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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책이 있다] 흐린 잿빛과 화려한 붉은빛이 뒤섞인 차이나타운, 소설 '중국인 거리'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책이 있다] 흐린 잿빛과 화려한 붉은빛이 뒤섞인 차이나타운, 소설 '중국인 거리'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6.07.22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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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를 읽다
인천역에 나오자마자 눈에 보이는 중국식 전통 대문 패루. 사진 / 김샛별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인천] 누군가는 계절이 바뀜을 냄새로 먼저 알아차린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9월, 여전히 늦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서늘한 가을 공기를 맡아내는 이에겐 천천히 골목을 돌아나온 가을의 냄새가 느껴진다. 그 가을의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책을 들고 떠난다.

“바다를 한 뼘만치 밀어 둔 시의 끝”, 중국인 거리
이상하게도 인천에 갈 때마다 날이 맑았던 기억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분명 날이 맑을 거라는 일기예보를 보고 떠났지만 어김없이 날이 흐려지더니 차이나타운에 도착하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이나타운의 화려한 붉은빛은 언제고 잿빛의 기억과 엉켜 있었다. 그러나 싫지만은 않았다.

수인선 철도가 지나는 인천 부둣가의 끝. 차이나타운을 오정희는 이렇게 말했다. “해안촌(海岸村) 혹은 중국인 거리라고도 불리어지는 우리 동네는 겨우내 북풍이 실어 나르는 탄가루로 그늘지고, 거무죽죽한 공기 속에 해는 낮달처럼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고.

그러니 황폐한 중국인 거리의 삶과 그 속에서 성장해가는 유년시절의 아홉 살 소녀의 회상으로 이루어진 「중국인 거리」를 손에 들고 도착한 차이나타운엔 맑은 날보다 잿빛의 날씨가 더 어울리지 않는가.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단편이 실려 있는 책과 차이나타운의 전경. 사진 / 김샛별 기자
화차에서 석탄을 훔쳐 그것을 돈으로 바꿔 쓰기도 했다는 「중국인 거리」 속 수인선을 상상해본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는 6·25 피난 도중 인천 중국인 거리로 이사 온 소녀의 이야기다. 커서 양갈보가 될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치옥과 고아원으로 보내지는 백인 혼혈아 제니, 흑인 병사와 국제 결혼을 꿈꾸던 양공주 매기 언니의 죽음 등을 겪으며 소녀는 초경을 터뜨린다.

지금의 볼거리 많은 중국인 거리와 달리 가난하고 전쟁의 상처로 뒤범벅된 그 시절의 비극상과 함께 소녀의 성장의 아픔이 그려진 소설이다.

그러나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낸 슬픔과 고통의 성장기와 달리 인천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중국식 전통 대문인 패루(牌樓)와 같은 화려한 중국식 건물과 건물마다 걸려 있는 붉은 등이 이곳을 찾은 이들을 반긴다.

그러나 붉은 물결만이 넘실대는 곳은 아니다. 차이나타운은 청·일 조계지(租界地·개항장 주변 외국인 치외법권지역) 계단을 경계로 중국식 전통가옥과 일본식 적산가옥으로 나누어진다. 

이 경계 왼쪽으로 1930년대에 지어진 중국식 가옥들과 중국식 사당인 의선당, 우리나라 최초의 화교 학교인 중산학교 등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1890~1900년 사이에 지어진 근대 일본 건물들과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인천 중구청 건물,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옛 은행건물들이 남아 있다. 

다른 듯 비슷했던, 소설 밖 인천의 풍경
최근에는 ‘인천 개항누리길’이라는 이름의 거리를 조성하면서 건물 외벽을 일본식 갈색 목조건물처럼 단장해놓아 정취를 느끼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전쟁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치열했던 함포 사격에도 제 모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것은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우는, 언덕 위의 이층집들과 우리 동네 낡은 적산 가옥들뿐이었다.”는 「중국인 거리」 속 말마따나 근대의 분위기가 이정도로 남아 있는 곳이 없다.

조계지 쉼터를 사이에 두고 왼편은 중국식 건물들이, 오른쪽으로는 일본식 적산가옥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일본식 적산가옥처럼 꾸며놓은 개항누리길. 사진 / 김샛별 기자
자유공원 안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사진 / 김샛별 기자

“공원의 꼭대기에는 전설로 길이 남을 것이라는 상륙 작전의 총지휘관이었던 노장군의 동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청·일 조계지 쉼터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자유공원이 보인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아이들과 함께 부두를 향해 걷거나 자유공원으로 오른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이곳엔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다.

주인공은 할머니가 죽은 뒤 공원으로 올라와 맥아더 장군의 동상에서부터 숲 쪽으로, 할머니의 나이 수대로 예순 다섯 발자국을 걸어 다섯 번째 오리나무 밑에 할머니의 유품을 몰래 묻어둔다. 예순 다섯 발자국이었던 걸음이 예순 번을 세자 동상이 되고, 다시 두 계절이 지나면 쉰 걸음으로 닿고… 죽음을 겪은 주인공은 내·외로 모두 성장한다.

장군의 동상에서 나무동산이 있는 곳이 아닌 오른쪽으로 난 작은 계단으로 내려가 보았다. 무성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시가지 전체와 저 멀리 부두의 풍경까지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조망한 중국인 거리는 그때와 다른 듯 비슷해 보인다.

시기별·작가별 한국 근대 문학을 한자리에서 만나다
조계지 쉼터 바로 아래에 위치한 한국근대문학관은 「중국인 거리」 뿐 아니라 인천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근대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1941년 개항기 창고건물을 보존·수선해 개관한 이곳엔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 원본과 복각본, 동영상이 있으며 2층에는 문학의 거리를 찾아가는 지도가 그려져 있고, 작지만 천장까지 가득 차있는 도서관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1941년 개항기 창고건물을 이용해 만든 한국근대문학관. 사진 / 김샛별 기자
자유공원에서 바라본 부둣가. 사진 / 김샛별 기자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중에서. 사진 / 김샛별 기자

이곳에서 책을 읽을까 하다 차이나타운을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로 향했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테라스 자리 대신 안쪽 자리에 앉아 다시 「중국인 거리」를 읽었다.

'인생이란……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이라는 문장을 따라 적어본 뒤 창밖 풍경을 보았다. 흐린 잿빛 사이로 어느새 화려한 붉은빛 조명들이 켜져 있었다. 책을 덮고 다시 그곳을 빠져나갈 시간이었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6년 9월호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책이 있다]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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