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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왕릉 기행- 동구릉] 조선 태조가 잠들어 있는 구리시 인창동, 건원릉
[왕릉 기행- 동구릉] 조선 태조가 잠들어 있는 구리시 인창동, 건원릉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7.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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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태조가 잠들어 있는 왕릉, 건원릉.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태조가 잠들어 있는 왕릉, 건원릉.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태조 왕릉 능상 앞에서 볼 수 있는 전망. 멀리 구리시내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태조 왕릉 능상 앞에서 볼 수 있는 전망. 멀리 구리시내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여행스케치=경기] 역사 기행을 하기 전에는 사전 정보를 얻어 가는 것이 좋다. ‘아는 것만큼 보이는 여행’이 곧 역사 기행이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 5백년을 이어온 왕들의 왕릉기행, 그 첫 번째로 동구릉을 찾았다.

동구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선의 왕릉 군이다. 모두 아홉 분의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이곳은 언제 찾아도 편안하고 아늑한 곳! 도시지만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맑은 공기와 햇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 그 숲에 따사로운 햇살이 여기저기 박히고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실려오는 새 지저귀는 소리는 상쾌하다.

능에서 능으로 이어진 숲길의 곡선이 아름답다. 동구릉의 역사, 조선의 역사를 말하려는 듯 받침목에 몸을 기대고 비스듬히 서 있는 고령의 소나무를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얼마나 오랜 세월, 풍파와 세파를 견뎌 왔는가? 주군에 대한 경배인가, 그리움의 표출인가? 살아 생전 천하를 호령하며 살다간 왕들의 능을, 그 많던 시중들을 대신하여 장구한 세월 동안 꿋꿋이 지켜온 나무들의 인고의 역사가 엿보인다.  

마침 주말인데 남양주시의 진건중학교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와서 이곳저곳을 관찰하고 있다. 메모장을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을 적고, 사진을 찍고. 제법 진지하다.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가? 왕릉은 역사의 장이며, 인생의 장이다.

비각에 들어가 비문을 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물으니 제대로 해독이 안 된다고 한다. 조금 더 올라가니 유치원생들이 엄마와 멋진 배경을 중심으로 수채화를 그리고, 어떤 꼬마는 깨어진 기왓장을 보고 만지며 신기해한다. 옆에 있는 꼬마 친구는 맛있게 점심을 먹고….

제관들이 산릉제를 지내는 정자각. 홍살문과 능상 사이에 있다.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제관들이 산릉제를 지내는 정자각. 홍살문과 능상 사이에 있다.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홍살문 앞에서 정자각까지 신도(좌)와 인도가 구분된 길.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홍살문 앞에서 정자각까지 신도(좌)와 인도가 구분된 길.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왕릉에는 능 입구마다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정자각까지 길다랗게 돌길이 놓여 있다. 고만고만한 돌을 묻어서 길을 다녔는데 얼핏 봐도 두 길이다. 돌길은 왼쪽 길은 오른쪽 길보다 약간 높게 되어 있다. 왼쪽 길은 신이 다니는 신도이고 오른쪽은 인간이 다니는 인도이다.

동구릉의 대표적인 능은 건원릉이다
건원릉은 조선조의 태조 이성계 (1335-1408, 재위7년)의 능이다. 동구릉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홍살문 바로 앞 금천교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능상 앞에서 보면 구리시가 훤히 보인다.

막힌 것 없이 잘 터져 있어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생각이 된다. 무학대사가 어렵게 찾은 명당이 바로 이곳이라는데, 후손이 500년을 집권했으니 명당일 수 있겠고, 거의 모든 왕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인 뒤에 왕자에 올랐으니 진정한 명당이 아닐 수도 있겠다.

게다가 이성계는 역성 혁명으로 새로운 왕조를 세운 인물이었지만 말년에는 자식들의 피를 보는 불우한 일생을 살지 않았던가. 왕릉은 명당이 아니라고 한다. 명당은 산소를 잘 써서 후손 가운데 훌륭한 인물이 나오는 경우를 일러 명당이라 하는데 왕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더 나온다면 아마 왕을 죽이고 왕이 되는 역적이 나온다는 말이 아닐까?

동구릉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동구릉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동구릉에 있는 관리사무소 앞 정원에 불두화가 피었다.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동구릉에 있는 관리사무소 앞 정원에 불두화가 피었다.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태조 왕릉 앞에 있는 12지신상. 12개 동물의 석상이 있음.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태조 왕릉 앞에 있는 12지신상. 12개 동물의 석상이 있음. 2003년 7월. 사진 / 임화순

그래서 왕릉은 명당을 찾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 이 말대로라면 동구릉은 명당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원릉에는 다른 왕릉과 다르게 봉분 위에 보라색 꽃을 피우는 억새풀을 심었다고 한다. 이는 태조가 고향인 함흥을 그리워하는 심정에서 유언으로 함흥에서 자라는 억새풀과 함흥의 흙으로 능을 만들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억새풀은 자주 벌초를 하면 죽기 때문에 건원릉은 1년에 한번만 벌초를 한다. 조선의 태조와 함께 영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왕이나 왕비는 여덟이다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가 누워 있는 휘릉. 왕후는 자손 없이 생을 마감한 왕비다.

그런데 휘릉 앞에서 많은 꼬마들이 뛰놀고 있다. 막대로 칼싸움을 하는 꼬마들에게 이곳이 누구 능인지 물었지만 알 리가 없다. 꼬마들의 즐거운 표정을 보며 장렬왕후는 무슨 생각을 할까. 원릉은 조선조 최장수(83세) 임금이자 최장 재위(52년) 국왕인 영조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쌍릉이다. 주변의 자연 경관과 능원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고, 아담하면서도 장엄한 면모를 보여준다.

목릉은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세 능. 동구릉의 가장 안쪽에 있다. 혜릉은 경종 즉위 후 추존된 정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 특이한 점은 능의 방향이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면서 자리잡고 있다. 경릉은 헌종과 정비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능. 조선조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삼연릉 형식을 하고 있다.

수릉은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인 추존왕 익종과 비 신정왕후 조씨의 능. 현릉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 숭릉은 현종과 정비 명성왕후 김씨의 능. 수목보호를 위해 출입을 제한한다.  

동구릉 가는 길
청량리 -> 면목동 -> 망우리고개 -> 교문 사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2km 전방
태릉 -> 화랑로 -> 구리 고속화도로 -> 구리 IC에서 동구릉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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