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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세 개의 왕릉과 푸른 숲길이 어우러진 곳, 걷기 좋은 파주 삼릉
세 개의 왕릉과 푸른 숲길이 어우러진 곳, 걷기 좋은 파주 삼릉
  • 김세원 기자
  • 승인 2019.07.08 17: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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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능과 네 개의 무덤이 있는 파주 삼릉
무덤의 모양만으로도 신분 구별 가능해
10월 31일까지 개방하는 왕릉길도 걷기 좋아
파주 삼릉은 왕릉과 함께 치유의 숲도 거닐 수 있어 걷기 좋은 곳이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여행스케치=파주] 왕족의 능은 지위에 따라 명칭이 달리 붙는다. 그중에서도 왕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일컫는다. 파주의 삼릉은 공룽, 순릉, 영릉 총 3기(무덤을 세는 단위)가 함께 있는 곳으로 왕릉 뒤편으로는 최근 개방한 치유의 숲도 함께 걸을 수 있어 역사와 함께 여름 녹음을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조선왕릉은 총 42개로 북한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개는 대부분 서울 근교 100리 안에 자리해 있다. 나라를 다스려야 할 왕이 자리를 오래 비우지 못함을 배려한 것. 500년의 역사를 지닌 왕조의 무덤이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조선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주차장 앞으로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다. 2009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았음을 알 수 있는 안내판. 사진 / 김세원 기자

왕릉의 시작
파주삼릉 입구 정류장에서 1km 정도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과 함께 파주 삼릉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주 삼릉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공릉으로 가는 길목에는 푸른 공터와 함께 역사문화관이 있다. 간략한 조선시대 연표와 함께 삼릉에 대한 설명, VR 등이 있어, 왕릉을 보러 가기 전 들려 사전 지식을 습득하기 좋다. 

역사문화관을 둘러본 후 앞쪽에 있는 짧은 다리를 건너면 왕릉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재실이 나타난다. 이곳은 능을 관리하는 능참봉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제사 음식 장만 등 제사에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파주 삼릉에 남아있는 재실은 영릉의 재실로 현재는 재실과 일부 행랑만이 남겨져있다. 윤경수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일제강점기에 재실이 많이 소멸되어서 이제는 23개 정도만이 남아있다”며 “대부분의 왕릉은 재실을 시작으로 하는 비슷한 양식을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삼릉 초입에 자리한 역사문화관. 사진 / 김세원 기자
제사에 필요한 준비를 하던 장소인 재실. 지금은 23개소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재실을 지나 홍살문으로 가는 길은 여름 볕을 잔뜩 받고 자란 나무의 녹음이 짙다. 나무 그늘이 져 이동하는 동안에도 덥지 않고 시원하다. 우거진 나무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홍살문과 함께 멀리 정자각과 비각이 눈에 들어온다. 홍살문은 능이나 대궐 등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으로 윤경수 해설사는 “홍살문 안으로는 죽은 자의 왕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정자각 지붕 위를 살펴보면 ‘죽은 자의 왕궁’이라는 말을 더 이해하기 쉽다.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놓는 장식 기화인 잡상, 우리말로 어처구니는 궁전에만 있는 것인데 왕릉의 정자각에 다가서서 살펴보면 용을 시작으로 다양한 동물 잡상을 관찰할 수 있다. 

죽은자의 왕궁 안으로 들어서는 입구인 홍살문. 사진 / 김세원 기자
왕릉 정자각의 어처구니를 보면 이곳이 왕궁임을 실감할 수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영혼을 모시는 공간인 만큼 왕이 이용하는 계단보다 향로계가 훨씬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홍살문 오른쪽에 자리한 사각형의 돌판 배위는 능행을 온 왕이 선대왕을 위해 절을 하는 곳이다. 4번의 절을 마친 왕은 돌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정자각까지 걷는다. 위로 솟은 길은 향로로 그 오른편으로 내려와 있는 어로가 왕이 걷는 길이다. 왕이 된 듯 어로를 따라 선대왕을 기리며 걸어본다. 왕릉을 구성하는 요소는 하나하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정자각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마찬가지. 정자각의 계단은 두 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신(영혼)이 오르는 길인 향로계와 왕이 이용하는 일반적인 계단이다. 왕의 능인만큼 영혼이 된 선대왕이 오를 향로계가 훨씬 아름답다. 

정자각을 기점으로 양 옆에 위치한 수라간과 수복방. 뒤로는 공릉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정자각을 기준으로 양옆의 집은 각각 수라간과 수복방이다. 제사를 지낼 때 필요한 음식 준비와 일을 하는 수복 나인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지금은 복원되어 정자각보다는 새것의 느낌을 준다.

