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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섬플러스⑧] 조기와 삼치들의 보금자리, 제주 추자도
[섬플러스⑧] 조기와 삼치들의 보금자리, 제주 추자도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9.06.19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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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에서 삼삼한 맛이 일품인 조기 매운탕을 맛보다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을 볼 수 있는 '나바론 하늘길 전망대'
하추자도에 어린 슬픈 전설 따라 이어지는 발걸음
추자도는 호두나무의 일종인 가래나무 추(楸)자를 쓴다. 42개 추자군도의 섬모양이 호두나무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제주도와 완도 사이에 있는 섬 추자도는 무슨 뜻일까? 한자로 개오동나무 추(楸)자를 쓰는 추자도. 조기와 삼치, 도미가 많이 잡히는 섬, 나바론 절벽에 하늘길이 있다는데….

여객선 밖으로 보인 바다는 평화로운 비취색이다. 물새 한 마리 날지 않은 바다를 여객선이 달린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제주와 완도의 중간지점에 있는 섬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드넓은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추자도는 한때 후풍도(候風島)였다. 고려 말, 삼별초군이 강화도와 진도를 거쳐 이곳에 머무르다 제주도로 옮겼다는데, 바람한테 앞날을 물었던 모양이다. 조선에 이어 일제강점기 때(1910년) 전라도를 벗어나 제주도에 편입되었다.

하추자도 신양항에 여객선이 도착하고, 여행객과 주민들이 섬에 오른다. 여행객을 내려준 여객선은 완도를 향해 뱃머리를 돌린다. 

제주항과 완도항을 오가는 여객선이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여행객을 태우고 내려준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추자도를 순회하는 관내 버스. 약 30분마다 다니며 요금은 1회 1000원이다.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하추자에서 상추자를 오가는 관내버스가 있다. 신양항에서 상추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버스요금이 1000원이다. 잔돈이 없어 주민에게 여쭸더니 교통카드로도 결제할 수 있다고 한다. 참 대단한 나라다. 추자도 관내버스요금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나라! 버스 2대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계속 돌아다닌다. 버스로 섬을 한 바퀴 도는데 약 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신양항에서 상추자까지 30분 남짓 달리니 민박집 앞에 도착했다.  

조기축제가 열리는 상추자도항
섬의 덩치는 하추자도가 더 크지만 면사무소나 수협, 우체국, 보건소 등 행정기관은 대부분 상추자도 대서리에 있다. 민박집이나 펜션 등 숙박업소, 음식점들도 대부분 상추자도항에 자리하고 있다. 

여장을 풀고 상추자도 일대를 걷기 시작한다. 항구는 조용하다. 드나드는 어선도 없이 몇몇 어선이 닻을 내린 채 주인을 기다리며 졸고 있다. 

추자항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추자도에 땅거미가 깔린다. 먼바다 너머로 태양이 잠수하고, 하늘에는 연한 노을이 번진다. 포구에서 저녁을 맞이하는 것은 영광스런 기회다. 저 지난날 배를 타던 선배들은 선창가 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놀던 추억을 들려주곤 했다. 이즈음엔 일부러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는 사라져간 잔영이다. 단란주점이나 노래방 간판에 불이 켜지지만 드나드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 

조기 매운탕이 먹고 싶다. 언젠가 추자도에서 삼치회를 먹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여름에는 삼치회가 제철이 아니다. 조기 굽는 냄새가 여행객을 유혹하는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추자도에선 해마다 가을이면 조기축제를 연다
지난 시절 조기는 연평도에서 많이 잡혔다. 영광 앞 칠산바다에서 연평도까지 조기떼가 몰려와 알을 낳는 동안 연평도와 흑산도, 영광에선 조기 파시가 열렸다. 그런 조기가 어느 날 서해에서 사라졌다. 연평도는 물론 영광 앞바다에서도 조기가 몸을 숨겨버렸다. 수온 탓이라고 하지만 어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조기들이 먼바다 깊은 물에 알을 낳지는 않을 터였다. 

추자항 전경. 9월 말에 이곳에서 조기축제가 열린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해 질 무렵이면 음식점에서 조기 굽는 냄새가 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추자도에서 맛볼 수 있는 조기 매운탕. 사진 / 박상대 기자

그 많던 조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어민들은 어군탐지기를 갖추고 조기 떼를 찾아다녔다. 몇 해 전부터 조기들이 추자도 인근에서 산란하고 있었다. 알에서 부화한 조기들은 깊은 바다를 떠돌다가 3, 4년 뒤에 2세를 낳기 위해 근해로 돌아온다. 예전에는 영광 부근에 머무르던 조기들이 이제는 추자도 인근에서 낳는다고 한다. 덕분에 추자도에는 조기잡이 선단이 오래 머무르고, 9월 말에 축제를 열기도 한다는 것이다. 

