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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2019 올해의 관광도시] 다산과 영랑이 다니던 길…걸음걸음 봄을 느끼며 강진을 걷다
[2019 올해의 관광도시] 다산과 영랑이 다니던 길…걸음걸음 봄을 느끼며 강진을 걷다
  • 김세원 기자
  • 승인 2019.04.03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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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관광하기 좋은 영랑권역 돌아보기
조선으로 시간여행, '조만간 프로젝트' 매주 토,일 만날 수 있어
푸른 하늘과 대나무, 아름다운 꽃. 남도정취 품은 영랑생가
'남도답사 1번지'라 불리는 강진은 역사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곳이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남도답사 1번지'라 불리는 강진은 역사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곳이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여행스케치=강진] 흔히 '남도답사 1번지'라 불리는 강진은 자연과 역사문화 자원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곳이다. 바람에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대나무와 넓은 바다, 계절에 맞춰 피어나는 꽃, 그 속에 자리한 관광지를 보다 보면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번 가면 자꾸만 가고 싶은, 머물고 싶은 강진이 2019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되었다.

강진을 위치별로 나누었을 때, 중심은 강진읍 부근에 위치한 ‘영랑권역’이다. 버스여객터미널이 있어 타지로부터의 접근성이 뛰어난 이곳은 권역 내의 관광소도 서로 붙어있어, 대부분의 장소에 걸어서 갈 수 있다. 

사의재는 '네 가지의 마땅해 해야 할 방' 이라는 뜻으로, 다산 정약용이 자신이 살던 방에 붙인 이름이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사의재는 '네 가지의 마땅해 해야 할 방' 이라는 뜻으로, 다산 정약용이 자신이 살던 방에 붙인 이름이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다산 정약용이 살던 조선을 만나다, 사의재
강진 버스여객터미널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현대식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기와지붕이 보인다. 이곳은 정약용 선생(이하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와 처음 기거했던 곳이다. 그는 자신이 머무르던 방에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등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을 붙여 ‘사의재’라 이름 지었다. 

정자에 자리한 기생이 아이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쳐준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정자에 자리한 기생이 아이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쳐준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저잣거리 옆 냇가에는 빨래하는 아낙들이 모여 관광객을 맞이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저잣거리 옆 빨래터에는 빨래하는 아낙들이 모여 관광객을 맞이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사의재 저잣거리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곳을 찾은 관광객의 시간은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왔던 때로 돌아간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조만간(조선을 만나는 시간)’ 프로젝트 때문. 정약용이 유배를 왔던 때를 재현하는 프로그램은 조용하던 이곳에 주말마다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불에 지도를 그려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 받으러 다니는 도령부터 정자에서 장구를 치는 기생까지. 생소한 풍경에 놀라워 두리번거리자 큰길 오른편 빨래터의 아주머니들이 “어디서 왔소?”하고 말을 걸어온다. 간단히 대답을 하자 스트레스나 풀고 가라며 빨래 방망이를 손에 쥐어준다. 물 대야에 뒤집힌 채로 떠 있는 바가지를 통통 두드리자 “잘한다!” 하며 추임새를 넣어준다. 어색한 순간도 잠시 흥이나니 점점 방망이질이 세차진다. 강진까지 따라온 자잘한 걱정들이 튕겨져 나가는 순간이다.
최근 새로 문을 연 사의재 내 카페 ‘청’ 아래에는 박수무당이 자리 잡고 있다. “복채로 노래 한 소절 불러주면 점괘를 말 해주지”하는 무당의 말에 앞에 앉은 관광객이 부끄러움을 꾹 참고 노래를 해본다. 돌아오는 박수무당의 점괘가 꽤 만족스러운 눈치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 조선 의복 차림의 배우들이 있어 사의재 관람에 재미를 더한다. 

조만간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인 마당극 '땡큐, 주모' 사진 / 김세원 기자
조만간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인 마당극 '땡큐, 주모' 사진 / 김세원 기자
마당극 '땡큐, 주모'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에 코믹요소를 넣어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마당극 '땡큐, 주모'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에 코믹요소를 넣어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공연장에서는 조만간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당극 ‘땡큐, 주모’가 열린다. 정약용이 유배를 왔던 때부터 그가 거처하던 방에 ‘사의재’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약용 역을 맡은 배우가 술에 취한 연기를 하며 비틀대자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간결하게 구성하면서도 코믹한 요소를 집어넣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가볍게 보기 좋다. 짧은 극 한편으로 정약용이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알 수 있어 관람에 도움을 준다. 

마당극의 배경이자 유배온 정약용을 유일하게 보살펴준 주모의 주막. 사진 / 김세원 기자
마당극의 배경이자 유배온 정약용을 유일하게 보살펴준 주모의 주막. 사진 / 김세원 기자
정약용과의 훈훈한 일화 덕일까? 주모와 그의 수양딸인 돌다리네의 모습이 담긴 모녀상이 세워져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정약용과의 훈훈한 일화 덕일까? 주모와 그의 수양딸인 돌다리네의 모습이 담긴 모녀상이 세워져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마당극을 다 봤다면, 극의 배경인 주막으로 향해보자. 강진에 유배 온 정약용을 반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주막의 주모와 그의 수양딸만 그를 보살펴 주었다. 훈훈한 이야기 때문일까? 주막 앞에는 모녀동상이 세워져 있다. 

