기 명인은 2008년 ‘진장(5년 이상 숙성시킨 간장)’으로 제35호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됐다.

결혼 후 48년간 전통 장을 만든 기순도 명인. 사진 / 조아영 기자
결혼 후 48년간 전통 장을 만든 기순도 명인. 사진 / 조아영 기자
기 명인은 2008년 ‘진장(5년 이상 숙성시킨 간장)’으로 제35호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됐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기 명인은 2008년 ‘진장’으로 제35호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됐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오직 콩과 죽염, 물만으로 담근 장의 맛
“전통 장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국간장 등 짠맛이 강한 간장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왜간장(일본식으로 만든 개량 간장)은 단맛이 강하고, 소금은 쓴맛이 나는 반면 직접 메주를 쒀서 담근 간장은 깊은 감칠맛이 나지요.”

전남 담양 장흥고씨 양진재 문중의 10대 종부인 기 명인은 1972년 결혼 후 시어머니로부터 장맛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정월이면 어느 가정에서나 장 담그는 풍경이 펼쳐졌고, 긴 시간 장을 만든 이들은 냄새만으로도 그 집 장맛을 가늠했다.

“가을에 햇콩이 나죠. 음력 11월 동짓달에는 이 햇콩으로 메주를 쑵니다. 12월에는 발효를 시키고, 정월(음력 1월)에 장을 담그죠. 모든 과정은 말날(12간지가 ‘오(午)’로 끝나는 날)을 받아서 합니다. 장 만드는 것에는 연습이 없어요. 한 번 담근 장이 1년간 식탁에 오르는 음식 맛을 좌우하지요.”

매해 가을에 나는 햇콩으로 메주를 쑨다. 사진제공 / 고려전통식품
매해 가을에 나는 햇콩으로 메주를 쑨다. 사진제공 / 고려전통식품
중간장은 미역국과 불고기, 각종 조림류에 잘 어울린다. 사진제공 / 고려전통식품
중간장은 미역국과 불고기, 각종 조림류에 잘 어울린다. 사진제공 / 고려전통식품

기 명인의 비법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정성뿐만이 아니다. 장을 담글 때 국내산 콩과 담양산 대나무를 구워 만든 죽염을 쓰고, 167m 깊이의 우물에서 끌어 올린 지하수를 사용한다. 단순하고 정직한 3개의 식자재로 만든 간장에는 감칠맛과 은은한 단맛이 배어난다. 

명인의 손에서 탄생한 간장은 숙성 정도에 따라 청장, 중간장, 진장 3가지로 나누어진다. 숙성 기간 1년 이내의 청장은 농도가 옅어 오이냉국, 콩나물국 등 맑은 국과 나물무침에 쓰이고, 5년 미만의 중간장은 각종 조림류와 불고기, 잡채 등에 잘 어울린다. 5년 이상 숙성해 가장 진하고 감칠맛이 깊은 진장은 전복초 등 보양식을 만들 때 쓰면 좋다.

376년간 대물림된 장흥고씨 양진재 문중의 씨간장. 사진 / 조아영 기자
376년간 대물림된 장흥고씨 양진재 문중의 씨간장. 사진 / 조아영 기자

1200여 개의 항아리가 줄지어 선 명인의 장고지에서는 376년간 내려온 종가의 보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 국빈 만찬에 올랐던 ‘씨간장’이다. 당시 세상에 빛을 본 문중의 씨간장은 외신에서 ‘미국의 역사보다 오래된 간장’이라 특필하며 화제를 모았다. 

“‘간장은 묵을수록 맛이 좋다’는 말이 있어요. 예부터 종갓집은 어느 집이고 씨간장을 보관하는 항아리가 따로 있었습니다. 수백 년 전부터 대를 이어 내려온 간장으로 제사, 명절 등 특별한 날에만 조금씩 쓰지요. 덜어 쓴 만큼 매년 가장 좋은 진장을 더하는 ‘덧장’으로 맛을 유지합니다.”

기 명인이 항아리 뚜껑을 열자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까만 먹빛을 띤 간장이 보인다. 오랜 세월을 덧입은 씨간장은 향취마저 묵직하고 구수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전통과 현재, 훗날을 헤아리다
지난 1월, 문화재청은 콩을 발효시키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장(醬)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했다. 음식으로써의 장과 재료를 직접 준비해 메주를 만들고 발효시키는 전반적인 과정을 포괄한 개념이다. 각 가정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전승되고 있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단체는 인정하지 않는다.

“‘장’은 우리 음식의 근본인 만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습니다. 우리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이 목적인 데 비해 실질적인 방안이 마련된 것은 아니니까요. 지역마다, 집집마다 내려오는 비법이 어떻게 후대에 전해질지 막연하기도 합니다. 주거 형태가 바뀌면서 손수 장을 만드시던 분도 아파트에서 담그기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놓고는 하시지요. 미래로 나아가는 과도기인 이 시기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당근정과와 약과, 식혜로 구성된 기 명인의 손님상 차림새. 사진 / 조아영 기자
당근정과와 약과, 식혜로 구성된 기 명인의 손님상 차림새. 사진 / 조아영 기자
고려전통식품에서는 기 명인과 함께 장 담그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고려전통식품에서는 기 명인과 함께 장 담그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해마다 장을 담가온 기 명인은 20여 년 전 농업회사법인 (주)고려전통식품을 세워 장류 사업을 시작했다. 더불어 서울시 학교 급식에 장류를 납품하며 인스턴트 음식에 익숙해진 청소년의 입맛을 바로잡았고, 2010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선정하는 ‘우수 농어촌 식생활 체험공간’에 전통 장 명가로 포함됐다.

또한, 지난해 개최된 ‘2018파리국제식품박람회(SIAL PARIS 2018)’에 참가해 한국 발효식품 설명회를 가지는 등 국내를 넘어 우리의 맛을 알리고 있다.

한편, 고려전통식품에서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기 명인과 함께 청국장 띄우기, 딸기 고추장 만들기 등을 진행하며, 사전 문의 및 예약 후 참가할 수 있다. 명인의 장맛이 궁금하다면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이 가능하다. 파우치 형태의 소용량 제품도 판매해 장기 해외여행을 떠날 때 챙겨가거나 식구가 적은 가정에서도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다.

Info 고려전통식품
주소
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천길 1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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