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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5일장 스케치] 산나물과 감자떡, 약초가 많이 있는 정선읍장!
[5일장 스케치] 산나물과 감자떡, 약초가 많이 있는 정선읍장!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7.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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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정선장 입구에서 둥굴레, 갈근, 장놔, 가시오가피 등 약초를 판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정선장 입구에서 둥굴레, 갈근, 장놔, 가시오가피 등 약초를 판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파는데 골동품 수준의 옛날 생활용품도 눈에 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파는데 골동품 수준의 옛날 생활용품도 눈에 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정선 5일장 관광열차를 타지 못한 여행객을 위해 정선과 증산역을 오가는 열차. 하루 네 차례 오간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정선 5일장 관광열차를 타지 못한 여행객을 위해 정선과 증산역을 오가는 열차. 하루 네 차례 오간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여행스케치=정선]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시들해진 5일장.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 숨쉬는 5일장도 있습니다. 강원도 정선 5일장을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 청량리 역사에 ‘정선 5일장 관광열차’를 홍보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습니다. 5일장이라? 시장이라는 말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도 이상야릇한 향수를 느끼게 했습니다.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정선 5일장 관광열차’가 아니면 정선까지 한번에 가는 열차 편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은 강원도 두메 산골 정선을 더욱 신비롭게 포장해 주더군요. 게다가 2일과 7일, 이렇게 닷새에 한번씩만 그 모습을 드러내니, 더 애를 태우게 했습니다.

친구랑 장날에 맞춰 겨우 시간을 냈는데, 내 게으름의 소치로 열차표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8시 10분에 출발한다고 해서 시간에 맞춰 나갔는데 하루 전날 매진되었다네요. 아무래도 여행의 맛을 더해 주는 건 열차가 달릴 때 느낄 수 있는 규칙적인 떨림이 아닐까 싶은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정선가는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날이 밝고 시원스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아쉬운 마음도 잊혀졌습니다. 정선으로 난 굽이굽이 험준한 고갯길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차창 밖으로 강원도 산세를 구경하느라고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옛날 정선 사람들의 고립감과 무력감이 떠올랐습니다. 오죽하면 정선아리랑의 노랫말이 ‘날 넘겨주소’라는 수동태일까? 그래서 정선아리랑은 다른 아리랑보다 애처롭고 구슬픈 모양입니다.

버스는 네 시간 남짓 달린 후 정선에 도착했습니다. 나의 할머니 같은 시골 할머니들을 보고 허름한 시골 버스 터미널에 내려, 밝은 햇살 아래 놓여진 그때가 진짜 여행의 시작이 아니었던가 싶네요. 길 설은 나그네는 택시에 올라 5일장에 데려다달라고 주문했는데, 내릴 땐 기본 요금만 내면 되는 거리였습니다.

환청이었을까요? 우연이었는지, 장터 입구에 서자마자 버스에서부터 줄곧 흥얼거리던 정선아리랑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눈앞에는 피부는 검게 그을렸지만 밝은 얼굴로 말을 건네는 사람들과 좋은 물을 먹고 자랐음을 알아볼 수 있는 크고 잘빠진 야채 과일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맑고 깨끗한 땅에 도착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지요.

규모는 작지만 국산 토종 화초를 파는 사람도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규모는 작지만 국산 토종 화초를 파는 사람도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산나물, 야채 등 무공해 식품을 싸게 살 수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산나물, 야채 등 무공해 식품을 싸게 살 수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즉석에서 짚세기를 삼아 주고, 작은 멍석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짚신 한 켤레 5천원.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즉석에서 짚세기를 삼아 주고, 작은 멍석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짚신 한 켤레 5천원.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연두색 고사리, 파릇파릇한 취나물, 할머니가 껍질을 벗기고 있는 산더덕, 이름이 낯선 여러 약초도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둥근 기둥 모양으로 보기 좋게 쌓아 놓은 마늘은, 이맘때면 햇마늘이 나왔다고 분주해 하시던 엄마를 떠올리게 했고….

서울 촌뜨기에게는 그곳 풍경 자체가 이색적이지만 둘러볼수록 노다지였습니다. 책에서나 보았던 쇠스랑·쟁기 보습·호미 따위 농기구들, 이미 골동품이 된 숯불 다리미와 인두, 다듬이 돌, 신발가게의 검정고무신, 짚으로 엮은 소쿠리 등등.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앉아서 솥뚜껑 위에 지져대는 수수부꾸미와 배추전, 한 찜통 가득 쪄내는 감자떡, 한 사발에 2천원이라며 일단 맛을 보라고 이쑤시개에 찍어 주는 도토리묵과 동네 할머니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영월 감자떡은 맛뵈기로 얻어먹었지만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장돌뱅이들의 토산품에서 물씬 풍기는 시골 정취와 훈훈한 인심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방망이 깎는 할아버지가 특히 인상 깊었는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본 방망이 깎는 노인이 생각났습니다. 박달나무로 직접 만들었다는 새총과 소 코뚜레, 다듬이 방망이. 이런 것들을 쓰다듬고 만져보며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 속에 있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더군요. 도포에 갓을 쓰고, 곰방대를 들고 아리랑을 불러 섬기는 노인과, 친구의 가락을 벗삼아 짚세기를 삼는 노인 곁에 서 있는데,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렸습니다. 센베이 과자도 장터 한 구석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어렸을 때 집에 오신 할머니가 작은 보자기 속에서 꺼내 주던 땅콩 캬라멜과 눈깔사탕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또 나보다 나이든 토속품들―멍에·쇠손·맷돌 자루·코뚜레 등등….

스물 남짓한 길고도 짧은 생애에서 잊고 지낸 것들을 찾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마음은 가득 찼지만, 여기저기서 냄새를 풍기며 전을 부친 탓인지 허기가 느껴졌습니다. 정선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별미를 찾았지요.

후루룩 빨아들일 때, 쫄깃한 면발이 반드시 콧등을 때린다는 콧등치기 국수와 이름 그대로 그 모습을 가진 올챙이 국수를 사먹었습니다. 2, 3천 원이면 배가 부르게 먹을 수 있더군요. 입에 착 달라붙는 애교스런 맛은 아니었지만, 아낌없이 또 한 국자를 더 주겠다는 아주머니의 마음만은 비길 데 없는 맛이었어요.

구수한 기름냄새가 발을 잡는 감자떡 부침.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구수한 기름냄새가 발을 잡는 감자떡 부침.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정선역 모습.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정선역 모습. 2003년 7월. 사진 / 박중율

한나절 동안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보고도 아쉬움이 남았지만, 정선의 자랑 꼬마열차를 타기위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정선역까지 쉬엄쉬엄 걸어서 20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산책을 했습니다. 아우라지 하류의 물줄기를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아름다운 강원도의 풍광을 좀더 눈에 담았습니다.

이제 정선을 떠날 차례. 달랑 객차 한 량에, 전기 공급을 하는 발전차와 기관차가 한 대씩 붙어 있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은 꼬마 열차를 타고 증산으로 가서 청량리행 열차를 타면 짧은 여행은 끝납니다. 실타래처럼 엮여 있다는 세상과 우리의 삶, 먼 곳에서 각자의 길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정선에는 아직도 시골을 떠나온 도시인에게 향수를 느끼게 하는 토속적이고, 시골다운 곳이 많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강줄기 주변으로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소박한 마을 풍경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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