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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산으로 간 여행] 한라산 남부 오름길을 걷다, 돈내코에서 윗세오름까지
[산으로 간 여행] 한라산 남부 오름길을 걷다, 돈내코에서 윗세오름까지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9.06.25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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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내코 계곡을 시작으로 영실까지
평궤대피소에서 서귀포 앞바다 감상할 수 있어
현재 백록담은 자연휴식년제로 통제
돈내코탐방로 입구에 있는 공원묘지 표지석. 사진 / 박상대 기자
돈내코탐방로 입구에 있는 공원묘지 표지석.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서귀포 돈내코 계곡에서 남벽갈림길을 거쳐 윗세오름~ 다시 영실까지 바람과 안개와 꽃들과 함께 산행을 하고 왔다.

한라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기분은 상쾌함이다.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상관없다. 산길 주변이 아름답고 이채로운 풍경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이리라.

돈내코 계곡은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항상 흐르고, 작지만 아름다운 폭포가 있는, 난대림 숲과 주변 경관이 빼어나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다. 돈내코 유원지 입구에서 계곡까지 이어진 숲길은 빽빽이 들어선 나무와 중간 중간 설치된 벤치가 있어 산림욕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돈내코에서 한라산을 오르면 웅장한 남벽 라바돔을 마주하게 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돈내코에서 한라산을 오르면 웅장한 남벽 라바돔을 마주하게 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숲길은 원시림을 통과한다. 개울이 있고, 다양한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숲길은 원시림을 통과한다. 개울이 있고, 다양한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돈내코는 “돈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인데 그 이름은 다소 엉뚱하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멧돼지가 많이 출몰하여 돗드르라 불렸다. ‘돗’은 돼지, ‘코’는 입구, ‘내’는 하천을 가리키는 제주 말이다. 돈내코는 돼지들이 물을 먹었던 계곡 입구를 가리키는 말뜻을 품고 있다.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돈내코 계곡 입구보다 더 위에 있는 돈내코탐방로 입구로 가야 한다. 탐방로 입구에서 차를 내려 발길을 옮기자 좌우로 공동묘지가 있다. 묘지에는 하얀 삐비꽃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묘지 사잇길로 10여 분 오르자 숲길이 보인다. 

숲길을 들어서자 까만 까마귀들이 산객들을 안내한다. 반갑다면서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인지, 위험한 산길이니 조심해서 걸으라는 뜻인지 모르겠다.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

한라산에는 지리산, 덕유산과 함께 대표적인 구상나무 군락지가 있다.
한라산에는 지리산, 덕유산과 함께 대표적인 구상나무 군락지가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돈내코 탐방안내소에서 평궤대피소와 남벽분기점
돈내코 탐방안내소(해발 500m)에서 시작하여 숲길을 오른다. 평궤대피소(해발 1450m)를 지나 한라산 남벽분기점(해발 1600m)까지 이어지는 총 7km의 탐방로를 걸은 뒤, 윗세오름(1700m)을 거쳐 영실주차장까지(5.8km) 가야 한다. 남벽분기점에서 백록담을 올라야 하는데 현재 휴식년제 때문에 오를 수 없다. 

돈내코 탐방로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원시림인 듯 동백나무, 사스레나무, 단풍나무, 서어나무 등 활엽수들이 뒤섞여 있고, 드문드문 어린 구상나무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난대식물과 한 대식물이 어깨를 비비고 뒤섞여 있는 숲이다. 

한라산에는 1700고지까지 계곡물이 흐른다.
한라산에는 1700고지까지 계곡물이 흐른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평궤대피소에서 서귀포 앞바다와 한라산 남벽을 구경하는 사람들.
평궤대피소에서 서귀포 앞바다와 한라산 남벽을 구경하는 사람들. 사진 / 박상대 기자

숲속에는 좁은 오솔길이 나 있다. 등산객이 많이 찾지 않은 길인 듯싶다. 길옆으로 작은 개울이 있고, 개울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른다.

도시에서 안경을 착용해도 침침하던 시야가 숲에선 안경을 벗어도 맑아 보인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싱그럽고 건강하다. 산길을 오르는데도 시원하다. 땀이 조금 흐르지만 기분이 상쾌하다. 개울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을 한 웅큼 떠서 목덜미에 적시니 엔돌핀이 솟는다.  

숲을 가꾸는 것은 바람과 햇빛이다. 원시림 속에도 바람들이 살고, 빽빽한 나뭇잎 사이에도 햇빛이 돈다. 바람과 햇빛은 모든 생명의 생존과 성장을 돕는다. 산객 또한 바람과 햇빛을 온몸에 담으면서 산길을 오른다.

