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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한국의 걷기 좋은 길] 수평으로 이어지는 신라 불교문화 답사
[한국의 걷기 좋은 길] 수평으로 이어지는 신라 불교문화 답사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6.12.13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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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와 신라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신라탐방길
경북 경주 남산가는길+동남산가는길
사진 / 노규엽 기자
산 자체가 문화재인 남산은 경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사진 / 노규엽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경주] 찬란했던 신라의 불교유적들이 남아있는 경주남산. 신라시대부터 신앙의 대상이자 현재에도 산 자체가 문화재인 남산은 경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리고 산 아래로 꾸준히 조성되고 있는 신라탐방길 역시, 경주와 신라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 되고 있다.

현재 신라탐방길은 3개의 코스가 완성되어 있다. 남산의 서편으로 포석정과 지마왕릉을 지나 삼릉에 이르는 삼릉(서남산)가는길과 반대편 동쪽으로 옥룡암과 서출지를 지나 염불사지에 이르는 동남산가는길, 그리고 가장 최근 조성된 남산가는길이다. 이 중 경주시는 남산가는길에 ‘천 년 전 신라 왕과 왕비가 거닐던 길’이라는 별칭을 붙이며 기존에 있던 두 코스와 연계해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끊어졌던 정기를 다시 이은 길
신라의 도성이었던 월성과 교촌한옥마을 사이 한창 공사 중인 다리가 있다. 신라 경덕왕 19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월정교를 복원하는 공사이다. 정밀 복원과 허가 문제로 2008년 시작된 공사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완공이 되고 나면 세계문화유산인 월성지구와 경주남산이 연결되는 새로운 관광코스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가 된다. 월정교를 시작점으로 삼고 있는 신라탐방길 3개 코스 모두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열린 남산가는길은 이름처럼 월정교 남쪽의 도당산을 넘어 남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총 연장 800m 정도의 짧은 코스이지만, 기존에 있던 두 코스에 변화를 주면서 남산으로 가는 최단 코스를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

월정교에서 출발해 도당산으로 향하면 한차례 계단을 오른 후 도당산 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는 화백정이라는 정자를 세워놓았는데, 옛 신라 왕과 왕비가 남산으로 가던 도중 휴식을 한 곳이라는 전설을 담아 만들었다. 정자에 올라 월정교 방면을 보면 전망대라는 명칭답게 월성지구와 경주 시내까지의 모습이 펼쳐진다. 해발 100m 내외의 야트막한 산임에도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에 놀라울 정도. 옥에 티는 정자 앞으로 가지를 추켜세운 나무들이 조망의 걸림돌이라는 점. 이에 경주시청 신라문화융성과 이상일 팀장은 “남산을 포함한 이 지역은 모두 문화재 구역이라 벌목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여행자들을 위한 길을 조성했지만, 보존을 위해 모든 여건을 여행자에게 맞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천년고도 경주에서는 여행자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해야 함을 다짐해야겠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월성지구를 조망할 수 있는 화백정.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도당산터널 위에 화백광장을 조성해 끊어졌던 남산과 월성의 정기를 이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심하게 손을 대지 않은 자연적인 모습도 나쁘지 않다. 화백정을 지나 도당산을 내려가는 길이 그렇다. 발굴 조사를 위해 생겨난 길에 야자매트만 깔아놓은 길이지만 푹신하고 포근한 촉감이 걸음을 편하게 한다. 

짧은 산길을 지나면 도당산 터널 위에 조성한 화백광장에 도착한다. 도당산에서 계속 등장하는 화백이란 단어는 신라시대 나라의 중대사를 논의하던 귀족 회의제도인 화백제도에서 따온 말이다. 화백광장은 실제로도 회의장소 중 한 곳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산업도로 건설로 인해 끊어졌던 월성과 남산의 정기를 다시 이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또한, 이상일 팀장은 “해질 무렵 찾아오면 광장 아래 산업도로와 함께 노을을 보는 것이 멋지다”고 추천한다.

새롭게 개통된 남산가는길은 화백광장 바로 아래의 남산 등산로 입구까지. 이후로 남산을 오르거나 신라탐방길의 다른 두 코스로 연결해갈 수 있다. 남산가는길 개통이 경주남산의 모든 길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신라 불교를 수평적으로 답사하는 길
월정교에서 남산가는길을 통해 도당산터널에 이르면 기존의 삼릉가는길과 동남산가는길의 초반 구간은 건너뛰게 되지만, 중요한 유적들을 답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최근에 조성된 동남산가는길로 방향을 잡았다.