Info 파주 삼릉
주소 경기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30분
관람료 대인 1000원, 소인 500원

매표소 주변에는 삼릉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도와 함께 유모차를 대여할 수 있는 곳도 있어 아이와 함께 나들이 나오기도 좋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기 전 입구에 구비된 날벌레 퇴치용 부채는 꼭 하나씩 챙기는 것이 좋다. 병충해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날이 더워지면서 날벌레들이 가는 길을 방해하곤 한다. 

정석적인 왕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순릉. 사진 / 김세원 기자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무덤의 주인
파주 삼릉 중 처음 만날 수 있는 공릉과 공릉을 지나면 보이는 순릉 두 능의 주인,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는 자매로 각각 한명회의 셋째와 넷째 딸이다. 어릴 때는 자매였으나 후에 숙모와 조카며느리가 된 사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영릉은 ‘왕릉은 세 개지만 무덤은 네 개다’라는 삼릉을 수식하는 말의 이유를 알 수 있는 곳. 두 번의 추존을 통해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가 된 두 사람의 봉분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극을 보면 옷의 색이나 복장만으로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듯이 왕릉도 그 모양새에 따라 무덤 주인의 신분을 알 수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 울타리 너머 무덤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멀리서도 차이가 눈에 띌 정도이다. 

삼릉 중 특히 순릉은 가장 정석적인 왕릉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순릉의 주인인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가 왕비의 신분으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 세자빈이었던 장순왕후 공릉과 후에 추존된 진종과 효순소황후의 능 영릉과는 모습이 다르다.

문석인과 무석인이 지키고 선 순릉. 사진 / 김세원 기자
'능은 세 개이지만 무덤은 네 개'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인 영릉. 사진 / 김세원 기자
석상, 석호, 석양은 무덤 주위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문석인만 있는 공릉에 비해 순릉은 무석인과 문석인이 능을 지키고 서 있다. 가장 눈에 띠는 차이점은 하계, 중계, 상계라 불리는 돌로 만들어진 층계가 무덤 앞으로 자리해 있는 것과 봉분의 유실을 막기 위해 세워진 병풍석이 있다는 것. 공릉과 영릉에 비해 더 보호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왕릉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던 해설사의 말처럼 이런 차이들을 제외하고 세 능은 비슷한 모양새를 가졌다. 죽은 자의 혼이 나와 놀 수 있게 무덤 앞에 두는 혼유석과 개수는 다르지만 능을 지키는 수호신인 동물 모양의 석상 석호와 석양이 있는 점 등이 그렇다. 

혼유석의 위치에 서 홍살문 쪽을 바라보자 기분이 묘해진다.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는 능에서는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후손들을 살펴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신도비를 세워둔 비각을 지나 홍살문을 나오자 다시 산 사람들의 세계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정자각이 왕릉을 가리고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왕이 걷던 숲을 따라 걷다
공릉 뒤로 난 길 중 순릉 반대 방향을 선택해 조금만 올라가면 왕이 걷던 숲길이 펼쳐진다. 올해 확대 개방된 1.9km 길이의 이 길은 10월 31일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숲길 초입에는 두툼한 매트가 깔려있어 푹신함을 느끼며 편하게 걷기 좋다. 

공릉 뒤로 난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치유의 숲 입구가 드러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소나무 길은 진한 솔 향이 나 첫 느낌부터 산뜻하다. 경사 없이 평탄한 길은 5분 정도 계속 된다.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길이 구불구불 꺾일 때쯤 비탈길이 시작된다. 1.9km 정도의 짧은 거리라고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경사길이 지속된다. 10분에서 15분 정도는 올라야 완만한 길을 만날 수 있다. 숨이 차오를 쯤 경사길의 꼭대기이다. 

흙길의 왼편으로는 소나무와 팥매나무가 왕이 걷던 길을 초록으로 장식하고, 오른편으로는 자연 보호를 위한 철조망이 지켜 서 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한 길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진다. 나무로 우거져 있어 큰 소리로 말을 하면 산 정상에서 외치는 “야호”처럼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10~15분 정도 경사길을 오르면 그 후부터는 걷기 좋은 평지길이 이어진다. 사진 / 김세원 기자
나오는 길에는 전통놀이를 비롯해 왕릉의 정자각에 쓰인 기와의 종류를 알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경사로 이후 나무 벤치가 있는 공터를 지나면 이후부터는 내리막과 평탄한 길의 연속이다. 끝까지 푸른빛을 잃지 않는 길은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로 40분에서 1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어, 왕릉을 찾은 김에 함께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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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남 2021-04-07 11:19:35
맷돌의 손잡이는 어처구니가 아니라 '맷손'입니다. 이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표준국어대사전 등에 등재되어 있는 말입니다. 궁궐의 잡상은 어처구니가 아니라 그냥 '잡상'이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십신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어처구니가 맷손이니 궁궐 잡상이니 하는 인터넷의 기사에 대해서는 국립국어원과 문화재청 모두 부인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는 맷돌이나 궁궐의 잡상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이에대한 어떤 문헌적 근거도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