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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여행 레시피]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의 사찰여행, 노고단 길목에 자리한 천은사와 화엄사
[여행 레시피]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의 사찰여행, 노고단 길목에 자리한 천은사와 화엄사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19.06.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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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3대 사찰 중 두개, 천은사와 화엄사
30여 년 만에 입장료를 폐지한 천은사
삼층, 오층 석탑부터 죽로차까지, 화엄사
구례의 여름은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소소한 체험까지 둘러볼 곳이 다양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천은사와 화엄사를 거쳐 오르는 지리산 노고단. 해발 1000미터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구례] 자연이 품고 키운 전남 구례는 지리산의 햇살과 섬진강 바람 덕분에 그 풍경이 예사롭지 않은 땅이다. 노고단·피아골·만복대·오산·견두산 등산로와 송정부터 밤재까지 이어진 약 82km의 지리산둘레길, 명찰 화엄사·천은사·연곡사·사성암과 쌍산재·운조루·곡전재 등의 고택, 봄이면 매화와 산수유를 필두로 연분홍 터널을 이룬 벚꽃, 여름에 즐기는 래프팅,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 곳곳에 숨은 맛집과 카페, 초여름이면 들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우리밀 재배지역과 소소한 체험까지, 둘러볼 곳이 많아도 너무 많아 탈이다.

지리산의 대표적 산행 코스가 한둘은 아니지만, 산에 좀 다녔다는 사람들은 흔히 주능선 종주를 최고로 친다. 25km 남짓의 거리에 해발고도 1천 미터를 훌쩍 넘는 봉우리도 여럿이어서 보통은 벽소령과 장터목대피소 등에서 두어 밤 묵어가며 걷는, 결코 시간과 체력 면에서 쉬운 길은 아니다. 이 종주 코스의 기점은 서쪽의 노고단(1507m)과 동쪽의 천왕봉(1915m)인데, 구례의 노고단은 꼭 대형 배낭에 등산화를 신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어 주말과 성수기엔 주차할 곳도 모자랄 정도다. “여기는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지리산 노고단입니다.”라는 오래된 광고 문구처럼 노고단 아래 성삼재까진 노선버스도 오고간다.

1인 1600원이던 입장료가 폐지된 천은사는 감로천과 무지개다리 수홍루가 대표적인 볼거리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1인 1600원이던 입장료가 폐지된 천은사는 감로천과 무지개다리 수홍루가 대표적인 볼거리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구렁이 전설 깃든 천은사
성삼재로 가는 버스는 구례에서만 탈 수 있는데, 매번 천은사 입구에서 고성이 높아지곤 한다. 천은사에 가지 않는 이들도 절 앞의 도로를 지난다는 이유만으로 1인당 16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잔돈과 입장권을 손에 쥔 매표원은 버스 안으로 들어와 뒷좌석부터 착실하게 요금을 걷어간다. 자가용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파가 몰리는 주말엔 표를 끊는 줄이 길게 늘어지곤 했다.

“왜 절에도 가지 않는데 입장료를 내야 합니까?” 구례를 통해 노고단을 오가는 이들에게 천은사 매표소는 늘 불쾌한 기억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 4월 29일, 30여 년 만에 천은사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노고단 탐방객들도, 천은사 방문객들도 부담을 덜게 됐다. 그것은 1600원의 액수가 아닌 부당함에 대한 해방이기도 했다.

천은사는 인근의 화엄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천은사는 인근의 화엄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지리산 가운데서도 특히 밝고 따뜻한 곳에 자리” “지리산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절 옆으로” “우람한 봉우리가 가람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는 천은사 일주문을 통과하면 우측에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지리산 3대 사찰’ ‘구렁이의 전설이 깃든 감로천’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수홍루’ 등의 표현은 마치 천은사를 대표하는 핵심문구처럼 부각된다.

인근 화엄사, 하동 쌍계사와 더불어 지리산을 대표하는 이 절집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신라 흥덕왕 3년(828) 인도 출신 덕운스님에 의해 창건된 후 도선국사가 중창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고려시대 이후로 번성했지만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 사찰의 역사는 잊히고 지워졌다.

이후 1610년(광해군2) 소실된 가람을 중창해 명맥을 이었고, 1679년(숙종5)엔 감로사였던 절 이름을 천은사로 바꾸었다. 앞서 소개한 ‘구렁이의 전설’도 절 이름과 관련됐다. 절 샘가에 출몰한 큰 구렁이를 잡아 죽인 후로 물이 솟지 않아 ‘샘이 숨었다’는 뜻의 ‘천은사’가 되었다는 것. 하지만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등 불상사가 끊이질 않자 원교 이광사(1705~1777)가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한 필체’로 일주문 현판을 써주자 그 후론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는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일주문을 나서면 무지개다리, 수홍루가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천은사는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일주문을 나서면 무지개다리, 수홍루가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경내에는 아직 초록빛을 뽐내는 은행나무와 석등이 어우러져 풍광을 자아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경내에는 아직 초록빛을 뽐내는 은행나무와 석등이 어우러져 풍광을 자아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일주문을 나서자마자 예쁜 무지개다리 수홍루가 보인다. 천은사의 아름다움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수홍루를 건너 경내로 들어서면 아직은 초록인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와 석등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 지난 5월 지방유형문화재였다가 보물 제2024호로 승격된 극락보전이 나온다. 천은사의 숨겨진 비밀은 팔상전을 돌아 담장 밖으로 나설 때 진가를 발휘한다. 야생차밭을 지나 계곡을 건너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알파피넨 성분이 풍부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쉬엄쉬엄 이 길은 수홍루 앞에서 끝을 맺는다.

