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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취미여행] 지도에 없는 마을을 찾는 사람들, 오지여행 동호회 '오지코리아'
[취미여행] 지도에 없는 마을을 찾는 사람들, 오지여행 동호회 '오지코리아'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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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지리산은 거친 산이지만 또 푸근한 산이기도 하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지리산은 거친 산이지만 또 푸근한 산이기도 하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남원] 차가 다닐 수 없는 길, 사람과 동물만이 가는 길 지도에는 점으로 표시되는 곳 천진한 인심이 살아있는 곳, 그런 마을을 찾는 사람들과 여행을 떠났다.

‘오지코리아’는 알려지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동호회다. 특히 그들의 여행지인 오지가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꺼려한다. 아마 이번 여행지가 오지였으면 취재가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이 이번 여행은 지리산 산행이었다.

까탈스러운 이 여행자들에게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홈페이지 첫 화면의 사진 때문이다. 나른한 햇살이 내리는 텃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김을 매는 한적한 사진이 따뜻했다. ‘오지코리아’와 떠나는 지리산 산행 약속장소에는 이스타나 15인승 미니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A4용지에 적혀있는 여행안내서에는 장소, 차량, 숙박, 참가회원, 일정이 적혀있었다. 참가회원은 나이 순서다. 길은 멀었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쑥쑥 잘 달렸다. 늘 여행을 하면서 느끼지만 여행하는 길은 유치원생이나 어른이나 다 똑 같다. 흥분과 설렘. 그래서 여행은 사람을 젊게 하나 보다.

이재홍 씨는 소설을 좋아하는 남자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을 잘 읽는다. 멀미할 것 같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익숙해서 괜찮다고 한다. 여기저기 여행 동호회를 쫓아다녔지만 이 곳이 제일 마음이 편하단다. 특히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시골 길을 걷는 기분이 최고란다. 그는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를 읽고 있었다.

물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산청막걸리.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물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산청막걸리.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가는 길에 산청에 들러서 산청 막걸리를 샀다. 주인아저씨가 한 그릇씩 맛보게 해 주었는데 술꾼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박수연 씨가 정말 맛있는 술이란다. 맑은 물을 마시는 듯 물맛이 살아있단다. 달지 않아서 좋다. 낮달이 떴다. 지리산 자락 사이로 아직 보름이 차지 않은 달이, 산이 어두워지는 건지 달빛이 찬지 산을 달리는 바람이 시원하다.

차는 실상사를 지나서 뱀사골 식당촌으로 들어갔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식당들이 비슷비슷해서 예약한 식당이 아니라 다른 식당 앞에 차를 세우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뱀사골산채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이 맛깔스럽다. 취나물, 고사리 등 산채나물의 향을 오랜만에 음미해 보았다. 이 시기의 지리산 소나무 밑에는 꽃버섯이 자란다.

배기환 회장이 차를 끌고 실상사까지 직접 갔다. 실상사 앞에는 할머니들이 꽃버섯을 파는 데 늦은 시간이라서 문이 다 닫혔다. 실상사 앞 슈퍼에서 먹으려고 사둔 꽃버섯을 비닐봉지째 그냥 준다. 꽃버섯 빛깔만큼이나 사람 마음이 곱다.

산청에서 산 막걸리가 한잔씩 돌고 이관기 씨가 끓인 보이차가 나온다. 차에 관계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분도 아닌데 단지 25년 동안 차를 즐긴 차 애호가다. 사람들과 차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단다. 박성암 씨는 이 차를 마시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며 정말 좋은 차란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은 보이차 맛이 난다. 들뜨지 않고 가라앉지 않은 안정감이 있는 여행. 편안하다.

지리산 계곡의 55점짜리 물.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지리산 계곡의 55점짜리 물.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지리산 뱀사골-삼도봉-노고단-삼성재간 산행 새벽 5시 드디어 지리산 트레킹을 시작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아서 덥지 않다. 역시 트레킹을 많이 한 분들이라 걸음이 빠르다. 이관기 씨는 걸어가면서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떠서 먹어보고 점수를 준다. 55점짜리 물. 먹어보라 떠주는데 물맛은 참 어렵다. 이관기 씨는 길은 쉬이 잃어버리지만 물은 기억에 남는단다. 어느 곳에 백점짜리 물이 있는지, 그 길을 더듬는다.

매미소리가 물소리를 뛰어 넘지 못 한다. 여름 지리산이 칼칼하다. 맑은 물에 세수를 한다. 산삼물에 얼굴을 씻어서 그런지 얼굴이 해맑다. 다들 아이의 얼굴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느려지는 걸음을 배기환 회장님이 기다려준다. 간혹 다래도 따 준다. 다래의 쌉싸름한 맛을 즐기며 지리산을 오른다. 쉬엄쉬엄, 먼저 오른 일행을 만나면 간식을 나눠먹었다. 갈증에는 물보다 보이차가 났다.

구절초.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구절초.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동자꽃.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동자꽃.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뱀사골산장에 먼저 도착한 일행이 식사 준비를 한다. 의자 옆으로 민들레가 늦은 꽃을 피웠다. 뱀사골산장부터 꽃 천지다. 동자꽃, 산쥐손이, 매미꽃, 물봉선이 등 꽃길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꼭 한다.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도 명랑한 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산이 참 크다. 사람을 꽃보다 아름답게 만드니….

드디어 삼도봉으로 가기 전의 580개가 넘는 나무계단을 만났다. 올라가면서도 배기환 회장이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다 왔다며 힘을 넣어준다. 등산을 많이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의 차이는 인삿말에서 알 수 있단다.

자연이 있어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자연이 있어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가는 길이 멀어도 산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다 왔다’라며 걸음에 힘을 넣어주고 등산 초자는 ‘이제 시작이라고, 아직 멀었다’고 한다. 사람의 관계도 그러리라. 가슴을 향해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그 사람 마음 앞에 다 왔노라’고 말해주면 생이 얼마나 든든할까.

김종상 씨는 피부가 까맣고 말라서 부시맨이라는 별명이 붙은 줄 알았는데 진짜 부시맨이다. 산을 어찌나 잘 타는지,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서는 뒤에 처지는 사람들의 가방을 들어준다. 드디어 삼도봉 도착, 삼도봉은 경상북도, 전라남북도가 만나는 지점을 말한다. 삼도봉을 지나니 멀리 섬진강 자락이 보인다.

지리산 산자락 구비구비 서루움을 묻어 둔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지리산 산자락 구비구비 서루움을 묻어 둔다.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지리산은 거친 산이다. 그러면서 한없이 푸근한 산이다. 시루봉은 휴식년제에 들어갔다. 지리산에 풀어놓은 곰들이 그 곳에서 놀고 있다고 한다. 녀석들 곰답게 넓게도 놀고 있다. 무럭무럭 잘 자랐으면 좋겠다. 노고단 성삼재를 거쳐 오는 내내 배기환 회장이, 뒤쳐지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 너무 빨리 앞서 가는 사람들에게 뒷사람을 기다리는 미덕이 없다고 약간의 질책도 한다.

10시간이 넘는 긴 산행이었다. 그리고 내 생에 지리산 첫 산행이었다. 신기하게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아마 이 여행이 끝나면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으리라. 동호회에 가입하기 위해서…. 오늘 나는 산과 사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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