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전북] 전북 순창과 임실군을 경계 짓는 산. 섬진강, 오원천, 구림천이 휘돌아 가는 해발 830m 회문산. 누군가 풍수지리상 5대 명당이란다. 계곡은 깊고 서늘하여 그 물은 이가 시리도록 차고 한여름에도 모기가 없단다.
순창 구림면 안심마을 뒤편으로 언덕길이 급해지는 초입에 갈림길이 있다. 왼쪽으로 꺾어지면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 무학대사가 만일기도를 했다는 만일사로 가는 길이다. 똑바로 2-3분 올라가면 회문산 자연휴양림 매표소와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곧이어 휴양림 입석 간판이 보이고 좁은 계곡을 건너는 다리, 그리고 돌로 쌓은 성벽이 나온다. 한말 최익현 임병찬 등의 의병활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노령문이다. 그 아래 왼쪽 골짜기에서 나는 석간수는 그 맛이 뛰어나다. 잠시 쉬는데 누군가 물을 길으러 찾아 온다.
노령문을 지나면 산림박물관이 나온다. 좀 걷고 싶다면 노령문 위에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30m 출렁다리를 건너 구룡폭포를 구경하고, 다섯 선인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의 오선대로 올라간다.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회문산 산세를 논했다는 무학바위도 있다. 참나무류가 주종인 숲은 울울창창하여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다. 새로 지은 하얀 숲 속의 집은 아예 머물러 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물놀이장, 체력단련장, 배구장, 야외공연장, 오토캠프장, 산림박물관. 시설도 나무랄 데가 없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회문산은 천혜의 요새. 소설 ‘남부군’의 배경인 이곳엔 빨치산 사령부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빨치산 간부들의 훈련장은 체력단련장이 됐지만 사령부 비트(땅굴)는 복원해서 입구에 섬뜩한 감시병(?)까지 세웠다. 산봉우리에는 그 옛날 산적들의 소굴이었던 굴도 있다고. 휴양림의 도로는 능선 바로 아래까지 이어진다.
그 곳에 차를 세우고 정상까지 가는 능선산행이 1시간. 정상에 서면 동서남북으로 지리산과 내장산, 무등산과 모악산이 내다보인다. 산적, 의병, 빨치산… 산은 말이 없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의 역사를 자꾸 덧씌우려 든다. 회문산 우뚝 선 봉우리는 그 부질없음을 잔잔히 설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