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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익산에 숨겨진 백제의 이야기
익산에 숨겨진 백제의 이야기
  • 유은비 기자
  • 승인 2017.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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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백제 - 익산
무왕이 꿈꿨던 세상 속을 거닐다
사진 / 유은비 기자
백제 무왕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마지막 염원이 깃든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이 남아 있는 익산. 사진 / 유은비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익산]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유적지구 세 번째 도시는 전북 익산이다. 익산은 백제 무왕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그의 마지막 염원이 깃든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익산의 백제 유적지에 얽힌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패자의 기록은 역사 속에 남겨지지 않듯, 멸망한 백제에 대한 기록도 발견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가 성공했는지의 여부도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하지만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은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의 흔적과 고대 국가들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유적지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백제인의 염원을 담은 미륵사지
‘서동왕자’로 친숙한 백제의 무왕. 서동왕자 옆에는 늘 선화공주가 이름표처럼 붙어 다닌다. 하지만 미륵사지석탑에서 출토된 ‘금제사리봉영기’에는 석탑이 지어질 당시 무왕의 왕후는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선화공주 이야기는 항간에 떠돌던 소문에 불과했던 것일까? 

“‘금제사리봉영기’ 내용에는 왕과 왕실의 번영을 염원하는 내용은 있지만 무왕의 아들인 의자왕에 대한 언급은 없어요. 따라서 사택적덕의 딸이 의자왕의 생모는 아닐 거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지요.” 이근영 문화관광해설사의 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석탑이 세워졌던 시기에 무왕은 예순을 넘긴 나이였고 처음부터 사택적덕의 딸이 왕후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선화공주는 아마도 무왕 집권 초창기의 왕비였을 것이라는 해석의 여지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보통의 사찰이 1탑 1금당 형태를 취하는 것에 비해 미륵사지는 3탑 3금당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세 개의 사찰이 하나를 이루는 거대한 사찰이었던 셈이다. 백제의 백성들이 신라와의 잦은 전쟁으로 피폐한 삶을 살아가자, 무왕이 당시 유행했던 미륵사상을 토대로 백성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주고 중심을 잡아주고자 미륵사를 지었다. 즉, 백성이 무왕 자신을 따르고, 무왕은 미륵부처를 맞이하여 다함께 극락에 이르도록 만들겠다는 뜻을 눈앞에 보여준 것이다. 

사진 / 유은비 기자
녹음이 푸른 미륵사지 전경. 사진 / 유은비 기자
사진 / 유은비 기자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돌들을 관리 중이다. 사진 / 유은비 기자

미륵사지에는 한쪽이 무너져 내린 서쪽 석탑과 92년도에 새롭게 지은 동쪽 석탑이 남아 있다. 이근영 해설사는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 형식으로 지어진 석탑으로 한반도 역사상 목탑양식에서 석탑양식으로 발전한 시발점이 되어주었다”고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 때 서쪽 석탑이 무너지려 하는 것을 시멘트로 막아 보존하였고 이제는 그 시멘트를 떼어내고 해체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그 작업 현장은 일반인들도 관람할 수 있다. 일체 기계를 쓰지 않고 석공들이 직접 손으로 돌을 다듬어 만든다. 이근영 해설사는 “아침마다 들려오는 정으로 돌을 다듬는 소리는 마치 노랫소리와 같다”고 말한다. 백제의 선조들이 그랬듯, 지금의 석공들도 염원을 담아 서서히 석탑을 복원해 나가는 중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3층까지만 복원하고 나머지 부분은 무너진 그대로 놔둘 계획이다. 석탑을 축조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추측만으로 복원을 하면 문화재가 아닌 창작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미륵사지에 우뚝 선 동쪽 석탑은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문을 열어두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석탑 안에서 탑돌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백제인의 안녕을 염원하는 탑 안으로 들어가 어깨를 중심석에 대고 천천히 세 바퀴를 돌아본다.

