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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사찰] 무량수전에 나비가 난다, 부석사
[이달의 사찰] 무량수전에 나비가 난다, 부석사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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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부석사의 아름다운 풍경.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부석사 가는 길에 도라지꽃이 예쁘게 피었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부석사 가는 길에 도라지꽃이 예쁘게 피었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경북] 배롱나무 꽃에 천연덕스럽게 앉은 나비가 관광객의 짓궂은 발장난을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날개를 낮춘다. 선뜻 신을 벗고 올라설 불심도 없으면서 무량수전 앞에서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나비는 날개 하나 흔들지 않고 날아오른다.  

이른 아침 함께 오르던 안개가 부석사 무량수전에 먼저 오른다. 부석사가 안개에 잠긴다. 은행나무 길을 청설모가 쪼르르 앞서서 달린다. 호젓한 길을 길동무 해주니 그저 반갑다.

몇 년 전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이 길을 오른 적이 있다. 그 중 한 친구는 갓 결혼한 새색시였다. 해질 무렵에 남편이 보고 싶다며 눈에 이슬이 맺히던 그녀가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뻗어나가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면서 젖은 눈동자를 반짝이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와 별로 변하지 않은 부석사가 있다.

경운기 타는 스님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경운기 타는 스님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인근 폐사지에서 옮겨놓은 두개의 석탑.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인근 폐사지에서 옮겨놓은 두개의 석탑.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통통거리는 경운기를 탄 스님의 수줍은 미소 같은 부석사
당간지주를 지나서 천왕문을 넘는다. 드디어 부석사로 들어간다. 축석에 푸른 이끼가 끼었다. 돌은 제각기 다른 크기를 갖고 잘 맞추어져 있다. 서로의 무게를 짊어지고 긴 세월을 잘 견디고 있다.

스님 두 분이 통통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내려온다. 수줍은 미소를 띄우며, 합장 없는 인사를 나눈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의상대사가 5년여를 찾아 헤매고서 찾아 낸 곳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나뉘는 봉황산 중턱.

화엄사상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삼국의 백성들이 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적 토대가 된다. 의상대사가 지은 부석사는 고려초 병화를 입었다가 고려 중기에 무량수전, 조사당이 중창된다. 이 때 지어진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로 어느 것 하나 어긋남이 없는 아름다움으로 많은 사람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범종각을 오르기 전이다. 젊은 보살이 이슬 젖은 화단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안개가 보살과의 거리를 좁혀준다. 그녀가 이슬 젖은 네잎클로버 하나를 건네주고 총총히 범종각의 계단을 오른다. 수첩에 클로버를 꽂아둔다. 그녀가 한웅큼 쥐고 있던 클로버 잎을 부처님께 공양을 드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녀의 젖은 바짓가랑이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범종각은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측면으로 지어졌다. 지붕 또한 다른데 앞쪽은 팔작지붕이고 뒤쪽은 맞배지붕이다.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면 마치 새 한 마리가 소백산맥을 향하여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하다.

무량수전 앞의 석등.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무량수전 앞의 석등.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부석사 범종각 두로 안개가 끼었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부석사 범종각 두로 안개가 끼었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소망과 절 지붕.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소망과 절 지붕.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중생에 대한 애틋함이 극락의 보살
부석사의 석축과 108개의 돌계단은 극락에 이를 수 있는 9품 만다라를 의미한다. 천왕문에서 요사채로 오르는 세 계단이 하품, 범종루까지 중품, 범종루에서 다시 안양루 밑을 지나서 무량수전 앞마당에 오르는 마지막 계단을 상품.

극락에 도달해서 바라본 세계는 쭉쭉 뻗어나가 있는 산자락들. 너무나 장엄하고 경건하다. 그 산자락 속에 숨어 있을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이 솟는다. 중생에 대한 애틋함이 극락의 보살이 아니겠는가.

범종각 아래서 바라다 본 안양루.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범종각 아래서 바라다 본 안양루.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범종루를 지나 안양문이다. 불교에서 ‘안양’은 극락이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에 ‘안양문’이라 써있다. 극락세계로 가는 입구. 안양문에서 바라보는 무량수전 앞의 석등은 가운데서 약간 비껴서 세워져 있다. 공간 하나에도 정성을 들였다.

해가 떠오를 때는 안양루 처마 밑에서 여섯 개의 부처가 앉아있는 신비로운 모습도 볼 수 있다. 수줍게 미소를 띄우는 공양주 보살이 새겨진 석등이 무량수전을 밝히고 있다. 무량수전은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닌 무량수불로 불리는데 ‘무량수’는 이를 말하는 것이다.

무량수전 계단 동측에는 ‘충원적화면 석수 김애선’이라는 이름이 새겨져있다. 무량수전의 석수를 쌓은 도공의 이름이란다. 무량수전은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을 더 튀어나오게 했으며 건물 귀부분의 기둥도 중앙보다 높게 만들어서 착시 현상에 의해 건물이 왜곡 되어 보이는 현상을 막았다. 배흘림기둥 역시 머리가 넓게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다.

중앙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왔다가 쓴 것이라고 한다. 무량수전 옆 돌배나무에 돌배가 파랗게 익어간다. 그 그늘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으니 배롱나무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서 천연덕스럽게 앉아 꽃에 취했는지 부석사에 취했는지 날아갈 줄 모른다.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의 초상화가 있는 선묘각.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의 초상화가 있는 선묘각.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의상대사에게 한없는 사랑을 바친 선묘낭자의 초상화가 있는 선묘각을 지나서 조사당으로 올라갔다. 흙 계단이 반들반들하다. 조사당 옆에는 공부하는 스님들이 있기에 특히 정숙해야 한다.  

의상대사의 초상을 안치한 조사당은 작은 건물로 보이지만 맞배형 지붕을 넉넉하게 내어 작은 건물 같은 느낌이 들지 않게 했다고 한다. 그 앞에 있는 철책 속에 나무 한그루가 있다. 선비화다.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란다. 나무의 잎을 따서 뜨거운 물에 우려내서 마시면 아들을 얻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여행객들이 마구 잎을 따가자 철책으로 보호하게 되었단다.

무량수전에 서서 소백산맥을 내려다본다. 안개는 걷히고 절 지붕 사이로 빛들이 쏟아진다. 무량수전의 높은 문지방을 넘어서 세명의 아이들이 나온다. 뒤에 염주를 들은 늙은 할머니가 따라 나오며 조심하라 손사래를 친다. 바람을 타고 능금 익는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Traveler’s Guide   
가는 길
경부(중부)고속도로 -> 신갈(호법)IC -> 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 풍기IC 쮝 부석사 안내 간판을 따라오면 된다. (풍기에서 부석사까지 약 3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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