입장료 값을 톡톡히 하는 화엄사는 산길을 통해 노고단을 향할 때 거치게 되는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입장료 값을 톡톡히 하는 화엄사는 산길을 통해 노고단을 향할 때 거치게 되는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지리산 3대 사찰, 보물 가득 화엄사
구례에서 차를 이용해 노고단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천은사라면, 산길을 통해 노고단을 갈 때 거쳐야 할 곳은 화엄사다. 지리산의 3대 사찰 중 두 개인 천은사와 화엄사는 모두 노고단 아래 있어, 지리산 산행과 여행의 출발점이 된다.

입장료가 폐지된 천은사와는 달리 화엄사는 여전히 3500원의 입장료를 받지만, 화엄사에 들어서면 결코 그 돈이 아깝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에 맞춰 갈 경우 맛있는 점심 공양을 무료로 할 수 있는데다 화엄사를 필두로 구층암 길상암 연기암 등을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를 겸한 산책로는 말할 것도 없다.

동서오층석탑은 국가보물 제133호로 화엄사 경내 대웅전 앞마당 서쪽에 자리해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동서오층석탑은 국가보물 제133호로 화엄사 경내 대웅전 앞마당 서쪽에 자리해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된 절로 국보 제67호 각황전과 국보 제35호 사사자삼층석탑, 보물 제299호 대웅전, 각각 보물 제132, 133호인 동서오층석탑 등 국가지정 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사찰이다.

근래엔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 홀로 핀 홍매화가 국보만큼 인기가 높다. 족히 삼백년은 되었을 이 나무는 찬바람을 이겨낸 젊은 꽃들이 모두 잠들고 난 후에야 느릿느릿 꽃을 틔운다. 수년 전부터 3월 하순이면 이 꽃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꽃은 이제 지고 없지만, 초록의 잎들은 반짝반짝 꽃만큼 어여쁘다.

구층암은 다듬지 않은 모과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기둥으로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구층암은 다듬지 않은 모과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기둥으로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빼놓을 수 없는 구층암과 연기암
화엄사 뒤쪽 울창한 숲길 너머 구층암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아무렇게나 쌓은 듯한 삼층석탑이다. 미처 복원하지 못한 천 년 전 석탑의 어긋한 균형조차도 자연스런 곳. 석탑을 돌아 왼쪽으로 꺾으면 그제야 구층암의 천불보전이 나온다. 사실 구층암은 천불보전보다 요사채 기둥으로 쓰인 모과나무로 더 유명하다.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져다 쓴 자연 그대로의 건축 말이다.

죽로차의 명성도 자자한데, 정자 아래 앉아 한참을 기다려도 오가는 이가 없다. 스님은 수행 중이고, 일부는 텃밭을 가꾸느라 분주하다. 구층암에서 길을 더 이으면 길상암에 닿는다. 길상암엔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지정된 화엄매가 있다. 각황전 홍매보다 백 년 이상 선배로 사람이나 동물이 먹고 버린 씨앗에서 스스로 싹이 터 자란 들매화다.

붉은 매화꽃인 화엄매는 길상암에 위치해 있다. 각황전 홍매보다 수령이 백 년은 더 된듯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붉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여 흑매로도 불리는 화엄사 매화. 3월 말에 볼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화엄사 구층암은 죽로차로도 유명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대나무 아래에서 자라는 야생 죽로차는 화엄사 구층암에서 맛볼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화엄사에서 2km쯤 이어진 숲길 끝에 연기암이 있고, 연기암을 지나 길을 더 이으면 노고단에 닿는다. 이 ‘화엄사코스’는 성삼재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노고단으로 오르는 가장 대중적 길목이었다. 주능선 종주산행의 출발점은 화엄사였고, 많은 종주꾼들이 머리 위로 올라오는 배낭을 메고 이 길을 올랐다. 코가 땅에 닿을 만큼 힘들다는 코재를 지나 임도에 서면 일순간 딴 세상이다.

연기암을 지나면 노고단에 닿는다. 이 코스를 찾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연기암까지 길은 산책삼아 다닐만 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노고단 정상에서 내려다 본 노고단대피소와 성삼재휴게소.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땀을 뻘뻘 흘리고 선 산꾼을 슬리퍼나 구두 차림의 탐방객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본다. “차가 다니는데 왜 걸어서 힘들게 와요?” 도로가 뚫리면서 화엄사코스를 찾는 이는 현저히 줄었다. 그렇게 기억 너머로 사라진 코스지만 적어도 연기암까지의 2km는 산책 삼아 충분히 다녀올 만하다.

원데이 구례 여행 레시피
① 천은사 일주문과 수홍루를 지나 경내를 둘러본 후 팔상전 담장 밖의 오솔길로 들어선다. 야생차밭과 계곡, 소나무 숲을 거쳐 일주문으로 돌아오는 산책 코스다. 다 합쳐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② 천은사에서 6.5km 거리에 화엄사가 있다. 구례를 출발해 성삼재로 가는 버스는 화엄사와 천은사를 거쳐 가므로 노고단까지 오를 계획이라면 화엄사를 먼저 들러보고 천은사로 이동하는 게 낫다. 단 산길로 노고단에 갈 생각이라면 천은사~화엄사로 이동한다. 화엄사 입장료는 어른 3500원이다. 화엄사~구층암을 모두 돌아보려면 1시간 30분쯤 걸리지만 구층암에서 차를 마시거나 연기암까지 간다면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
③ 화엄사 입구에 산채를 주재료로 하는 식당들이 밀집돼 있다. 만남가든(061-782-9172)과 예원식당(061-782-9917) 등을 많이 찾지만 다른 곳도 가격과 맛은 비슷하다.
④ 성삼재주차장에서 노고단 정상까진 왕복 7.2km로 넉넉히 3시간쯤 걸린다. 정상 탐방은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예약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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