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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 곡성에 귀촌해 살아남기, “여기서 뭐 하면서 살지?” – 곡성 안개마을 ➃
[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 곡성에 귀촌해 살아남기, “여기서 뭐 하면서 살지?” – 곡성 안개마을 ➃
  • 김세원 기자
  • 승인 2019.04.26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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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전후로 지역에 대한 정보 파악해야...
군청 홈페이지 구인 공고 활용하면 일자리 구할 수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
4월의 곡성은 철쭉으로 가득하다. 사진은 기차마을의 모습. 사진 / 김세원 기자
4월의 곡성은 철쭉으로 가득하다. 사진은 기차마을의 모습. 사진 / 김세원 기자

[여행스케치=곡성] 귀촌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안개마을이 어떤 마을인지, 거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 안개마을에 자리 잡은 지 나흘째, 이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 살게 될 사람을 위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일교차가 심하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안개가 마을 전체를 덮는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일교차가 심하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안개가 마을 전체를 덮는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안개가 자욱이 피어나는 안개마을
섬진강 변에 자리한 곡성 안개마을은 마을 이름대로 새벽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을에 안개가 자욱이 피어나는 곳이다. 곡성을 둘러싸고 있는 산 위로 뿌연 안개가 덮일 때면 저곳에 신선이 살고 있진 않을까 할 정도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약 400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16명 정도의 귀농귀촌인이 살고 있다. 400가구가 산다고는 하지만 동네는 조용한 편.

고달면사무소를 중심으로 고달초등학교, 우체국, 경찰서 등 관공서들이 한곳에 모여있다. 사진은 고달초등학교 정문. 사진 / 김세원 기자
고달면사무소를 중심으로 고달초등학교, 우체국, 경찰서 등 관공서들이 한곳에 모여있다. 사진은 고달초등학교 정문. 사진 / 김세원 기자
학교 안에도 철쭉이 피어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학교 안에도 철쭉이 피어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안개마을이 있는 고달면의 큰 특징은 읍내가 지척이라는 것과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작지만 마을 안에 모두 있다는 것.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는 이곳에 귀농귀촌을 체험하러 왔다고 하니 “여가 시골치고는 깨깟하제” 하며 동네 자랑을 늘어놓는다. “읍내에 안 나가도 농협도 있고, 면사무소도 여 있고” 할머니 말씀처럼 읍내와 고달면을 연결하는 고달교를 건너 쭉 들어오면 로터리 앞으로 고달 초등학교와 면사무소를 시작으로 경찰서, 의용소방대, 우체국까지 편의 시설이 모두 모여 있다. 함께 체험을 한 체험자는 “경기도에 있는 우리 집보다 경찰서가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기차 모양을 본따 만든 고달면 버스 정류장. 사진 / 김세원 기자
기차 모양을 본따 만든 고달면 버스 정류장. 사진 / 김세원 기자
어딜 가나 버스 시간을 확인한 후 이동하는 것이 좋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어딜 가나 버스 시간을 확인한 후 이동하는 것이 좋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대부분의 일을 동네 안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장이 열리는 등 나갈 일이 생기면 버스를 타야한다. 시골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면 차가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이곳의 버스는 배차간격이 넓고 마을을 돌아 돌아가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택시를 타면 되지 않느냐 말할 수도 있지만, 이곳의 택시는 대부분 콜택시로 운영된다. 콜택시가 아니더라도 미터 단위가 아닌 마을에서 마을 단위로 값을 책정하거나 관광택시가 대부분인지라 수도권의 택시 값보다 비싼 경우가 다반사다. 

차가 없는 경우라면 버스 시간표를 읽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시간표를 읽기 위해선 곡성 곳곳의 지명을 먼저 숙지해야 한다. 고달과 석곡, 옥과 등 처음에는 생소하지만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것만큼 마을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는 방법은 없다”는 임채홍 도농교류센터 센터장의 말처럼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류장에서 만난 주민들 중 몇몇은 “어디 가는디? 거그는 볼 것이 영 없는디”하며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귀촌인 추선호 협동조합 '섬진강두꺼비' 대표. 사진 / 김세원 기자
귀촌인 추선호 협동조합 '섬진강두꺼비' 대표. 사진 / 김세원 기자

