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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기차역] 만경평야 가로지르다 쉬어 가는, 대야역
[이달의 기차역] 만경평야 가로지르다 쉬어 가는, 대야역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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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든든한 역장이 기다리고 있는 기차역.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든든한 역장이 기다리고 있는 기차역의 정겨운 풍경.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군산] 큰 들판이라는 지명처럼 넉넉해 보이는 이재영(49) 부역장의 철도 사랑은 남달랐다. 늘 쇠붙이와 살아가기 때문에 맛깔스럽게 말을 하지 못한다는 수줍음도 잠시, 철도가 맺어준 인연과 결혼하여 공주 둘을 낳아 꽃밭을 일구고 사는 것. 모두가 철도인생이 가져다 준 행복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빗속에 멀리까지 찾아 왔는데 줄 것은 없고 차나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무슨 차로 할까요. 인스턴트 녹차밖에 없네요.(웃음) 대야역은 군산선이 지나는 역으로 군산에서 임실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더 멀리 여행을 갈 사람들은 익산역에서 호남선이나 전라선으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

군산선은 앞에 기관차가 없고 동차만 3량 붙어서 기찻길을 누빈다.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군산선은 앞에 기관차가 없고 동차만 3량 붙어서 기찻길을 누빈다.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우리 역은 오랜 역사 속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군산시 대야면 지경리에 위치해 있어서 지경역이라고 불리웠는데 1953년 6월 넓은 들판이라는 뜻의 대야역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역이 생기게 된 배경은 1910년 경술합방 후 일본의 침략 정책으로 식량과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1912년 3월부터 지경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지만 기름진 땅에서 나는 질 좋은 청결미가 일본사람들 입맛을 빼앗지 않았나 싶네요. 대야역은 지역 특성상 군산시와 익산시의 도심생활권의 중간 위치에 놓여 있어 1980년대에는 출,퇴근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했어요. 육상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익산과 군산으로 통학하는 학생들로 아침마다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군산과 임실을 가는 기차, 통일호.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 자
군산과 임실을 가는 기차, 통일호.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 자

또 오산과 김제 옥구에서 생산되는 농, 축, 수산물등 각종 생활물자 교역의 요충지로 자리잡아 5일장이 성행했어요. 1일과 6일은 대야장이 서는데 대형 마트들이 생겨 손님을 빼앗겼지만 아직도 고추시장으로 유명합니다. 옛날에는 객차 안에서 물건이 거래되기도 했어요. 일반손님들이 많이 타기 때문에 열차가 시장이 된 셈이죠.

장날에는 몸보다 큰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이 새벽부터 몰려들었는데 지금은 자동차문화가 발달해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직도 군산선의 아름다운 풍경이 하나 남아있는데요. 매일 아침 8시까지 열리는 군산역전 도깨비시장을 이용하기 위해서 보따리를 이고 가는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새벽 6시 5분에 익산역을 출발하는 열차는 대야역에 6시 23분에 도착합니다. 주로 오산이나 익산에서 생산되는 야채를 실어 나릅니다. 새벽부터 커다란 짐을 들고 가지만 할머니 지갑에 들어가는 돈은 2만원 안쪽이죠. 소일 삼아 역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 정겹습니다.

나는 열차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하고 철도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74년에는 2만5천원의 봉급을 받았는데 박봉이라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근무했습니다. 무엇보다 열차가 맺어준 인연(중앙선 석불역사 근무시절 역 근처에서 살던 아가씨)과 결혼해 딸을 둘 얻어 지금까지 순탄하게 잘 살고 있어요.

격일로 근무하는 근무조건 때문에 특별한 서비스는 못 하지만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해주는 청소 반장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서 그런지 첫 근무지가 생각나네요. 중앙선 구학역이라는 곳인데 낯선 곳에서 만난 하숙집 아주머니가 너무 따뜻하고 친절하게 해 주셔서 꼭 한 번 뵙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네요.

비스듬히 바다에 기대어 쉬고 있는 어선과 갈매기.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비스듬히 바다에 기대어 쉬고 있는 어선과 갈매기.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근무지를 서울, 대전, 부산, 순천, 영주역을 거치면서 기억나는 일도 많은데, 내가 청량리역에 근무할 때니까 1976년쯤인가 봅니다. 그 시절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무임승차를 부탁하는 일도 많았어요. 어느 가출 소년이 차비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차표에 용돈까지 얹어서 집으로 보낸 일이 생각나네요. 거의 대부분 돌아서며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지만 한 번도 받은 일이 없네요.(웃음)

떠나는 기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긴 여운을 남기듯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간이역이라 오고 가는 사람이 뜸한 대야역은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용을 많이 합니다. 때로 표가 매진되었을 때 표를 달라는 어른들이 있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를 가는지 미리 알아두었다가 표가 있을 때 매표하라고 전화 해주는 것이 새로운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나는 낭만이 없고 무딘 사람이지만 대야역사의 은행나무를 보며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느낍니다. 좀 있으면 대야 평야에 누렇게 익어 가는 벼이삭과 노란 은행잎이 가을을 꼭 붙잡고 있어 참 보기 좋을 것입니다. 이제 열차가 들어올 시간이 되었네요.

금강철새조망대 모습.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금강철새조망대 모습.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Tip. 대야역 주변 들러 볼 만한 곳
탐조여행을 떠나요 (금강철새조망대)

금강하구둑과 금강대교 중간 지점에 앉아 있는 철새조망대는 천연기념물 큰고니, 원앙, 흰꼬리수리등 주로 금강에서 볼 수 있는 천연기념물을 박제하여 전시하고 있다. 조망대에서 고배율 망원경으로 금강을 찾는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고 아름다운 서해바다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백릉 채만식문학관.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백릉 채만식문학관.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소설 탁류의 고장 (백릉 채만식문학관)
선생의 치열했던 삶과 시대적 상황의 흐름을 파노라마 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살아생전 선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신성리 갈대 숲 풍경.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신성리 갈대 숲 풍경. 2003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신성리 갈대 숲
JSA공동경비구역 촬영지인 신성리 갈대 숲은 작은 모임터, 시와 함께 들어가는 길, 흔들 다리 등. 숨바꼭질을 하면 찾을 수가 없다. 금강 언저리에 6만여평의 갈대밭은 햇볕에 여울지는 금강 물결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가을 손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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