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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DMZ펀치볼둘레길, 멈춰버린 60년의 세월을 걷다
DMZ펀치볼둘레길, 멈춰버린 60년의 세월을 걷다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6.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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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의 장막에 감춰져 있던 비밀의 땅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 마을
지정된 탐방로 이외엔 지뢰가 남아있기도
사진 / 노규엽 기자
DMZ라는 상징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펀치볼 마을 둘레길 탐방. 사진 / 노규엽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양구] 걷기여행의 인기는 지척에 남방한계선이 있는 펀치볼 마을에도 둘레길이 생기게 했다. 어쩌면 DMZ라는 상징성에 가장 근접한 지역이라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 특히 반세기 이상 인적이 거의 없었던 숲길 구간에서는 전쟁의 상흔을 딛고 스스로 되살아난 자연의 위대함을 마주할 수 있다.

DMZ펀치볼둘레길 안내를 맡아준 고명호 양구군 숲길체험지도사는 “DMZ펀치볼둘레길은 걷기를 위한 길이기보다는 전쟁의 상처를 탐방하면서 대북관계 상태를 확인하는 길”이라고 말하며, “길 전체가 유전자보호구역인 만큼 천연림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시길 바란다”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약 40년의 세월동안 주민들과 군인들 외에는 밟아본 적이 거의 없었던 땅. 펀치볼 마을에 둘레길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전쟁 이후 그대로 멈춘 시간 속에서 스스로 천연림을 형성하고, 곳곳에 남은 전쟁의 흔적을 직접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찾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숲길 구간
DMZ펀치볼둘레길(이하 ‘펀치볼둘레길’)은 총 4개의 코스가 있다. 그 중 (사)DMZ펀치볼둘레길에서 추천한 코스는 오유밭길 내에서도 최근 새로 개통했다는 숲길이었다. 애초 펀치볼둘레길은 ‘둘레길’이라는 단어에 집중하여 대부분 마을길을 걸으며 해안분지의 들판을 보는 코스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막상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자 그늘이 없고 내리쬐는 햇볕만 받으며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숲길을 포함하는 방편으로 코스를 개척해나가고 트레킹을 예약하는 사람들에게도 숲길 코스를 중점적으로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사진 / 노규엽 기자
고명호 양구군 숲길체험지도사와 함께 DMZ펀치볼둘레길을 걸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마을길에서만 볼 수 있는 펀치볼둘레길 이정표.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숲길에는 60년 동안 스스로 자라난 숲이 형성되어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최근 개통했다는 오유밭길의 숲길은 아직 걸어본 사람이 많지 않아 사람 때를 타지 않은 ‘날 것’의 천연숲길이다. (사)DMZ펀치볼둘레길에서는 걷기꾼들을 위해 코스를 전부 걸을 것 없이 숲길 구간만도 걸을 수 있도록 알려주고 있다고. 단체버스로 오면 마을길을 가장 적게 걸을 수 있는 지점을 알려주고, 개인 또는 소규모로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숲길 입구까지 차로 실어다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아주 편히 숲길 입구까지 갈 수 있고, 오유밭길의 알짜배기 구간만 유람할 수 있다.

펀치볼둘레길은 예약탐방 가이드제로 운영되고 있어, 걷기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숲길체험지도사를 동반해야 한다. 또한 숲길은 민간인 출입통제 지역 내에 조성되어 있으므로, 안전문제 동의서를 작성한 후 안내자의 안내를 받아야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다. 고명호 숲길체험지도사는 숲길을 걷기에 앞서 “펀치볼 마을의 산길은 전쟁 이후의 상태에서 거의 손을 대지 않아 지뢰가 남아있는 등 위험요소가 있다”고 말하며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최근에도 길을 잘 안다는 사람이 무단으로 숲에 들어갔다가 지뢰 사고가 났다니 충분 이상으로 조심해야할 사안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남북분단의 소리
오랜 기간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숲길은 자연이 스스로 조성한 숲이 그대로 남아 그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인공적인 조림을 하지 않았기에 나무의 종류도 두서가 없고 자라는 방향도 제각각이지만, 오히려 다른 숲에 비해 풍성하게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고명호 지도사는 “참나무 종류가 주로 많고, 서어나무 등의 최상급 숲에서 자라는 수종들이 더러 있다”는 설명을 해준다. 무엇보다 소나무가 거의 없어 좋다. 생명력이 강해 주변으로 다른 식생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소나무가 없으니, 걷는 내내 야생화 군락이 자주 눈에 띈다. 숲길지도사와 함께 걷는 길이니 야생화가 많이 피는 봄에 펀치볼둘레길을 찾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생생한 자연 속에 핀 야생화도 만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구간 중에는 일부러 전쟁의 흔적을 남겨 놓은 장소도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오유밭길의 숲길을 걷다보니 신경을 거스르는 포격 소리가 종종 들려온다. “요즘 군대 훈련이 있는 시기인가보죠?”라는 질문에 고명호 지도사는 “훈련인지는 잘 몰라도 이곳에서는 포격 소리 들리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이어 “탄착점이 북한과 가까이 있는 산에 있어요”라는 말. 군사접경지역에서는 총이나 포로 위협사격을 하는 일이 흔하다 하더니, 이곳 펀치볼 마을에서도 훈련 삼아 포격을 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인 듯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확성기 방송 소리. 위에서 들리는 것으로 짐작해 마을로부터 들리는 것은 아닌 듯 하고, 아마도 북측에서 대남방송을 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단지 소리만 들릴 뿐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아듣지 못하겠음에도 확성기의 울림은 꽤나 오래 이어진다. 