정약용이 즐겨 먹던 다산 밥상은 조밥에 아욱국으로 소박하디 소박하지만, 따로 육수를 내 끓여 만들어 맛은 잊을 수 없다. 사진 / 김세원
정약용이 즐겨 먹던 다산 밥상은 조밥에 아욱국으로 소박하디 소박하지만, 따로 육수를 내 끓여 만들어 맛은 잊을 수 없다. 사진 / 김세원

두 시간 정도 사의재와 저잣거리를 구경하고, 투호 같은 전통체험에도 참여하다 보면, 배가 고파지기 마련이다. 사의재 주막은 겉만 복원된 곳이 아니라 실제로 영업도 하고 있다. 조밥과 아욱된장국이 함께 나오는 ‘다산 밥상’은 실제로 정약용이 이곳에 머물렀을 때 그가 가장 자주 먹던 메뉴이다. 사의재 주막의 주모는 “정약용 선생님이 조밥과 아욱된장국에 바지락 전 드시는 것을 좋아하셨다”며 한상 차려준다. 조밥에 아욱된장국, 소박하디 소박한 밥상이지만 따로 육수를 내 끓인 된장국의 맛이 깊고 구수해 한 그릇 뚝딱이다. 
사의재 옆에는 한옥 체험관이 있다. 강진군에서 운영하고 있어, 다른 숙소보다 저렴한 값에 숙박할 수 있다. 관광객과 배우들로 시끌벅적하던 낮과 달리 사의재의 밤은 고요하다.

Info 사의재 한옥체험관
주소 전남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31-5
Tip 사의재에서 펼쳐지는 조만간 프로젝트는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다. 

대문에서 보이는 문간채를 넘으면 김영랑 시인이 살던 영랑생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김영랑 시인의 시어를 찾을 수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대문에서 보이는 문간채를 넘으면 김영랑 시인이 살던 영랑생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김영랑 시인의 시어를 찾을 수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순수 서정시인 김영랑의 봄을 엿보다
사의재에서 걸어서 5분, 가는 도로부터 맑고 아름다운 단어가 새겨진 이곳은 ‘순수 서정시인’으로 불리는 영랑 김윤식 선생(이하 김영랑 시인)의 생가이다. 그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영향인지 생가 근처에 있는 주택 담벼락에는 모란꽃 그림이 그려져 365일 활짝 피어있다. ‘영랑생가’라는 안내판이 가리키는 방향에 맞춰 발걸음을 옮기자 바닥에는 교과서에서 보았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 한 줄 한 줄 새겨져 있다. 바닥에 새겨진 시와 돌담을 벗 삼아 걷다보면 어느새 생가가 나타난다. 

영랑생가로 가는 길, 김영랑 시인의 '돌담에 속상이는 햇발'이 바닥에 새겨져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영랑생가로 가는 길, 김영랑 시인의 '돌담에 속상이는 햇발'이 바닥에 새겨져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열려진 싸리문으로 들어가자 강진의 자랑 청자색의 맑은 하늘과, 돌담, 모란꽃 그리고 초가지붕과 대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우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선덕 강진군 문화예술과 영랑생가 담당자는 “영랑생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들이 바로 남도의 정취”라고 설명한다. 강진의 사투리가 많이 쓰인 김영랑 시인의 시까지 함께 읽자 남도를 다 돌지 않아도 남도의 정취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느껴진다. 

