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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산] 억새꽃 물결을 담아두는 화왕산성, 창녕 화왕산
[이달의 산] 억새꽃 물결을 담아두는 화왕산성, 창녕 화왕산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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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창녕 화왕산 오르는 길. 2003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창녕 화왕산 오르는 길. 2003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창녕] 시원한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산 정상에 십리 억새밭이 물결친다. 그 물결을 받아내는 화왕산성이 있는 화왕산. 볼거리가 많은, 10월에 꼭 가고 싶은 산이다.                         

화왕산은 해발 757m 높이로 가족이 등산하기에 알맞다. 등산로는 창녕에서 가는 자하골과 옥천에서 올라가는 두 곳의 등산로가 있다. 마음같아서야 자하골부터 옥천까지 한 바퀴 돌아보라고 하고 싶지만, 자가운전자에게는 좀 힘들다.  

자하골매표소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꽤 험난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이라야 가능하다. 경사가 급한 곳은 계단과 밧줄을 이용하는데 모험심이 있는 아이들은 재미있어 한다. 옥천매표소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잘 닦여있다. 가족이 등산하기에 옥천이 좀 편하다. 가는 길에 드라마 ‘허준’과 ‘다모’ 셋트장이 있어서 볼거리를 준다.

멀리 있는 환점은 TV프로 '토요일엔 떠나볼까'팀의 화왕산 촬영 모습. 2009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멀리 있는 환점은 TV프로 '토요일엔 떠나볼까'팀의 화왕산 촬영 모습. 2003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지하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에 안개가 자욱하다. 2003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지하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에 안개가 자욱하다. 2003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혼자 등산하는 길, 수줍은 쑥부쟁이가 하늘하늘
옥천매표소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관룡사 가는 길이 있고 왼쪽에 화왕산 등산로가 있다. 사람이 많지 않을 때는 매표소를 지나서 옥천계곡 통나무집(걸어서 30분 정도)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억새꽃이 한창 필 때는 걸어가는 게 났다.

옥천계곡 통나무집 뒤로 바로 등산 진입로가 있다. 사륜차가 다닐 정도로 길이 잘 닦여있다 (차가 통행하지 못 하도록 철문으로 막았다). 길이 좋아서 좀 심심할 것 같지만 곳곳에 계곡이 있어서 물소리를 들으며 등산할 수 있다. 머리가 여물기 시작한 도토리가 모자를 벗고 툭툭 떨어진다. 개암나무라도 있나 찾아보았지만 없다. 혼자 가는 길에 개암 열매를 딱 깨뜨리면 온 산이 그 소리에 놀라 일어날텐데….  

40분 정도 걸어가니 일야봉산장이 나온다. 일야봉산장 아주머니는 정상까지 30분이면 간다고 하는데 그거야 산길에 익숙한 아주머니 걸음이고, 1시간 정도 잡고 천천히 길을 나섰다. 억새풀에 물방울이 대롱대롱 달려있다. 멀리 산은 안개에 덮이고, 돌아보니 곱게 핀 쑥부쟁이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쑥부쟁이에게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옛날에 가난한 대장장이가 살았다. 그에게는 어린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쑥을 캐러 다니는 딸이 있었는데 쑥을 캐는 대장장이의 딸이라 하여 쑥부쟁이(불쟁이를 부쟁이)라 불렀다. 어느 날 쑥을 캐던 쑥부쟁이는 덫에 걸린 사냥꾼 청년을 구해주었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청년은 가을에 꼭 오겠다며 약속을 하고 떠나갔다. 가을이 가고 또 가을이 되어도 처녀는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청년은 오지 않았다. 청년을 사모하던 처녀는 기다림에 지쳐서 절벽에 떨어져 죽게 된다. 이듬해 가을 그 자리에는 목이 길고 처녀처럼 수줍은 듯한 보랏빛 꽃이 피었고 이 꽃이 처녀의 영혼이라 여긴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라 불렀다.