귀촌한 당신, 곡성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요?
마을에서 택배도 보내고 읍내로 버스타고 나가는 것도 일이지만, 살아보기를 시작했을 때 한 가장 큰 고민은 ‘이곳에 내려와 어떤 일을 하고 살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미 이곳에 자리 잡은 다른 귀촌인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추선호 협동조합 섬진강두꺼비 대표는 가족 전체가 곡성에 귀촌한 케이스이다. 삼촌이 곡성에서 살고 있어 곡성으로 귀촌했다고 설명하는 그는 처음에는 곡성 봉정 농촌체험마을에 귀촌해 그곳의 사무장을 맡았다. “마을 관리는 어르신들이 하기 힘들어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는 편인지라 사무장일을 맡았다”고 설명한다. 

추 대표가 만든 곡성 지도,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추 대표가 만든 곡성 지도,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곡성 여행자들에게 전하는 귀여운 협박 메세지. 사진 / 김세원 기자
곡성 여행자들에게 전하는 귀여운 메세지. 사진 / 김세원 기자

곡성에 관광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추 대표는 주민 여행사인 ‘협동조합 섬진강두꺼비’를 설립했다. 내일로 여행자들을 곡성 읍내로 불러들이기 위한 읍내 지도를 만들고, 곡성 구석구석 향토 음식을 맛보며 여행하는 곡성 ‘맛담’ 등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이런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 않다”며 “군청의 지원도 마찬가지고 일이 지속되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시골에서도 자리 잡는 일은 참 어렵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가 대표로 있는 협동조합에 속한 '여행자 카페 1933'에서 직원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그가 대표로 있는 협동조합에 속한 '여행자 카페 1933오후'에서 직원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나도 아는 곡성 사람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추 대표에게 주변의 귀촌인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묻자 그는 “처음에 농사를 짓던 친구는 농사가 쉽지 않아 점점 줄이고 다른 일을 구해서 하고 있다”며 설명한다. 

군청 홈페이지에 가 보면 구인글이 많이 있다. 하지만 보통 군청에 올라오는 구인 글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의 단기직이다. 추대표는 “이곳에서는 대부분 일을 알음알음 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연고가 없는 귀촌인들에겐 막막한 말이다. 

그럼에도 보통 시골은 대부분의 일이 ‘알음알음’ 진행된다. 귀촌해 집을 지으려 해도 부동산에서 땅이나 집을 구하기 쉽지 않다. 부동산 보다는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 팔기 때문. 그래서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곡성인들과 친해져야 한다. 

'여행자카페 1933오후'의 1933은 곡성역이 지어진 년도를 의미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여행자카페 1933오후'의 1933은 곡성역이 지어진 년도를 의미한다. 벽에는 곡성 지도가 그려져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여행자카페 1933오후'의 전체적인 모습. 사진 / 김세원 기자
'여행자카페 1933오후'의 전체적인 모습. 사진 / 김세원 기자

추 대표는 이 점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다들 잘해주시죠. 처음 만나도 금방 친해져요. 근데 진짜 내 이웃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죽었나, 살았나 전화도 먼저 가끔 해보고, 먹을 것도 나눠먹고 그런 건데 그렇게 되기까지가 정말 힘들죠.”

어떻게 친해졌는지 비결을 묻자, 술자리로 친해졌다며 농담을 건네는 추 대표는 꽤 다양한 방법을 알려준다. “동호회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며 “생활체육이나 취미 모임 활동을 자주 하거나 마을에 일이 있을 때마다 나가 주민들과 더 자주 어울리면서 금세 친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성 귀촌인의 경우에는 여성 농업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한 군청의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을 만나 어울릴 수 있다.

카페 내에 다양한 곡성 관련 리플렛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카페 내에 다양한 곡성 관련 리플렛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적극적으로 마을 사람들과 살을 비빌수록 친해질 기회가 높다는 것. 궁금한 게 있을 때, “김씨는 어디 갔당가?”하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으면 소문이 돌고 돌아 반나절만에 “서울갔디야.” 하고 답이 돌아올 정도로 소문이 빠른 곳이라던 임채홍 센터장의 설명처럼, “마을이 작아 소문이 빠르다 보니, 행동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도 전했다.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여기선 완전 고립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거예요. 인사만 잘하면 쌀과 김치가 생긴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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