영랑생가 뒤편으론 비취빛 하늘과 푸른 대나무 등 남도의 정취가 흐른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영랑생가 뒤편으론 비취빛 하늘과 푸른 대나무 등 남도의 정취가 흐른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쾌청한 날시 덕인지 햇살을 잔뜩 받은 담장 앞 시비에 적힌 시구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쾌청한 날시 덕인지 햇살을 잔뜩 받은 담장 앞 시비에 적힌 시구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싸리문에서 보이는 문간채를 넘으면 영랑생가이다. 대문과 문간채 사이 공터는 원래 민가 3채 정도가 있던 공간으로 영랑생가를 복원하면서 강진군이 매입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이곳을 찬찬히 둘러보면 영랑시인의 시에 담긴 대부분의 시어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돌담은 입구부터 자리해 있어 존재감을 뽐낸다. 쾌청한 날씨 덕인지 햇살을 잔뜩 받고 있는 담장 앞 시비에 새겨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로 시작하는 시가 더 마음 깊이 와 닿는다.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영랑생가 뒤편으로 떨어진 동백꽃을 따라 걷다보면 세계모란공원으로 통하는 길이 나온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영랑생가 뒤편으로 떨어진 동백꽃을 따라 걷다보면 세계모란공원으로 통하는 길이 나온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생가 곳곳에 심겨있는 모란은 1년을 기다려 5일 정도만 펴 있다가 금세 지는 꽃이다. 이미 저물어 꽃은 볼 수 없지만, 다음 봄에 다시 피어날 모란을 기다리며, 조국에 봄이 오기를 기다렸던 시인의 마음 느껴본다.
영랑생가를 복원하기 전 일반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남아있는 시인의 물품은 김영랑 시인의 아버지가 달아놓은 주련뿐이다. 주련이 남아있는 사랑채는 당시 시문학파를 함께 꾸린 용아 박용철, 정지용 시인 등이 자주 모였던 곳. 모임이 잦았던 곳이어서 그런지 안채의 문을 모두 들어 올리면 세 개의 방으로 나뉜 것처럼 보이는 곳은 하나로 통한다. 
신혼생활을 했던 안채 뒤로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작은 바람에도 ‘사스락사스락’ 소리를 내며 귀를 즐겁게 한다. 조그마한 녹차나무와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는 동백꽃도 그림 같은 풍경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Info영랑 생가
이용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주소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TIP! 영랑생가에서는 상주해 있는 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해설을 듣고 나서 다시 둘러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랑생가에 방문하기 전 미리 연락해야 이용 가능하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길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 같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대나무로 둘러싸인 길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 같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영랑생가와 더불어 돌아보는 곳들
생가 안채 뒤편으로 가 떨어진 동백꽃 꽃잎을 따라 걷다 보면 ‘세계모란공원’으로 통하는 길이다. 대나무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길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 같다. 

날씨나 계절에 관계 없이 모란꽃을 보고싶다면 커다란 온실인 세계모란원을 방문하면 된다. 매달 5일이면 활짝 핀 모란곷을 볼 수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날씨나 계절에 관계 없이 모란꽃을 보고싶다면 커다란 온실인 사계절모란원을 방문하면 된다. 매달 5일이면 활짝 핀 모란곷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 / 강진군청
공원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면 강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공원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면 강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생가에서 시를 읽다 모란이 보고 싶어졌다면 세계모란공원의 ‘사계절모란원’을 찾으면 된다. 커다란 온실인 이곳에선 매달 5일이면 활짝 핀 모란을 만날 수 있다. ‘세계’모란공원이다 보니 우리나라 모란을 비롯해 네덜란드 일본 등 세계 각국의 모란도 함께 피어있다. 
온실에서 나와 공원을 한 바퀴 돌다 보면 곳곳에 다시 필 때를 기다리는 모란이 조형물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전시물까지 다 본 후 공원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강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더 올라 금서당 가는 길로 쭉 내려오다보면 한옥과 양옥이 합체된 집을 볼 수 있다. 반파된 금서당을 故 김영렬 화백이 매입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전망대에서 더 올라 금서당 가는 길로 쭉 내려오다보면 한옥과 양옥이 합체된 집을 볼 수 있다. 반파된 금서당을 故 김영렬 화백이 매입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금릉학교의 전신이자, 4.4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금서당 옛터. 사진 / 김세원 기자
금릉학교의 전신이자, 4.4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금서당 옛터. 사진 / 김세원 기자

전망대가 있는 언덕을 좀 더 오르면 금서당으로 이어진 길이다. 대나무 숲 안으로 난 길은 푹신한 흙길이라 발이 편하면서 그늘져 시원하다. 10분 정도 걸으면 금릉학교의 전신이자 4.4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금서당 터가 나온다. 故 김영렬 화백이 1950년 이후 반파된 금서당을 매입해 현재의 한옥과 양옥이 합쳐진 모습이 되었다.

금서당에서 영랑생가 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옆족 노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시문학파를 다루고 있는 기념관이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금서당에서 영랑생가 쪽으로 내려오다보면 노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시문학파에 대해 다루고 있는 기념관이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문예지 '시문학'의 편집후기에서 박용철과 김영랑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문예지 '시문학'의 편집후기에서 박용철과 김영랑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길을 따라 다시 영랑생가쪽으로 오다 보면 김영랑 시인의 시구가 적힌 울타리 옆으로 노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김영랑, 정지용, 박용철 시인 동상이 관광객을 반겨주는 이곳은 시문학파전시관이다. 전시관이 있는 2층에서는 도슨트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이재광 도슨트는 “김영랑 시인은 일본 유학중 만난 박용철 시인과 뜻을 함께 해, 문학의 순수성 회복 운동을 했다”며 “여기에 정지용 시인 등 총 6명이 모여 3월 5일 <시문학>지를 창간했다”고 설명한다. 
특정 작가보다는 시문학파라는 문예사조에 집중한 공간이지만, 영랑생가를 방문했던 터라 김영랑 시인과 관련한 물건과 이야기를 발견할 때마다 유난히 더 반갑다. 이곳에는 문예지 <시문학>의 편집후기가 큰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어, 당시 박용철과 김영랑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문예지를 발간했는지 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전시관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영랑생가를 다시 찾아 시비들을 쭉 읽어보며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다. 

Info 시문학파기념관
이용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1월 1일, 설날, 추석 휴무)
주소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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