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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여행 레시피]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지리산둘레길! 찰랑찰랑, 지리산 그림자 드리운 청초한 숲길
[여행 레시피]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지리산둘레길! 찰랑찰랑, 지리산 그림자 드리운 청초한 숲길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19.05.0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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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도를 잇는 대표적 걷기여행 코스, 지리산 둘레길
어디서 시작하든 원점으로 돌아오는 환형길
'인월~금계' 코스는 21개코스 중 가장 인기가 좋아
남한 내륙의 대표적 걷기여행 코스인 지리산 둘레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한 내륙의 대표적 걷기여행 코스인 지리산 둘레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원] “2008년 봄 시범구간 20여km를 시작으로 개통 11년째를 맞은 지리산둘레길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 21개 읍•면, 120여 개 마을 277km를 잇는 남한 내륙의 대표적 걷기여행 코스이다. 지리산자락의 옛길, 마을길, 숲길, 강변길 등을 둥그렇게 연결한 이 길에선 지리산의 장엄함과 아름다운 풍경, 그 땅에 기대어 사는 모든 생명들의 활력이 느껴진다.”

지리산자락을 한 바퀴 휘돌아 잇는 지리산둘레길은 어디서 시작하든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환형의 길이다. 보통은 전북 남원시 주천면 ‘주천~운봉’을 1구간으로 부르며, 함양~산청~하동~구례를 지나 다시 주천으로 돌아오는 21개 코스로 이뤄졌다.

남원의 둘레길은 운봉 들녘과 백두대간, 이성계가 왜구에 맞서 대승(황산대첩)한 길이고, 구례는 천은사•화엄사•연곡사•운조루 등 뜻깊은 문화재를 품은 길, 섬진강과 서시천의 강변길이다.

하동은 야생차밭과 형제봉 능선의 산길이자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악양 들녘을 지나는 문화의 길이고, 산청은 남명 조식(1501~1572)의 흔적을 되짚고 웅석봉과 왕산 산길, 또 경호강을 따르는 예쁜 길,

마지막으로 함양은 옛 선인들의 발자취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길이다. 하여, 지리산둘레길 걷기여행은 어느 한 곳 소홀히 할 수 없는 특별한 도보여행이 될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중 한 곳만 걸을 생각이라면 인기가 가장 좋은 '인월~금계'가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지리산 둘레길 중 한 곳만 걸을 생각이라면 인기가 가장 좋은 '인월~금계'가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매동마을을 출발해 숲길을 걷다
마치 스페인의 산티아고처럼 지리산둘레길도 한 번에 이어 걷는 이들이 있다. 주말마다 혹은 한 달에 한 번, 구간을 끊어 걷는 이들도 있다. 만약 딱 한 곳만 걸을 생각이라면 스물한 개의 길 중 제일 인기가 많은 ‘인월~금계’가 좋다. 다만 20여km 남짓의 만만치 않은 거리여서 현지에서 하룻밤 묵지 않는 한, 체력이 좋고 걸음이 빠르지 않는 한, 하루에 끝내긴 버거운 코스다.

딱 하루, 여유 있게 걸어볼 참이라면 구간을 절반으로 나누는 게 낫다.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은 11년 전 지리산둘레길이 처음 태동했을 때 시범구간으로 먼저 선택된 곳이었다. ‘매동~금계’는 둘레길 전체 구간을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갈림길마다 알록달록 안내리본과 방향을 알리는 둘레길 이정표가 서있다. 매동에서 금계로 갈 경우 빨간색 화살표를 따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갈림길마다 알록달록 안내리본과 방향을 알리는 둘레길 이정표가 서있다. 매동에서 금계로 갈 경우 빨간색 화살표를 따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인월에서 출발한 버스 안에는 배낭을 멘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매동마을에 내린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봄비치고는 꽤 많은 양의 비가 연일 내리다 모처럼 맑게 갠 날이었다. 매동마을로 들어선 순간부터 따스하게 선 지리산 천왕봉(1915m) 능선이 보인다. 마을 오른쪽으로 들어서 뒤편 대숲 사이로 올라서면 장항마을에서 흘러온 지리산둘레길과 만난다. 둘레길 나무 이정표엔 검은색과 빨간색 화살표가 있는데 빨간색은 금계마을, 검은색은 구간 출발점인 인월 방향이다. 이제부터는 갈림길마다 알록달록 붙은 안내 리본과 빨간색 화살표가 안내자 겸 동행이 된다. 

