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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지구촌기행] 몽골리안의 안터 고향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BAIKAL
[지구촌기행] 몽골리안의 안터 고향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BAIKAL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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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차가우며, 가장 깨끗하며 가장 깊은 호수이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차가우며, 가장 깨끗하며 가장 깊은 호수이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러시아] 하나님이 빚어낸 최고의 창조물이라는 바이칼 호수. 러시아 사람들의 자랑거리로 급부상하고, 무공해 지구촌으로 세계인의 눈길을 끌고 있는 바이칼에 다녀왔다.                 

바이칼에 가면 시인이 된다! 과연 그럴까? 한 친구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도 은근히 시 한 편 건지길 기대하며 러시아 땅에 발을 내렸다. 도착한 시각이 밤늦은 때라 흥분할 필요는 없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이르쿠츠크 시내 앙가라 강변을 거닐다가, 포장마차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이름도 거룩한 바이칼 호텔에 여장을 풀고 아침을 기다린다.

이르쿠츠크에 있는 앙가라 강은 바이칼 호수에서 밖으로 흐르는 유일한 강이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이르쿠츠크에 있는 앙가라 강은 바이칼 호수에서 밖으로 흐르는 유일한 강이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1167년경 바이칼호 남부에서 징기스칸이 태어났고, 그는 생전에 자주 바이칼호에 들러 기도와 명상,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1167년경 바이칼호 남부에서 징기스칸이 태어났고, 그는 생전에 자주 바이칼호에 들러 기도와 명상,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아침은 더디게 왔다. 선입견이겠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동작이 느리다던데 아침도 늦게 열리는 모양이다. 아니면 여행객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르쿠츠크 역으로 달려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의 남부 도시 슬루잔카로 가기 위함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맛뵈기라도 시베리아 열차를 타본 것과 타 보지 못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기차역에는 벌써 배낭을 짊어진 여행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지정좌석이 없는 열차표를 사 들고 열차에 올라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르쿠츠크 역. 슬루잔카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이르쿠츠크 역. 슬루잔카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3시간 30분 여를 달린다고 한다.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휘두른다. 여행객은 언제나 낯선 거리와 풍경 앞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한다. 유일하게 바이칼호에서 밖으로 흘러나가는 강물이라는 앙가라 강이 철길을 따라 흐른다. 강에서는 한가롭게 낚시를 하는 어부(?)들이 보이고, 강 언덕에는 포플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열차는 완행열차다.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간이역을 만난다. 간이역이 있는 곳에 크고 작은 시베리아의 농촌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 집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느 집 마당에선 강아지가 뒹굴고 있다. 간이역으로 시골 마을이 하나둘씩 다가왔다 밀려간다.

통나무집과 판자로 된 울타리, 그리고 텃밭에는 감자꽃이 하얗게 피었다.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양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산언덕에는 노랗고 하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민들레와 들국화 종류가 아닐까? 열차를 세우고 가까이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이칼 호수는 중앙아시아 또는 유라시아 유목 민족의 발원지이자 이동경로로서 중요한 문화사적 의의가 깃들어 있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바이칼 호수는 중앙아시아 또는 유라시아 유목 민족의 발원지이자 이동경로로서 중요한 문화사적 의의가 깃들어 있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시베리아 벌판에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여행객들의 시선은 휘둥그레 지게 한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시베리아 벌판에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여행객들의 시선은 휘둥그레 지게 한다.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서너 개의 터널을 지나고, 간이역마다 예닐곱에서 2, 30명의 여행객들이 타고 내린다. 계곡에서 맑은 물이 흐르고, 멀리 거대한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이칼 호렸다. 슬루잔카에 도착했다. 이 열차의 종착역이다. 환 바이칼 열차를 탈 사람들은 여기에서 갈아타야 한다. 이곳에서 다시 5, 6시간 동안 시속 30km 미만으로 달리는 ‘거북 열차’를 타고 바이칼을 구경하려는 사람과, 버스로 호수 남부를 여행하려는 사람들과 길이 갈린다.

슬루잔카에서 버스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바이칼스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여름 휴가를 보내고 갔다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굳이 도시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읍내 마을보다 작기 때문이다. 길가에서 동네 아낙들이 딸기와 산딸기, 앵두 따위를 판다. 농약 값보다 딸기 값이 더 싸므로 약을 치지 않은 무공해 상품이다. 한 바케스에 보통 5달러. 왜 그런지 반 바케스는 팔지 않는다.

호수를 끼고 달리다가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좔좔좔 소리를 내며 계곡물이 흐른다. 호수다. 시베리아의 진주, 성스러운 바다, 하나님의 창조품이라는 바이칼이다. 바이는 ‘풍부하다’는 뜻이고, 칼은 ‘호수’를 가리킨다. 민물과 민물고기가 풍부하다는 뜻이다.

바이칼 호수에 있는 할혼 섬에서 본 일몰.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바이칼 호수에 있는 할혼 섬에서 본 일몰. 2003년 9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먼먼 옛날, 몽고에서 한 인류가 움을 틔웠다. 몽골리안이다. 지구에 대재앙이 있었고, 한 무리가 이곳으로 옮겨오고, 다른 무리는 한반도의 고조선 땅으로 이주하였다는 일부 인류학자들의 학설이 가슴을 울린다. 길가에서 딸기를 팔던 아낙네들 얼굴이 어쩐지 우리네 시골 아주머니들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바이칼을 바다라고 했다. 전방이나 좌우가 참으로 까마득하다. 수평선 너머로 하얀 뭉게 구름이 꽃을 피운다. 호수 건너 산자락이 영락없이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다. 물은 맑다. 발을 담그기가 송구스러울 정도로 맑고 곱다. 물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물 속에 비친 사내의 얼굴을 보며 수선화의 전설을 떠올린다.

불과 5년 전 만해도 여행객들이 기념으로 물을 한 그릇씩 떠 마셨다는데.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이미 다른 여행객들이 발을 담그고, 호수 바로 위 초원에 염소와 양, 젖소, 망아지들이 노닐고 있었으니…

호수에 손을 담갔다가, 물을 떠서 얼굴을 씻는다. 손이 시리다. 바이칼스크 앞 호수 주변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초원에는 풀을 뜯는 동물들이 한가로운 풍경을 만들고, 호숫가에는 사색을 즐기는 청춘 남녀가 낭만적인 그림을 만들고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서둘러 걷는 사람이 없다. 서둘러 걷는 동물도 없고. 이 거대한 호수, 잔잔한 물결, 거칠 것없이 드넓은 자연에서 왜 서두르겠는가? 한껏 여유를 부리는 현지인들을 느리다고 흉보는 사람은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눈과 귀에 담아와야 하는 마음 바쁜 여행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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