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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코리아 스케치] 숨을 쉬는 그릇,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까? 홍성 옹기와 전통 토기
[코리아 스케치] 숨을 쉬는 그릇,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까? 홍성 옹기와 전통 토기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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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홍성 길산토기 전경.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홍성 길산토기 전경.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화단의 조형물로 쓰이고 있는 토기. 각기 다른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화단의 조형물로 쓰이고 있는 토기. 각기 다른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홍성] 서울에 살고 있는 두 일본 여성이 한국 스케치에 나섰다. 한국의 전통 옹기와 토기를 어떻게 만들며, 왜 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오래도록 사랑 받고 있는지 충청도 홍성 갈산토기를 찾아 직접 체험했다.

이른 아침부터 기분이 설렌다. 한국에 온 지 3년째, 제대로 여행도 못해 봤는데 한국 전통 옹기 만드는 곳을 여행하고, 직접 만들어볼 기회를 얻다니…. 그냥 여행을 해도 마음이 설레는데 귀중한 체험을 한단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가는데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차가 좀 막혔다. 그러나 한국의 푸른 들판과 신록이 우거진 산들을 보니까 가슴이 확 트였다. 한국에서 가장 길다는 서해대교를 건널 때는 모두 ‘와!’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다리 위에서 보니까 바닷물과 갯벌이 아름답게 보였다.

기자는 서산농장을 지나면서 ‘이곳에서 기른 소들을 정주영 할아버지가 북한에 보냈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현장이다. ‘갈산토기’체험학습장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1시였다. 우리는 일단 점심을 먹고 시작하기로 했다. 주인이 한 식당을 소개해 줬는데, 금방 승합차가 데리러왔다.

마당 가득한 생활 옹기. 방문객은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마당 가득한 생활 옹기. 방문객은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옹기는 이제 장독뿐만 아니라 화분으로 사람들 곁에 쓰이고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옹기는 이제 장독뿐만 아니라 화분으로 사람들 곁에 쓰이고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점토 반죽으로 빚은 옹기 그릇 갈산토기 앞마당에는 온통 옹기들이다. 어른이 들어갈 수 있는 큰 항아리부터 아주 작은 물 컵이나 양념 그릇까지 2층 3층으로 쌓아 놓았다. 탈 모양 옹기도 있고, 수련을 기르는 옹기 화분도 있다. 방춘웅 사장과 딸인 방유정 실장이 우리를 안내했다. 대학생인 아들도 도예를 전공하는 기술자인데 총각이라고 한다. 잘 생긴 총각! 그래서 이 가족은 5대째 전통 토기를 만들고 있다.

가장 먼저 이 마을에 정착한 선조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들었다가 생계 수단으로 도공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늘 궁금했던 것이 김장독이다. 시골이나 도시의 일반주택, 심지어 아파트에도 집집마다 옹기 그릇이 있다.

왜 된장이나 간장을 옹기에다 담아둘까? 왜 김장을 하면 거대한 옹기에다 오랫동안 저장할까? 숨을 쉬는 그릇이라고 하던데, 도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까? 방유정 실장은 우리의 이런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 주었다.

항아리(옹기)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모래가 많이 섞인 거친 그릇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것이 항아리의 기원이다. 옹기는 점토를 구워서 만든다. 점토는 한 지역의 흙만 사용하면 점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지역마다 다른 토질의 흙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흙은 충청도(성환, 온양, 예산 등)와 전라도(이리, 남원 등)에서 공급받고 있다.

숨쉬는 옹기를 제조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과정은 일정 때문에 많이 생략되고 간단했다. 반죽된 점토를 가지고 물레 위에다 그릇의 바닥을 만들었다. 바닥을 편편하게 하기 위해 방망이나 병으로 죽죽 미는데 우리는 병으로 밀었다. 우리는 각기 만들고 싶은 그릇 크기로 반죽으로 원을 그렸다.

옹기를 만들기 위해 점토 반죽을 편편하게 해서 바닥을 만든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옹기를 만들기 위해 점토 반죽을 편편하게 해서 바닥을 만든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유약을 발라 구워낸 토기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유약을 발라 구워낸 토기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유약을 바른 토기들은 마지막 단계로 1200~1300ºC의 가마에서 구워낸다. 옹기는 자기와 달리 두 번 굽지 않고 초벌구이로 마무리한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유약을 바른 토기들은 마지막 단계로 1200~1300ºC의 가마에서 구워낸다. 옹기는 자기와 달리 두 번 굽지 않고 초벌구이로 마무리한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그 위에 다시 굵은 반죽을 올리고, 발로 물레를 돌렸다. 손으로는 물 젖은 가죽을 쥐고 반죽을 조심해서 쥐었다. 자꾸 비뚤비뚤해졌다. 보기보다 어려웠다. 물레를 돌리는 다리도 아팠다. 손과 발이 박자를 맞춰야 하는데 힘들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전기 물레를 사용하여 그릇을 만들었다. 좀 더 쉬웠다. 일이 손에 익어서 그런가. 우리는 다시 물레가 없이 손으로 빚는 체험학습장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한국 어른들과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그릇들이 많이 있었다. 외국인들도 가끔 온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한 반죽을 주무르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이들처럼 이런 저런 모양을 만들어 보았다. 그러다가 컵을 만들고, 접시를 만들고, 큰 그릇을 만들었다.  우리가 만든 그릇은 방유정 실장이 유약을 바르고 구워서 보내주신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실내 인테리어 소품으로 만들어 놓은 토기. 옹기는 여전히 사람들 곁에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실내 인테리어 소품으로 만들어 놓은 토기. 옹기는 여전히 사람들 곁에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방문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작업 체험실 앞.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방문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작업 체험실 앞. 2003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옹기 만드는 과정
1단계, 옹기토(점토)를 만든다. 몽근 가루에 물을 섞고, 반죽한 뒤 흙의 입자 사이에 있는 공기를 뺀다. 이를 적당한 굵기의 떡가래 모양으로 만든다.
2단계, 원하는 크기대로 물레 위에 바닥틀을 만든다. 편편한 바닥 위에 점토를 쌓아 올린 후, 물레를 돌리면서 물가죽으로 원하는 그릇의 크기와 모양을 매끄럽게 만든다.
3단계, 유약을 바른다. 물레에서 만들어진 그릇을 그늘에서 반 건조시킨 뒤 유약을 치고, 다시 건조시킨다.
4단계, 가마에 넣고 불을 땐다. 1,300°C 고온에서 3박 4일간 그릇을 굽는다.

홍성 갈산토기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 쮝 해미/서산 방면 29번 국도 5km 쮝 갈산면 동성리 옹기마을 이정표 쮝 광성초등학교 끼고 직진 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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