촘촘히 쌓인 다랭이 논이 마을을 지나자 반겨온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촘촘히 쌓인 다랭이 논이 마을을 지나자 반겨온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무더기로 폈던 민들레가 지고 솜털처럼 가벼운 꽃씨만 바람 따라 여행을 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무더기로 폈던 민들레가 지고 솜털처럼 가벼운 꽃씨만 바람 따라 여행을 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노랑 보라 하양, 고개를 내민 꽃들과 지저귀는 새들은 누구보다도 좋은 동행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노랑 보라 하양, 고개를 내민 꽃들과 지저귀는 새들은 누구보다도 좋은 동행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마을이 멀어질수록 숲은 깊다. 수분을 한껏 머금은 나무는 쾨쾨한 먼지를 벗겨내고 청초한 공기를 쏟아낸다. 초록의 기운을 가득 품은 공기였다. 흐음 흐음, 폐부 깊숙이 숲의 정기를 담아본다. 촉촉한 흙을 밟을 때마다,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숲은 저마다의 향기를 내뿜으며 나풀댄다. 혼자여도 상관은 없다. 노랑 보라 하양, 고개를 내민 꽃들과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들은 누구보다도 좋은 동행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오가는 이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한다. 숲을 나서면 마을길이고, 마을을 지나면 촘촘히 쌓인 다랭이논이 반긴다. 아직은 모내기 전이어서 논마다 찰랑찰랑 물이 담겼다. 물속에 드리운 지리산이 덩달아 흔들렸다. 새하얀 꽃그늘 아래 무더기로 핀 민들레도 있다. 꽃은 지고 솜털처럼 가벼운 꽃씨만 바람 따라 너울너울 여행을 한다.

등구재 직전 '등구령쉼터'의 입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등구재 직전 '등구령쉼터'의 입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등구재를 넘어 함양땅으로
등구재 직전 ‘등구령쉼터’에 배낭을 내리고 청국장 1인분을 시킨다. 걷는 길 좌우로 식당과 민박을 겸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빠르게 걷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쉼터가 있으면 먹고, 그늘이 있으면 앉고, 예쁜 게 있으면 찍기도 하며 천천히 걷는 것도 참 좋다. 그럴 때라야 길섶의 키 작은 꽃들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쌉싸름한 구절초식혜로 갈증을 달래고, 뒤이어 나온 산나물 반찬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직접 뜯어 말린 나물이니 남기지 말라”는 주인장의 말끝엔 구수한 정이 담겼다. 서비스로 내준 (주인이 직접 채취해 만든) 한방차까지 싹 비우고 자리를 턴다. 그 덕에 고개를 넘는 길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너무 많이 먹었어, 헥헥.

1인분 8천원인 등구령쉼터의 청국장. 이곳 외에도 식당과 민박을 겸하는 집들이 많다.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가는 것도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1인분 8천원인 등구령쉼터의 청국장. 이곳 외에도 식당과 민박을 겸하는 집들이 많다.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가는 것도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거북이 기어 올라간 지형'과 닮아 이름 붙은 등구재로 가는 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거북이 기어 올라간 지형'과 닮아 이름 붙은 등구재에서 창원마을로 가는 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거북이 기어 올라간 지형’과 닮았다 해서 지금의 이름이 된 등구재를 기준으로 걸어온 길은 남원시 산내면 땅이고, 가야 할 길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땅이다. 등구재는 전라도를 등지고 경상도로 넘어서는 길이자 그 옛날 영호남을 잇는 교통로였다. 이 길은 등구재 아래 창원마을 사람들이 인월장을 보기 위해 넘었던 곳이며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마천면으로 통하는 유일한 고개였다. 둘레길 이정표 옆엔 삼봉산 3.1km, 금대암 2.9km라는 이정표도 서있다. 등산로로 접어들지 말고 큰길을 따라 곧장 내려선다.