드라마 '다모' 촬영장. 2003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드라마 '다모' 촬영장. 2003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나도 아프다” 드라마 ‘다모’촬영장
30분쯤 가면 드라마 ‘다모’와 ‘허준’ 촬영지가 나온다. 화왕산 정상에 가는 길에 살짝 비켜서서, 몇 채의 너와집과 나무 장승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멀리 화왕산성을 배경삼아 서 있는 너와집이 운치가 있다. 좋은 사람과 등산을 하고 있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돼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다모’ 셋트장부터 정상까지 가는 길은 둘이 걷기에 좋다. 뒤돌아보면 더 좋은 길이고, 동무삼아 걷던 사람이 그 길을 지나고 나면 연인이 될 듯한 묘한 설레임을 갖게 한다. 아직 사랑을 확인하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과 함께 걸어보기 바란다.

화왕산 억새. 2003년 10월. 사진제공 / 창녕군청
화왕산 억새. 2003년 10월. 사진제공 / 창녕군청

하얀 억새 물결을 담아두는 화왕산성 화왕산 정상의 산성 문을 나서면 ‘와!’감탄이 절로 나온다.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린 듯 5만6천평 분지에 초원이 펼쳐진다. 아직 억새꽃이 덜 피었지만 10월에 가는 분들이야 하얀 억새밭을 만나리라. 10월 4일에는 십리 억새 밭에서 해질 무렵 억새제가 열리고 통일횃불행진을 한다. 가을에는 억새, 봄에는 진달래 철쭉이 유명하다.

분지 중앙에는 선사시대 화산으로 추정되는 3개의 못이 있으며 창녕 조씨의 득성비가 있다. 바람을 타고 비스듬이 내려오는 억새풀 물결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못 하도록 화왕산성이 둑처럼 딱 버티고 있다. 남북 두 봉우리를 이어서 축조된 석성으로 둘레가 2천6백m 정도 된다.

성이 언제 쌓여졌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야시대의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이 성을 거점으로 왜군이 경상남도를 침입하려는 것을 막았다. 임진왜란 때 이 성이 왜군을 무찌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용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내려다보는 세상. 2003년 10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용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내려다보는 세상. 2003년 10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주변 볼거리
관룡사와 용신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1617) 때 다시 지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관룡사 동편으로 바위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구룡산이 있어 더 운치가 있다.

관룡사에 가면 대웅전 왼쪽 뒤 산 길 700m 정도 가면 용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있다. 꼭 가보라. 마음 가득 답답함을 품고 있으면 석가여래좌상에게 소원을 빌고, 석가여래좌상이 내려다보는 세상을 바라보라. 답답한 마음이 휙.

우포늪 풍경. 2003년 10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우포늪 풍경. 2003년 10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우포늪
우포는 목포늪, 쪽지벌, 우포늪, 사지포늪을 통틀어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습지다. 1997년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우포는 말 그대로 창녕의 애물단지였다고 한다.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서 매립도 고려했지만 70만평을 매립할 때 돈이 더 들어가서 결국 포기했다는 후문이 있다.

우포늪은 1억4천만년전의 원시늪이 그대로 살아있는 생태체험장이다. 고여있는 듯하나 흐르는 것이 보면 볼수록 신비하다.

대형 가야고분군을 볼 수 있는 교동고분군. 2003년 10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대형 가야고분군을 볼 수 있는 교동고분군. 2003년 10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교동고분군
창녕은 제2의 경주라 할 만큼 문화재와 많은 고분들이 있다. 특히 창녕읍 교리에는 36기의 대형 가야고분군이 복원되어 있다.

1918년 일본인에 의해 발굴되어 대부분의 유물은 일본으로 가고 일부만 국내에 남아있다. 고분군 옆의 창녕박물관에서 당시에 발굴된 금봉관, 각종 귀금속, 장신구, 철제 무기, 토기 등을 볼 수 있다. 고분 사이로 산책하는 기분도 남다르다.

조선시대의 냉장고, 석빙고. 2003년 10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조선시대의 냉장고, 석빙고. 2003년 10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조선의 냉장고 석빙고
창녕읍에 있는 석빙고는 조선시대 얼음 저장고다. 남쪽에 정사각형의 입구가 있어 운이 좋으면 열고 들어갈 수도 있다. 겨울에 강에서 얼음을 깨다 저장하던 것으로 지금의 대형 냉장고다. 조선시대 얼음은 여름에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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