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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카드뉴스]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일강 김철 선생을 아시나요?'
[카드뉴스]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일강 김철 선생을 아시나요?'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9.04.05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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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를 일군 국무원 요인, 일강 김철 선생
항주 여관방에 ‘임시정부 판공처’ 설치해 법통 이은 인물
고향인 전남 함평에 기념관ㆍ임시정부청사 재현 공간 조성

[여행스케치=함평] 1919년 4월 11일, 중국의 국제도시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가 시작된다. 타국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지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는 임시정부를 이끈 독립투사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활동을 지휘했던 국무원 요인 일강 김철(金澈, 1886~1934) 선생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그는 백범 김구와 더불어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의거를 주도했으며, 임시정부의 재무장ㆍ법무장ㆍ군무장 등 국무위원직을 맡아 활약했다. 

김철은 1886년 전남 함평군 산광면에서 태어났다. 남부러울 것 없는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경성법률전수학교를 거쳐 일본 메이지대학 법과를 졸업한다. 우수한 인재였던 만큼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해 달라는 조선총독부의 회유와 협박이 계속되었지만, 그는 조국 독립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상해로 망명한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부터 임시정부 요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피난길에 오른다. 이때 항주로 향한 김철은 자신의 숙소인 청태 제2여사 32호실에 ‘임시정부 판공처’를 설치하고 업무를 재개한다. 이런 그의 노력으로 존폐위기에 놓였던 임시정부의 법통이 이어졌고, 중국 국민당의 도움으로 다시 청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새로운 정부의 터전을 채 닦기도 전인 1934년, 김철은 과로와 급성 폐렴으로 쓰러져 항주에서 숨을 거둔다. 향년 48세.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11년 앞두고서 짧은 생이 저물었다.

김철이 태어난 함평의 생가 터에는 김철 선생 기념관과 상해임시정부청사를 재현한 공간이 자리한다. 신한청년당을 시작으로 임시정부의 초기 활동 및 국무위원에 선출되어 활동한 당시 자료사진과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생애를 찬찬히 살펴보고, 기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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