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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 해남에 어린 ‘묵향(墨香)’ 따라 떠난 짧은 여행 - 해남에다녀왔습니다②
[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 해남에 어린 ‘묵향(墨香)’ 따라 떠난 짧은 여행 - 해남에다녀왔습니다②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9.04.23 2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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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의 자취가 묻어나는 유적지 산책
해남 출신 문인의 삶과 문학 세계를 담다, 땅끝순례문학관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외관. 사진 / 조아영 기자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외부 전경. 사진 / 조아영 기자

[여행스케치=해남] 뜨끈한 온돌 위에서 푹 자고 일어나 해남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밤새 창가를 두드리던 세찬 바람은 어느새 굵은 빗줄기로 바뀌어 있었다. 마침 별다른 일정과 체험이 잡히지 않은 날이어서 주변 여행지를 둘러볼 참이었는데, 애석하게도 날씨가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도 길을 나서기 전 마루에 걸터앉아 비 내리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은 꽤나 근사했다. 평소 취재를 위해 방문한 곳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여유였다. 해남에서 살아보기 직전에 떠났던 1박 2일간의 부산 출장은 숨 돌릴 틈 없이 바빴고, 말끔한 비즈니스호텔에서조차 편히 쉬기 어려웠다. 

이게 ‘살아보기’의 매력이구나. 마음이 동하는 곳을 따라 거닐며 애써 서두르지 않아도 하루가 오롯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녹우당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 고산의 4대조인 어초은 윤효정이 아들의 진사시 합격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녹우당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 고산의 4대조인 어초은 윤효정이 아들의 진사시 합격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녹우당 곁에 자리한 충헌각. 사진 / 조아영 기자
녹우당 곁에 자리한 충헌각. 사진 / 조아영 기자

고산 윤선도 선생이 머물렀던 마을
숙소 인근 매정 정류장에서 농어촌버스를 타고 20분 남짓 달려 고산 윤선도 유적지에 닿았다. 이곳 해남에 어린 문인(文人)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첫 여정이다. 

조선시대 문신이자 대표적인 시조시인 윤선도(1587~1671)는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주옥같은 우리말 시조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해남은 그의 본관으로, 유적지가 조성된 연동마을은 해남 윤씨 가문이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병풍처럼 고택을 둘러싼 덕음산의 산세와 잘 가꾸어진 산책로, 여기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운치를 더한다. 

흔히 고산 윤선도 유적지에서 꼭 방문해야할 곳으로 ‘녹우당(綠雨堂)’을 꼽는다. 녹우당은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른 후 스승이었던 고산에게 하사한 집의 사랑채를 해남에 옮겨온 것이다.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4600여 점의 유물로 가득하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4600여 점의 유물로 가득하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해남 윤씨 가문에 대한 이야기와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해남 윤씨 가문에 대한 이야기와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보물 제483호로 지정된 지정14년 노비문서. 사진 / 조아영 기자

현재는 종손 부부가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 목적이 아닌 경우에는 개방하지 않아 둘러볼 수 없지만, 유적지 초입에 자리한 유물전시관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고문서와 서책 등 해남 윤씨의 후손이 남긴 4600여 점의 유물로 채워져 있다. 고산의 육필을 비롯해 그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제240호), 지정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고산 양자 예조입안문서(보물 제 482-5호) 등 국보 1점과 보물 10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공을 들여 관람하다 보면 이 모든 유물이 한 집안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게 된다.

‘시인의 고장’ 해남을 엿보다, 땅끝순례문학관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서 인근에 자리한 땅끝순례문학관으로 발걸음을 넓혀본다. 유적지 매표소를 기준삼아 왼쪽 고샅길을 따라 50m가량 걸으면 이내 기와를 올린 문학관 건물이 보인다.

땅끝순례문학관으로 향하는 고샅길. 사진 / 조아영 기자
땅끝순례문학관으로 향하는 고샅길. 사진 / 조아영 기자
고산 윤선도 유적지 인근에 자리한 땅끝순례문학관 외부 전경. 사진 / 조아영 기자
고산 윤선도 유적지 인근에 자리한 땅끝순례문학관 외부 전경. 사진 / 조아영 기자
문학관 내 비치된 책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문학관 내 비치된 책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2017년 12월 문을 연 문학관은 해남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담은 공간이다. 1층에 자리한 상설전시실에서는 해남에 시학의 뿌리를 내린 금남 최부(1454~1504)와 땅끝에서 한글로 시조를 써 내려간 고산 윤선도, 토속적 서정을 노래한 이동주와 박성룡 등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해남 시 문학의 역사와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밖에도 김남주와 고정희 등 현대 시인을 소개하는 섹션에는 터치스크린 기기가 마련되어 있어 시인의 대표작을 선택하면 전문을 감상할 수 있고, 문학관에 비치된 서적 열람도 가능하다. 

이동주, 박성룡, 김남주 등 현대 시인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 사진 / 조아영 기자
이동주, 박성룡, 김남주 등 현대 시인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 사진 / 조아영 기자
유채꽃이 펼쳐진 소박한 마을 풍경. 사진 / 조아영 기자

이유리 땅끝순례문학관 학예사는 “해남은 숱한 시인을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지만, ‘땅끝’이 주는 상징성으로 인해 순례하듯이 다녀가거나 작품 활동을 펼친 문인들 또한 많은 곳”이라며 “수도권과 거리가 멀어 마음먹고 방문하는 곳인 만큼 유적지와 문학관을 함께 살펴보고 체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갯벌처럼 넉넉하고 말씨가 호박국처럼 구수한’ 고장, 해남. 이곳에는 불쑥 찾아온 객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고고히 흐르는 시 문학의 역사가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여행하면서는 알 수 없었던 면면들이 성큼 다가오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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