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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산] 천년 고찰 미황사와 도솔암이 있는 땅끝마을 산, 해남 달마산
[이달의 산] 천년 고찰 미황사와 도솔암이 있는 땅끝마을 산, 해남 달마산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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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달마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암자 도솔암. 미황사를 건립한 의조 화상이 수도, 득력했다는 용샘 바로 위에 있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달마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암자 도솔암. 미황사를 건립한 의조 화상이 수도, 득력했다는 용샘 바로 위에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한반도 땅끝, 되돌아 시작이 되는 곳 전남 해남. 이땅의 시작을 알리는 달마산이 있다. 그러니까 1천 5백년 전 일이다.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바닷물은 잔잔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 때 멀리서 뗏목을 탄 한 사나이가 전라도 해남 땅끝 마을에 올라왔다.

사나이는 머리를 짧게 깎고 살결이 까무잡잡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인도를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러오는 길이었다. 사나이는 뭍에 오른 뒤 놀랄만한 카리스마를 보이며 육지 사람들을 제압했고, 곧바로 산으로 올라갔다.

땅끝 마을 인근에 있는 거대한 산은 인도나 중국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산이었다. 사나이는 그 산에 올라 자신을 석가모니의 28대 직계 제자(조사: 祖師)인 보리달마라고 소개했고, 그 산을 달마산이라 이름지었다. (주-이는 우리 불교가 해상으로 유입되었다는 학설에 입각해, 동국여지승람과 달마산에 기거하는 스님의 증언을 토대로 기자가 재정리한 것이다.)  

한반도 최남단 해남에 이쓴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산세가 절경을 이룬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한반도 최남단 해남에 이쓴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산세가 절경을 이룬다. 2003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한반도에 단 하나 밖에 없다는 달마산. 한때 두륜산 대흥사보다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유재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군과 혈투를 벌이다 세력이 약화되었다는 천년 고찰 미황사가 있는 산이다.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고, 아름다운 사찰 미황사와 도솔암이 있는 달마산. 해발 4백89m인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인근 초중등학교 교가에 거의 언급되고 있는 달마산은 땅끝 마을로 대표되는 해남군의 남단에 기다랗게 뻗쳐 있는 산이다. 두륜산과 대둔산을 거쳐 완도로 연결되는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서 서쪽으로 둔덕 같은 산릉을 넘어서면서 바위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 암릉은 봉화대가 있는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까지 그 기세를 곧추 세우고 있으며, 땅끝을 알리는 사자봉에 이르러 거친 산세를 갈무리한다.

능선은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동서 8km가 넘게 형성되어 있는데, 정상으로만 이어지는 등반길에선 멀리 남해 바다와 섬들,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을 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바위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억새풀과 상록수가 어우러져 있고, 토종 들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달마산에서 내려다본 송지면 일대 들녘.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달마산에서 내려다본 송지면 일대 들녘.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2003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그러나 산행을 하는 도중 돌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덜겅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또 곳곳에 단절된 바위 암벽이 있어 혼자 등반하기보다 여럿이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달마산을 등반할 수 있는 등산로는 크게 네 곳이다. 송지면 서정리, 현산면 송촌리, 북평면 영전리, 송지면 마봉리 등이다.

서정리와 송촌리는 미황사와 인접해 있고, 영전리와 마봉리는 도솔암과 가까이 있다. 달마산 능선을 종주하려면 송촌리나 마봉리, 혹은 영전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종주를 하게 되면 5, 6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경우 도솔암은 자연스럽게 들를 수 있지만 미황사는 별도 코스를 잡아 들러야 한다.

달마산은 능선길이 약 8km이고 산세가 험한 편이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달마산은 능선길이 약 8km이고 산세가 험한 편이다. 2003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달마산에서 가장 큰 사찰 미황사와 뒤쪽 달마산 능선.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달마산에서 가장 큰 사찰 미황사와 뒤쪽 달마산 능선. 2003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미황사는 달마산의 중간지점, 산 중턱 비교적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미황사는 우리나라 불교 해로유입설을 뒷받침하는 고찰로서 옛날에는 크고 작은 가람이 많이 있던 거찰이었다.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서 그 규모나 정교함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건물이다. 신라시대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달마산을 병풍 삼아 북쪽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이 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리)에 닿자 의조 스님이 100명 향도와 함께 쇠등에 그것을 싣고 가다가 소가 한 번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에 미황사를 일구었다고 한다.

도솔암 아래 있는 용샘. 1년 내내 샘물의 양이 일정하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도솔암 아래 있는 용샘. 1년 내내 샘물의 양이 일정하다. 2003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도솔암은 달마산의 서쪽 정상 도솔봉 부근의 바위 위에 있다. 당초 그곳은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도를 닦으며 낙조를 즐겼던 자리라고 한다. 암자 밑에는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된 용담이 있다. 용담은 어른 4~5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굴속에 있는 샘으로 일년 내내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고여 있어 신비함을 느끼게 한다.

용담은 제주도 산방굴사의 ‘천장샘’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하늘에서 나는 샘’이다. 도솔암 앞에는 스님이 면벽수도를 하고 있는 듯한 면벽 바위와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놀았다는 신선암이 있다.

도솔암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특히 많이 찾아오고 있는데 새벽 예불을 마치고 완도 앞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일출을 볼 때나 불타는 듯한 저녁놀 아래 서해 바다를 볼 때면 넋을 놓고 서 있다고 한다. 조석으로 붉게 물드는 하늘이 마치 미륵보살의 정토인 도솔천 같다. 이곳에서 기도중인 스님들은 참 아름다운 기도처라고 칭찬과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달마산 풍경.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달마산 풍경. 2003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Tip. 전설 하나/이 땅에서 가장 긴 바위
산신령이 금강산을 만들 때 전국에서 잘났다고 생각하는 바위들은 모두 금강산으로 모이라고 했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한 울산바위도 그때 울산에서 올라가다 설악산에서 멈췄다는데….

달마산의 바위도 기다란 몸집을 자랑하며 금강산을 향해 가는데 바로 앞 두륜산에서 또다른 바위가 기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자신이 더 길다고 키재기를 하다 싸움이 벌어졌다. 긴 싸움 끝에 달마산 바위가 이기고, 두륜산 바위가 졌는데 두륜산 바위들은 거의 깨졌고, 달마산 바위들은 당당하게 서 있다.

그 머리에 해당하는 ‘줄줄이 바위’가 해남 현산에서 북평으로 넘어가는 13번 국도의 길목닭골재에 있다. 싸움에서 이겼지만 1만2천 봉우리가 모두 선정되어서 이 바위는 그 자리에 눌러 앉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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