남산 등산로 입구에서 좌측의 오솔길로 접어들면 동남산가는길의 다음 루트인 상서장으로 이동한다. 경상북도기념물 제46호인 상서장은 고은 최치원이 공부하던 곳이라 전해지며, 이 집에서 왕에게 상서를 올렸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폐허화된 것을 18세기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추정되며, 1875년 경주부윤 이돈상이 지었던 비문 등이 남아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인상이 온화해 ‘할매부처’라고도 불리는 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 사진 / 노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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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암 내에 있는 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보리사에서 내려오면 잠시 푸근한 골목을 걷는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상서장 이후로는 신라의 불교문화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적지들이 이어진다. 상서장을 나와 도로를 따르다가 이정표를 보고 마을로 접어들면 남산의 숲길로 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대나무숲이 우거진 장소가 나오나 싶더니, 그 안에 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이 숨어있다. ‘할매부처’라고도 부른다는 말답게 인상이 푸근하며 온화한 여래좌상은 자연암을 파내어 감실을 만든 후 조각한 노력이 엿보이는 불상이다. 비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형태도 잘 남아있는 편인데, 당시 신라인들이 지녔던 불교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경주남산에는 이러한 불교작품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도 그 중 하나. 옥룡암 내에 위치한 불상군은 커다란 바위의 4면에 수십구의 불보살상과 여러 조각들을 새겨놓았다. 그 중에는 황룡사 9층 목탑으로 여겨지는 탑의 모습도 확인되어 역사적 사료로도 가치가 높다고 한다.

동남산가는길의 신라 불교 답사는 보리사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불상은 보리사 마애석불과 경주남산미륵곡 석조여래좌상. 특히 석조여래좌상은 경주남산에 있는 신라시대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가치가 높다. 다만 아쉬운 점은 비구니 사찰인 보리사 내부는 전 지역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어, 여래좌상의 빼어난 자태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러 가는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역사와 무관한 즐길 거리도 연결되어 있어
보리사에서 도로 내려와 푸근한 풍경의 골목을 잠시 걸으면 이정표가 나무데크로 길을 안내한다. 왕복2차선 도로 옆으로 이어지는 길이지만 늘씬한 수목에 가려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 난데없이 수목원 풍경이 펼쳐지는 이유는 근처에 경상북도산림환경연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산림환경조사, 산림병해충의 친환경 방제 등 산림의 효율적인 경영과 보호를 수행하는 산림 전문 연구기관이지만, 야생화원, 산림전시실, 습지생태원 등 오랜 세월 가꾸어 온 산림자원을 공개하고 있어 산책 및 나들이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다. 데크를 따르다 보면 연구원 입구를 지나게 되니 시간 계획에 따라 들러서 충분히 즐겨볼 수 있다.

길을 이어 화랑교육원을 지나면 이제 신라 왕이 잠든 곳을 볼 차례. 신라 제49대 헌강왕릉과 제50대 정강왕릉이 연이어진다. 기이할 정도로 몸을 뒤튼 멋진 소나무 숲 안에 자리 잡고 있지만, 왕릉치고는 규모가 크지 않아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수수한 모습이 좋아 두 왕릉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참고로 헌강왕과 정강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로 유명한 경문왕의 아들들로,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요절해 누이동생에게 재위를 물려준다. 그 누이동생이 우리 역사에서 단 3명뿐인 여왕 가운데 한 명인 제51대 진성여왕이다.

사진 / 노규엽 기자
경상북도산림환경연구원에서 가벼운 나들이도 즐길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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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 사이에 수수하게 자리 잡은 헌강왕릉. 사진 / 노규엽 기자

두 왕릉을 둘러보고 숲을 나오면 다음 목적지인 통일전이 멀지 않다. 통일전은 신라 유적은 아니지만, 역사적 업적을 완수한 태종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장군을 찬양하고 화랑의 옛 정신을 이어 받아 발전하자는 취지로 조성한 곳이다. 역사 유적으로는 통일전을 지나 마주치는 서출지가 볼만하다. 신라 소지왕 때 쥐와 까마귀가 왕을 도와 흉계를 막았다는 설화가 남아있는 이곳은 연꽃이 가득 피는 여름에 특히 좋은 곳이지만, 주변 풍경과 함께 못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하기도 좋다.

동남산가는길 완주 여부는 여행자의 몫
서출지를 지나면 길이 좁아지며 한옥마을에 들어선다. 오래된 전통 한옥과 별장으로 이용하려 지었다는 웅장한 한옥들이 섞여있는 마을이지만, 길을 걸으며 보고 지나기에는 위화감 없이 아담한 곳이다. 한옥마을 안에서는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이 다른 두 탑이 마주보고 있는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을 볼 수 있고, 길의 종착점에 이르러 염불사지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서로 마주보고 있는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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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 이후 한옥마을을 걸어 종착점인 염불사지로 향한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염불사지까지가 현재까지 열린 동남산가는길의 끝이다. 한옥마을과 어우러지는 남산의 풍경을 즐기며 걷을 때는 좋지만, 길의 종점에 대중교통이 없는 것이 약점.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통일전까지 걸어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동남산가는길을 걸을 때에는 서출지에서 상황을 판단해 염불사지까지 완주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월호 [한국의 걷기 좋은 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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