사진 / 유은비 기자
미륵사지석탑의 해체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사진 / 유은비 기자
사진 / 유은비 기자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전경. 사진 / 유은비 기자

Info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1월 1일, 월요일 휴무)
주소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문의 063-830-0900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다, 왕궁리유적
백제의 도읍은 한성에서 공주, 부여로 옮겨진다. 무왕은 익산으로 천도할 계획도 지니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왕궁리유적이다.

“백제 무왕이 본인이 나고 자란 익산 금마지역에 도읍을 세우려고 했던 것은 왕권강화의 한 축이었습니다. 당시 금마에는 강력한 마한 세력이 있었는데 무왕이 힘을 가지려면 마한 귀족들의 지지가 절실했죠.”(조선영 익산시 역사문화재과 학예사)

무왕은 어지러운 백제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마한 세력을 통합하고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다시 백제를 일으킬 계획을 세운다. 중앙귀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세력을 규합하고자 익산으로 천도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왕궁리유적 탐방은 2단까지 복원한 궁장(궁궐담장)을 따라 1.5km의 유적지를 한 바퀴 도는 것에서 시작된다. 왕궁리유적지에 들어선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백제 멸망 후 왕궁터가 사찰로 변모하며 생긴 왕궁리오층석탑뿐이다. 곳곳의 풀덮인 작은 언덕들은 당시 건물이 있던 장소들을 나타낸다. 이를 통해 건물지의 대략적인 규모만 파악할 수 있다.

궁장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왕궁의 후원에 도착한 것이다. 궁궐 내에 정사를 보는 공간 외에 정원시설은 중국 남조시대의 궁궐 축조 방식과 비슷하다. 이는 중국과의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료이기도 하다. 후원에는 곡수로와 환수로가 구불구불 조성되어 있어 백제인들의 섬세한 조경기술을 엿볼 수 있다. 곡수로는 후원 안을 흐르는 개울이였고, 환수로는 왕궁을 U자로 크게 도는 수로였다. 환수로 안에는 백제시대에 정원석으로 사용했던 돌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왕궁리유적 후원은 현재 진행중인 곡수로와 환수로 복원 공사가 마무리 되면 과거 물이 흐르는 후원을 거닐어볼 수 있게 된다.

사진 / 유은비 기자
왕궁리유적 후원에 복원중인 곡수로. 사진 / 유은비 기자
사진 / 유은비 기자
왕궁리 유적에서 만나는 왕궁리오층석탑. 사진 / 유은비 기자
사진 / 유은비 기자
왕궁리유적전시관의 모습. 사진 / 유은비 기자

왕궁리유적에서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제석사지도 빼놓을 수 없는 백제유적지다. 제석사지는 무왕이 천도를 꾀하며 지은 왕실사찰터로 추정된다. 639년 제석사에 내린 벼락으로 목탑은 불타버렸지만 탑 안의 사리장엄은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기이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제석사지가 불에 탄 것도, 미륵사지 석탑을 만든 것도, 일본에 백제대사라는 절이 지어진 것도 모두 639년의 일입니다. 무왕 말년에 왕실에서 정말 많은 일들을 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죠.”(조선영 익산시 역사문화재과 학예사)

왕궁의 터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져버린 백제.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것은 유적지에 남겨진 건물지와 돌, 탑뿐이지만 익산은 하나씩 역사의 덮개를 들추어 백제 역사의 퍼즐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Info 왕궁리유적전시관
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1월 1일, 월요일 휴무)
주소 전북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문의 063-859-4632

Tip 
익산에서 선정된 백제문화유산은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 두 개이지만 왕가의 사찰터인 제석사지와 무왕과 선화공주의 능으로 추정되는 쌍릉 그리고 낮지만 동서남북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익산토성까지 백제문화와 관련하여 함께 둘러볼만한 여행지가 많다. 익산토성과 쌍릉은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7월호 [세계유산백제 -익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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