한라산 남벽을 오르지 못하게 통제하는 통제소.
한라산 남벽을 오르지 못하게 통제하는 통제소. 사진 / 박상대 기자
돈내코에서 한라산을 오르는 사람들(한국잡지협회 산악회원들).
돈내코에서 한라산을 오르는 사람들(한국잡지협회 산악회원들). 사진 / 박상대 기자

산을 오를 때 다리만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다. 높은 산을 올라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산을 오를 때 호흡으로 오른다는 사실을. 발바닥과 다리를 타고 오른 에너지와 코를 통해 가슴으로 스며든 공기가 섞여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생산해낸다.   

숲길을 지나자 평궤대피소가 자리하고 있다. 지나온 숲 위로 서귀포 일대 바다와 마을과 민가들이 보인다. 그리고 백록담 남벽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한라산 백록담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현무암 덩어리가 절벽을 이루고 있다.

한라산 중산간 이상 지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릿대나무군락지.
한라산 중산간 이상 지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릿대나무군락지. 사진 / 박상대 기자

남벽통제소에서 서쪽 윗세오름 분기점까지 걷다
평궤대피소에서 30여분 경사가 완만한 산길을 오르면 남벽분기점에 이른다. 이곳 분기점에서 등산객들이 백록담으로 오르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윗세오름을 향해 길을 찾는데 나무로 만든 계단이 보인다.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시선은 계속 남벽을 향한다. 먼먼 옛날 용암이 분출하다 멈췄고, 용암이 식어서 현무암이 되었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여전히 용암을 닮아서 라바돔(Lavadom. 용암언덕)이라 부른다고 한다. 몇백 미터 거리에서 봐도 웅장한 암벽이다. 

나무계단을 오르는데 바람이 제법 세게 분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몇몇 사람들은 뒤로 한두 걸음씩 밀려나기도 한다.

한라산을 오를 때는 식수와 간식,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한라산을 오를 때는 식수와 간식,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한라산에는 하루에도 수차례 날씨가 변한다. 산안개가 밀려오면 장관을 이룬다.
한라산에는 하루에도 수차례 날씨가 변한다. 산안개가 밀려오면 장관을 이룬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산길을 걷는데 왼쪽은 민둥산(방애오름)이다. 키가 작은 산죽(조릿대)이 서식하고 있는데 지난겨울 눈을 맞은 탓에 여름이 다 되었는데도 이파리가 초록색깔을 띠지 못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넓은 평원이 펼쳐지고 그 끝에 용암언덕이 버티고 서 있다. 산길 옆에는 철쭉과 산죽과 구상나무 군락지가 있다. 구상나무는 한라산과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서식하는 토종 나무다. 1920년 미국 식물학자 A. 헨리 윌슨 박사가 처음 한라산에서 발견하여 종자를 반출해 갔고, 유럽 등지로 건너가 70여 개 품종으로 개량되었고,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고 한다.

구상나무를 관찰하고 있는데 찬 기운이 밀려온다. 안개가 바람에 실려온 것이다. 한라산 남벽과 서벽을 안개가 휘감고 있다. 바람이 하얀 안개를 몰고 와서 한라산을 덮어 버린다. 어느 산객이 한라산은 하루에 열두 번 날씨가 변한다고 하더니, 실감이 난다. 거센 바람에 땀이 식어 버리고 가볍게 몸이 떨린다.   

몸이 떨린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안개가 밀려왔다 사라지는 광경을 감상하며 산객들은 탄성을 지른다. 산객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남벽 분기점에서 윗세오름대피소 가는 길목에 있는 장구목오름 서부능선과 왕석들.
남벽 분기점에서 윗세오름대피소 가는 길목에 있는 장구목오름 서부능선과 왕석들. 사진 / 박상대 기자
영실 주차장 부근 숲에는 날씬하고 건강한 토종 소나무(적송)들이 서식하고 있다.
영실 주차장 부근 숲에는 날씬하고 건강한 토종 소나무(적송)들이 서식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영실에는 병풍바위와 오백나한상 등 기묘한 바위들이 많다.
영실에는 병풍바위와 오백나한상 등 기묘한 바위들이 많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언덕을 넘고 숲을 지나자 바로 앞에 거대한 능선이 나타난다. 오름을 오르는 언덕처럼 생긴 능선인데 국립공원 직원도 “아마 장구목 능선일 것”이라고 한다. 마치 공룡의 등뼈를 닮은 듯한 바윗돌을 짊어진 능선 모습이 매우 건강한 남성미를 보여준다. 그 아래로 윗세오름대피소가 있다.

윗세오름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한 산객들은 하산을 준비한다. 어리목으로 하산할 사람들과 영실로 하산할 사람으로 나뉜다. 어리목은 경사가 완만한데 거리가 멀고, 영실은 거리가 짧은 대신 경사가 급하다.

윗세오름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근무자에게 '윗세오름이 어느 오름이고, 이 삼거리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윗세오름은 “한라산 해발 1천 미터 위쪽에 있는 세 오름(족은오름, 누운오름, 붉은오름)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그중 가장 큰 오름이 휴게소 위에 있는 붉은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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