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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세계가 인정한 백제문화의 출발점, 공주
세계가 인정한 백제문화의 출발점, 공주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04.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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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백제 - 공주
백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탐방 ①,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
백제를 품은 공주, 64년의 기록
사진 / 노규엽 기자
세계유산, 백제를 탐방하는 여정은 공주에서 시작한다. 사진 / 노규엽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공주] 공주는 백제의 두 번째 도읍 웅진이 있던 곳이다. 고구려에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쫓기듯 내려온 곳이지만, 비온 뒤 땅 굳어지듯 백제는 이곳에서 국력을 회복하고 찬란한 문화를 일궈냈다. 백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탐방 제1편,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이다.

공주는 475년부터 538년까지 64년간 백제의 도읍지였다. 22대 문주왕부터 26대 성왕까지 5명의 왕이 재위기간을 거쳤고, 그중 자연사한 왕은 무령왕 1명밖에 없었을 정도로 혼란한 시국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기간에 피어난 문화는 한성백제와 비교해도 많이 달라진, 그보다 빼어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웅진백제의 왕궁추정지, 공산성
“이전의 역사에서 웅진은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백제가 천도를 한 이후부터 역사에 등장했죠. 멸국을 겨우 면하고 내려와 약 반세기 만에 문화를 융성시켰고, 좁은 땅에 유적이 넘쳐서 다시 사비(부여)로 천도하게 된 중심점이 바로 공산성이죠.”(이현숙 공주대 박사)

공산성은 웅진백제 시대의 왕궁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 왕궁 추정지는 총 세 곳이었는데 웅진이란 이름을 만든 고마나루(곰나루) 근처에 있었다는 설과 공산성 정문인 남문 바로 아래쪽 평지라는 설, 그리고 공산성 안에 있었다는 견해이다. 발굴조사 결과 공산성 안 쌍수정 앞 광장에서 건물지와 기와 등이 출토되어 현재까지의 추정왕궁지로 알려져 있다.

공산성 관람은 현재 정문처럼 쓰이고 있는 금서루(서문)를 통해 시작한다. 금서루 안 왼편에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이 있으니 해설사와 가고 싶은 코스를 조율해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산성 관람은 코스에 따라 30분~2시간 정도 소요된다.

공산성은 백제가 웅진을 도읍지로 정한 이유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성을 한 바퀴 돌며 공북루나 공산정 전망대에 올라보면 금강의 물줄기와 시야가 트인 평야가 보인다. 강이 성의 북편을 가로지르는 만큼, 고구려의 침입을 감시하기 좋았음을 읽을 수 있다. 강은 고대의 고속도로 같은 역할을 했으니 해상교통도 좋았을 것이다. 

사진 / 노규엽 기자
현재 공산성 출입구로 사용하고 있는 금서루.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공산성 성벽을 따라 성을 일주할 수 있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금강을 이용해 물을 저장해놓는 용도로 만든 연지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기자

또한 이 지역은 육로교통의 요충지였다. 공주는 백제 이래로 근대까지 지방행정의 핵심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삼남(충청ㆍ경상ㆍ전라)으로 가는 삼남대로가 지났던 곳이기도 하다. 공산성에서 만난 정경희 공주시문화관광해설사는 “이 지역은 남북을 연결하는 중심에 위치해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곳이었다”며 “그런 이유로 백제 때만이 아니라 고려ㆍ조선시대에도 중심지 역할을 이어왔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요충지 역할로 인해 공산성의 백제 때 모습이 늦게 발견된 거라고. 세월이 흐르며 시대에 맞게 계속 개축되었고, 백제의 유물들은 깊은 땅 속으로 묻혔다는 이야기다.

추정왕궁지가 있는 쌍수정은 꼭 둘러봐야할 장소. 조선시대 인조가 내란을 피해 공주에 왔을 때 머물렀던 곳으로, 쌍수정이 세워진 연유와 인절미가 만들어진 설화에 대해 알 수 있다. 백제시대 건축양식에 관심이 있다면 임류각도 들러보자. 백제 24대 동성왕이 이곳에서 큰 연회를 자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어 왕권을 신장시켰다는 증거물로 여겨지는 누각이다. 고증을 통해 복원해놓아 백제 특유의 팔작지붕 기술을 눈으로 볼 수 있다.

Info 공산성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이후 심야 개방)
입장료 어른 12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600원
주소 충남 공주시 웅진로280
문의 041-856-7700

고대 최초로 이름표 달고 나온 무령왕릉
“송산리고분군은 한성에서부터 웅진을 거쳐 사비로 가는 무덤 형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곳으로 가치가 높습니다. 특히 유일하게 왕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무령왕릉은 당시 왕권강화 성공의 실마리가 남은 곳이죠.”(이현숙 공주대 박사)

무령왕릉으로 대표되는 송산리고분군은 공주 구도심을 살짝 벗어난 서쪽 외곽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둘러볼 곳은 주차장 앞의 웅진백제역사관. 64년간의 웅진백제 역사와 5인의 왕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가 되어있다. 역사관을 둘러본 후 송산리고분군으로 향하면 매표소가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송산리고분군은 한성에서부터 웅진을 거쳐 사비로 가는 무덤 형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곳.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무령왕릉 발굴 시 상황을 재현해 놓은 장면.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모형전시관에서 무령왕릉의 내부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무령왕릉을 포함한 총 7기의 능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은 1997년부터 보존상의 문제로 내부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초입의 모형전시관에서 무령왕릉과 5ㆍ6호분을 재현해놓은 무덤 내부를 들어가 볼 수 있다. 이 세 개의 무덤을 재현해놓은 이유는 각각의 형태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 순서대로 각각의 내부를 둘러보면 웅진백제시대에 어떤 과정을 거치며 왕의 무덤이 발전되어 왔는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무령왕릉의 경우는 출토 당시의 현장을 재현해놓은 모습도 볼 수 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받으면 숨겨진 무덤의 비밀과 백제시대의 분묘문화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모형전시관을 빠져나오면 언덕을 따라 늘어선 송산리고분군을 둘러보도록 동선이 짜여있다. 무령왕릉과 5ㆍ6호분을 지나 1~4호분을 둘러보며 언덕을 오른 후,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국립공주박물관으로 길이 연결된다. 공주박물관도 웅진백제 유적을 보기 위한 필수코스. 특히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국보들과 진품 유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

Info 송산리고분군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700원
주소 충남 공주시 왕릉로 37
문의 041-856-3151

사진 / 노규엽 기자
공주시를 여행할 때는 공공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 사진 / 노규엽 기자

Tip
1 공주시는 공공자전거가 잘 구비되어 있어 백제역사유적지구 탐방 시 이용하면 편리하다. 공주종합버스터미널과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등에 자전거 대여ㆍ반납소가 있으며, 기타 대여ㆍ반납장소는 네이버 지도 어플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2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석정리박물관 등 공주 3대 유적지 출입은 통합권을 구매할 수 있다. 세 곳 중 어디서든 구매가 가능하며 1박 2일간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2800원.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5월호 [세계유산백제 -공주]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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