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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사찰] 연꽃 계곡에 피어오른, 보탑사
[이달의 사찰] 연꽃 계곡에 피어오른, 보탑사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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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보탑사 내부 3층 목탑.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보탑사 내부 3층 목탑.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충북] 진천 연곡리. 만뢰산 풍산 옹각산 줄기들이 겹겹이 꽃잎을 이루고 그 한가운데 움푹 들어간 비립동. 그 공간이 허전했는지 탑이 솟아올랐다. 꽃술이다. 통일대탑 보탑사.

일주문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번뇌를 씻고 청정도량으로 건너가야 할 관문이 없다. 저 멀리 거대한 3층 목탑만 우뚝 할 뿐. 입구에는 누각 두 채를 짓고 있는데 올 가을이면 완성될 범종루다. 이 때문에 옆으로 돌아 올라가니 왼쪽으로 고려시대 세워졌다는 보물 404호 백비가 있다. 비문이 없어 백비다.

정결한 보탑사 요사채. 뒤로 만뢰산 줄기가 부드럽게 흐른다.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정결한 보탑사 요사채. 뒤로 만뢰산 줄기가 부드럽게 흐른다.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오른편으로는 정갈한 요사채가 보인다. 더 이상 손댈 곳이 없는 깔끔한 정원이 비구니의 거처임을 짐작케 한다. 좀더 걸어가 석간수가 있는 쪽에서 바라보니 만뢰산 줄기가 부드럽게 보듬은 형국이다. 목탑은 이제 고개를 꺾어야 그 끝이 보인다. 목조로 된 부분만 백팔번뇌에 이르는 108척, 32.7m이다.

3층위에 있는 원형의 금속 탑으로 된 상륜부를 보려면 뒤로 몇 걸음 물러나야한다. 목탑의 거대함에 가려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리만 4톤이 들어간 10m가 넘는 대형구조물이다. 목탑과 합하면 42m가 넘는다. 상륜부의 원형 탑은 빙 둘러 금칠을 한 연꽃잎을 새겼는데 거무튀튀한 구리를 바탕으로 그 빛을 더한다.

그 안에는 순금 80냥으로 만든 연꽃 형상의 함이 있고 그 함에는 열여섯 가지의 보석으로 만든 염주와 사적기, 법화경, 능엄시주경이 봉안되어 있단다. 이 함은 앞으로 4백여 년 후인 서기 2456년, 즉 불기 3000년에야 개봉된다. 정확히 4백53년 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하나의 인연이 맺어지기까지 억겁의 세월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리 보면 긴 시간도 아니다.

탑속에 절이 있다
경주 남산 마애탑을 본떠 지었다는 목탑은 우리나라산 적송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대목들의 자존심이 그대로 배어있다. ‘황룡사 9층 목탑에 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를 세운 선조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목탑을 만든다’. 그 많은 나무를 선조들의 솜씨 그대로 못을 박지 않고 깎고 다듬어 걸치고 이어 쌓았다.  

93년 시작하여 3년여 불사가 이뤄지던 날 이 탑에는 1천5백여 신도가 들었다. 층층이 사람이 올라가는 목탑이 드물거니와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목탑이라니 불자라면 한번쯤 와보고 싶었을 것. 그 많은 인원이 북적대도 끄덕 없었으니 뜻을 이룬 셈이다. 이렇듯 탑 자체가 이미 견줄 곳이 없는 보물이다.

3층 각 4면에 걸린 편액은 그 안이 또 하나의 세계임을 나타낸다.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층층마다 사방으로 걸린 편액이 모두 12개. 1층은 남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웅보전, 극락보전, 적광보전, 약사불전. 2층은 법보전, 수다라전, 보장전, 구장전. 3층은 미륵보전, 대자보전, 도솔타전, 용화보전. 각각이 그 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음을 알린다.

가까이 가니 극락보전이 활짝 열려있다. 둥근 심주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부처다.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비로자나불, 약사여래 그리고 각각 좌우 협시불까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심주는 999개의 백자원탑으로 둘렀다. 가히 부처의 세상이다. 아하, 이래서 탑 속에 절이 있다고 했구나!

불가의 삼보는 불, 법, 승이라고 했다. 2층은 그 가운데 법이 봉안된 곳이다. 가운데 윤장대에는 팔만대장경 번역본이 사방으로는 법화경이 안치되어있다. 3층은 혼탁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헌신할 미륵불의 세상. 미륵불 위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설치됐다는 금동보개가 찬란히 빛난다. 3층 정면 누각의 문을 여니 천하를 굽어볼 수 있다.

누각을 나와 좁은 마루를 따라 3층을 한바퀴 도는데 사방으로 봉우리가 연이어져 있다. 이 곳을 왜 연곡, 연꽃계곡이라 하는지 알 수 있다. 2층과 3층 사이에는 작은 전시실이 있다. 인도와 중국, 일본 등의 목탑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고구려 장군총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는 지장전.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고구려 장군총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는 지장전.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석가모니의 영축산 설법 광경으르 재현한 영산전.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석가모니의 영축산 설법 광경으르 재현한 영산전.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2층과 3층 사이 전시실. 목탑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2층과 3층 사이 전시실. 목탑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탑을 나서 서편 극락보전 앞에 서니 바로 영산전 앞이다. 석가모니부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광경을 재현한 곳. 사방을 두른 5백 나한상이 제각각의 표정으로 진법을 듣고 있다. 북쪽 적광보전 앞으로 지장전이 마주본다. 좌우로 석벽이 쌓여 있어 굴을 파고들어 간 듯하다. 마치 석굴과 같이 약간 어두운 분위기. 지옥중생의 구세주 지장보살의 세계임을 알려준다.

동쪽 약사여래불전 앞으로는 와불을 모신 적조전이 있다. 적조전 왼편 정원에는 돌부처가 홀로 앉아 세상을 듣고 있다. 바로 뒤 주련이 ‘石人夜聽木鷄聲(석인야청목계성)’.    

보탑사 석간수. 공양을 드리는데 사용한다.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보탑사 석간수. 공양을 드리는데 사용한다. 2003년 8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천년을 간다?
보탑 불사에 참여한 한 대목은 “1천년을 갈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인간 세상에 천년영화가 있을까. 천년 신라도 8년이 모자란 992년이었다. 아무려면 어떠랴. 이 땅에 무수한 전각과 탑이 솟아올랐다가 사라졌고 지금은 그 흔적조차 없다지만 그 이름은 남아 전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보탑사를 다녀와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 연일 이어지는 단체 관람객들 때문일까? 사찰을 생각하면 연상되는 구도의 이미지보다는 관광지처럼 여겨진다고도 한다. 청정한 또 어떤 이는 그 많은 불전을 일일이 찾아가며 일배, 또 일배를 드린다.

누가 뭐라 하든 세월은 간다. 그 세월 속에 통일대탑 보탑사에도 하나하나 전설이 새겨질 것이다. 이미 하나의 전설이 회자된다. 약사여래불 앞에 공양된 수박은 동지가 돼도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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