조기 매운탕은 삼삼한 맛이 일품이다. 미더덕 몇 개, 두부와 대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로 맛을 낸 조기 매운탕이 여행객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지갑을 열어간다. 국물 맛이 담백하고, 생선 기름 향이 지친 몸의 기운을 밀어 올리지만, 입안에서 살살 녹아버린 조기 살도 여행객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게 한다. 멸치젓갈과 묵은 김치도 "공기밥 추가“를 외치게 한다, 

추자도에서 가장 짜릿한 절벽 하늘길을 걷다
상추자도에 있는 추자도초등학교 옆길을 따라 언덕길을 오르자 최영 장군 사당이 있다. 사당 앞을 지나 숲길을 걷는다. 봉글레산 능선길을 걸으면 발아래로 대서리 마을이 있고, 저 멀리 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다. 

후포해안까지 가는 길은 임도인데 2km쯤 가면 후포해안에 이른다. 후포해안에는 갯바당잡이 체험장과 참다랑어 양식장이 있다. 후포해안에서 양식장을 바라보며 해안길을 걸어가면 1km지점에 용둠벙 낚시터와 나바론 하늘길 전망대가 있다. 이곳은 추자도의 비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을 보여주는 곳이다.

나바론 하늘길은 추자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절벽이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나바론 하늘길은 후포해변 안쪽 전망대 있는 언덕에서 시작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나바론 하늘길은 영화 ‘나바론 요새’의 무대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영국군이 전투를 벌인 에게해 캐로스섬의 나바론 절벽해안. 추자도 사람들은 이 해안의 비경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정자와 쉼터가 있고,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닦아놓았다. 바다를 보고, 숲과 들꽃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야 제맛을 다 경험할 수 있다. 2km에 이르는 나바론 하늘길은 추자도 올레길(18-1) 중에서도 손꼽히는 비경이다. 후포에서 용둠벙을 지나 절벽 위로 등대산전망대까지 나바론 하늘길이 이어진다. 

절벽 아래로 푸른 바다가 열려 있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꼼짝도 하지 않고 떠 있다. 바닷바람이 새 이불처럼 보드랍다.   

천주교 탄압을 고발하다 처형된 황사영의 아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는 추자대교로 이어졌다. 오른쪽 물리 쪽으로 돌든가 왼쪽 예초리 쪽으로 돌든가 섬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제주 올레길은 산능선을 타고 가고, 해안누리길은 해안선을 따라 나 있는 도로를 타고 간다. 돈대산 능선으로 나 있는 올레길을 선택하면 산길을 3km 남짓 계속 걸어야 한다.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황사영의 아들 경한의 묘. 어머니 정난주가 제주도 관비로 유배 가던 중 이곳 해변에 남겨두고 갔다 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묘지 인근 정자에서 만난 산딸기꽃. 사진 / 박상대 기자
6~7월에 개화하는 자귀나무꽃을 볼 수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하추자도에는 매우 슬픈 전설이 하나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신유박해(1801년) 당시 가톨릭 순교자인 황사영(알렉시오)과 부인 정난주와 아들 황경한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중국 유학파 선비였던 황사영이 극심하게 탄압받은 천주교 신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구원을 요청한 백서를 써서 중국에 거주하는 프랑스 주교에게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백서는 전달되기 전에 발각되었고, 황사영은 체포되어 곧바로 처형당했다. 

그의 부인 정난주(정약현의 맏딸)는 신분이 노비(제주도 관비)로 강등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당시 이들에겐 한살박이 아들(경한)이 있었는데, 추자도에 들렀던 정난주가 뱃사공에게 부탁하여 어린 아들을 예초리 해안가에 두고 떠났다. 아기를 담은 바구니에 아기의 이름을 남겨 두었는데, 황경한은 하추자도 어부에게 의탁되어 성장하였고, 이곳에서 부모 형제도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하추자도에는 황경한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전한다.

신양1리 동쪽 끝 산기슭에 황경한의 묘가 있다. 추자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언덕에 누워 있는 황경한을 찾는 천주교 순례자와 여행객들의 발길들이 이어지고 있다. 묘지 앞 순환도로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정자가 하나 있다. 정자 주변에 노랑원추리와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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