창원마을 임도를 지나 등구재로 향하는 둘레꾼들. 매동에서 금계로, 금계에서 매동으로, 어디서 시작하든 상관은 없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창원마을 임도를 지나 등구재로 향하는 둘레꾼들. 매동에서 금계로, 금계에서 매동으로, 어디서 시작하든 상관은 없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창원마을 지나 금계마을로 하산
창원마을에 다가설수록 천왕봉은 더 크고 가깝게 보였다. 시멘트 포장 임도를 내려서자 ‘아이스 홍시’를 파는 무인판매대가 나온다. 가격은 천원. 투명 냉동고 안에 차곡차곡 쌓인 홍시에 침이 고이지만 지갑에 들어있는 거라곤 만원짜리 지폐 한 장. 이 길을 걸은 이들은 안다, 농부들의 땀과 노력을…. 지키는 이가 없다 하여 “나 하나쯤!” 양심을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여전히 배는 불렀지만 이번엔 마을 어귀 카페에 들른다. 길을 걷던 이들도 자석에 끌리듯 하나둘 안으로 들어선다. 마치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 어스름에 도착한 주막 같다. 짚신을 벗고 봇짐을 내리고 갓까지 벗어둔 채 “주모, 여기 시원한 탁주 한 사발 주시오!” 옛 길손들처럼 21세기 둘레꾼들은 작은 마을카페에 들러 저마다 목을 축이고, 속을 채운다.

창원마을 어귀의 작은 카페 ‘안녕’. 넉넉한 일정이므로 먹고 쉬고 찍고, 쉬엄쉬엄 걷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창원마을 어귀의 작은 카페 ‘안녕’. 넉넉한 일정이므로 먹고 쉬고 찍고, 쉬엄쉬엄 걷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낮은 산 하나만 넘으면 금계마을이 나온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낮은 산 하나만 넘으면 금계마을이 나온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제 낮은 산 하나만 넘으면 종점인 금계마을이다. 하늘과 맞닿은 길은 텅 비어 있다. 둘레꾼은 더 이상 보이질 않고 막바지 고사리 채취 작업을 하느라 어르신들만 허리 펼 일 없이 분주하다. 숲길을 나와 두릅 밭을 벗어나면 곧 금계다. 오늘은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지만 길은 동강마을을 지나 산청으로, 하동으로, 구례로, 다시 남원으로 이어진다. 길은 아직도 저 끝에 남아 걷는 이들을 기다린다. 걷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지리산 둘레길의 녹음이 짙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지리산 둘레길의 녹음이 짙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원데이 지리산 둘레길 여행 레시피
① 인월에서 버스를 타고 매동마을(1500원)에 내린다. 장항마을 앞에 내릴 경우 도로 옆 이정표를 따른다. 인월에 있는 안내센터(063-635-0850)에 들러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② 이후로는 둘레길 이정표의 빨간색 화살표를 지침서로 삼는다. 호음교~배정교 등 다리가 있지만 징검다리도 있으므로 폭우가 내린 직후엔 가지 않는 게 좋다.
③ 등구재 아래 창원마을까진 시멘트 포장도로이고, 금계까진 산길이다. 금계마을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자가용을 타고 왔다면 주차를 해둔 매동마을까지 버스(1900원)나 택시(약 17,000원)를 이용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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