이런 일들을 직접 경험하는 일도 펀치볼둘레길을 걷는 의미 중 하나일 터다. 단지 길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며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는 동안 서로를 경계하는 남측과 북측의 소동을 듣는 것. 타 지역에 살면서 얼마나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던가. 펀치볼 마을 주민들도 이런 일들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테지만, 군사대치의 현실만은 계속 인지하며 살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는 둘레길의 의미
산길과 산길 사이에는 이정목들이 서있지만 오유밭길의 숲길 내에는 이정표가 아예 없다. 아마도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원체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가 거의 없기도 하지만, 혹 갈림길이 나온대도 숲길 지도사가 이끌어주므로 딱히 이정표가 필요 없기도 하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뢰가 많이 남아있어 길 밖으로 이탈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가끔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간이 나타나 지루함을 덜어준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이런 의미에서 펀치볼둘레길은 수많은 걷기꾼들에게 큰 재미를 주는 곳은 아닐 수 있겠다. 특히 코스 완주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숲길보다 마을길이 대부분인 둘레길에 실망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고명호 지도사도 “펀치볼둘레길은 민간인통제구역인 이곳에 이런 길이 있고, 전쟁 후 60년이 지난 숲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에 의의를 둔 길”이라고 말하며, “지도사가 동행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면 가끔 어떤 분들은 본인의 걷는 속도를 따라올 수 있겠냐고 말하시는데, 펀치볼둘레길은 등산을 하듯 걷는 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마따나 펀치볼둘레길은 천천히 둘러보며 맘에 드는 야생화가 보이면 멈춰서기도 하고, 특이한 나무를 만나면 지도사의 설명을 들으며 자연을 느끼는 길이다. 어찌보면 펀치볼둘레길은 우리 땅에 만들어진 걷기코스들의 기본을 되새기게 해주는 길이 아닌가 한다.

Info DMZ펀치볼둘레길 탐방 안내
탐방인원 1일 2회(오전 9시, 오후 1시), 하루 200명만 탐방 허용(선착순)
-예약은 탐방 3일전까지 가능하며, 단체는 전화 상담 우선. 
-구간별 탐방코스는 현지 상황에 따라 단축운영 가능(먼멧재길 제외).
-단체(20인 이상)는 오전 10시 30분까지 출발시간 조정 가능(먼멧재길 제외).
문의 033-481-8565

Tip
둘레길을 걷는 중 식사가 필요할 경우, (사)DMZ펀치볼둘레길에 1주일 전 미리 예약을 하여 뷔페식 둘레길 솥밥을 주문할 수 있다. 단체 20인 이상 신청 가능하고 가격은 1인당 8000원이다.

사진 / 노규엽 기자
펀치볼둘레길은 되살아난 천연림과 전쟁의 의미를 생각하며 걷는 길이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안보의 장막에 감춰져 있던 비밀의 땅, 펀치볼 마을의 역사
해발 1100m 이상의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펀치볼 마을. 이곳의 지명은 한국전쟁 당시 외국의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노을진 분지를 내려다보고는 칵테일 유리잔 속의 술빛과 같고, 분지의 모습이 화채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고 표현하면서 펀치볼 마을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행정지명은 양구군 해안면. 먼 옛날에는 바다 해자를 써서 해안면(海安面)으로 표기했는데, 현재는 돼지 해(亥)자를 쓰고 있다. 이는 오래 전의 해안면에는 주민들을 위협할 정도로 뱀이 많았는데, 어떤 스님이 말한 “뱀은 돼지와 상극이니 바다 해 자를 돼지 해 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는 조언을 듣고 주민들이 마을 이름을 고치고 집집마다 돼지를 기르니 뱀이 사라졌다는 일화에 따른 것이다.

펀치볼 마을은 불과 30년 전만해도 출입증 없이는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1956년부터 총 4차에 걸쳐 농사지을 주민들을 입주시켜 살게 하였지만, 마을 주민들조차도 2년마다 갱신하는 출입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타 지역으로 나갈 수 있었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만일 외부인이 이곳에 오려면 신원증명서를 발급받아 군부대에 임시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했으며, 방문신고서도 작성해 파출소 및 기무대에 제출해야 했다. 그마저도 출입기간은 2~3일 정도로 짧았으니 펀치볼 마을이 여행지로서 알려질 일은 전혀 없었다.

펀치볼 마을은 1990년 이후에야 출입제도가 해제되어 현재와 같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6년 11월호 [국내 트레킹]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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