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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왕릉기행] 슬픈 이력의 주인공들이 잠들어 있는 곳, 서오릉
[왕릉기행] 슬픈 이력의 주인공들이 잠들어 있는 곳, 서오릉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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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서오릉 풍경. 2003년 8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서오릉 풍경. 2003년 8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여행스케치=고양] 서오릉은 고양시 용두동에 있는데, 5개의 왕릉과 2개의 원, 1개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1457년, 왕위에 오른 3년째, 세조는 맏아들 의경세자가 20세로 요절하자, 길지로 추천된 이곳에 경릉을 조성하면서 터를 잡기 시작했다.

서오릉은 경릉에 이어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창릉,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의 익릉,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의 명릉,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의 홍릉 등이 차례로 조성되면서 ‘서오릉’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또한 서오릉에는 왕릉뿐만 아니라 원(園)과 묘(墓)도 있는데,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의 대빈묘도 경내에 조성되었다. 서오릉 안으로 들어오니 향긋한 꽃 냄새와 풀의 향기가 우리를 반긴다. 한 초등학생이 제법 의젓하게 메모장에 사슴벌레와 버섯에 대한 관찰일기를 쓰고 있다. 서오릉이 역사 학습뿐만 아니라 자연생태 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왕릉에는 세월의 더께만큼 울창한 숲과 고목, 음지 식물들이 많다. 2003년 8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왕릉에는 세월의 더께만큼 울창한 숲과 고목, 음지 식물들이 많다. 2003년 8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왕릉에는 세월의 더께만큼 울창한 숲과 고목, 음지 식물들이 많다. 2003년 8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서오릉은 가족단위로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다. 2003년 8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길가에 도열해 있는 소나무, 참나무들과 낯익은 황톳길이 고우를 만난 듯 친근하다. 참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노부부와 무등 태운 딸 아이와 담소를 나누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 이들의 길 안내를 나온 다람쥐, 까치들이 고인들을 잠시 잊고, 상쾌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경릉은 후에 덕종으로 추존된 의경세자와 그의 비인 소혜왕후의 능이다. 왕이 우측, 왕비가 좌측에 모셔지는 것이 상례인데, 왼편에 왕, 오른편에 비인 동원 이강식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다. 왕릉은 난간석이나 망주석 등이 없고 수석도 2쌍이 아닌 1쌍만 설치되어 있다.  

익릉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이다. 익릉을 관찰하고 있을 때 어떤 노부부와 자식들이 안내판을 읽으며 인경왕후의 요절을 안타까워하며 고인을 애도하고 있었다. 성종의 비 윤씨를 폐비시키고 사사까지 시켰던 소현왕후(인수대비) 못지 않게, 왕자(경종)를 낳으며 궁궐에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던 장희빈이 잠들어 있는 곳 대빈묘.

장희빈이 잠들어 있는 대빈묘. 2003년 8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장희빈이 잠들어 있는 대빈묘. 2003년 8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대빈묘는 지극히 간소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묘역도 좁았고, 정자각도 없이 봉분 앞에는 대빈 장씨의 무덤임을 알리는 비석만이 세워져 있었다. 궁녀에서 후궁으로, 후궁에서 중전의 자리까지 오르며 파란을 일으켰던 장희빈. 그녀의 사후 모습은 쓸쓸했다.  

순창원은 명종의 장자인 순회세자와 세자손 공회빈 윤씨의 원이다. 1563년 명종 18년에 13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순회 세자가 묻힌 이 곳은 조선 왕조 최초의 원이다. 수경원은 영조의 후궁이자 장헌세자(장조)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무덤인데, 후궁의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도세자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장헌세자는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굶어 죽어야 했던 비운의 세자였다. 비참하게 죽어 가는 아들을 피눈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영빈 이씨를 생각해 본다. 서오릉은 당대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요절한 후손들이 누워 있는 곳이다.

서오릉 가는길
1, 통일로, 녹번동, 불광역 4거리, 연신내 4거리 등 어느 곳에서도 진입 가능.
2, 서대문에서 구파발 쪽으로 가다가 녹번 3거리나 연신내 4거리에서 좌회전, 서오릉로로 진입해 가다보면 입구가 보임.

Tip.
■참고로 조선조 왕실의 묘제를 살펴보면, 왕과 왕비는 능(陵)으로, 왕세자는 원(園)으로, 대군·공주·옹주·후궁은 묘(墓)등으로 품격에 따라 차등 구분하여 호칭하였다.
■세조의 아들인 예종의 부인 정순왕후는 산후병으로 17세에 요절했고, 성종의 부인 공혜왕후도 17세에 요절했다. 이 두 왕후는 세조와 함께 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빼앗은 한명회의 딸이다. 세조와 한명회는 권력의 단맛과 함께 아들과 딸, 며느리가 요절하는 비운을 맛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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