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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사찰] 겁이 쌓인 세월 너머로 가는 길, 봉화 청량사
[이달의 사찰] 겁이 쌓인 세월 너머로 가는 길, 봉화 청량사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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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첩첩산중에 하나의 점처럼 청량사가 자리하고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첩첩산중에 하나의 점처럼 청량사가 자리하고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봉화] 산 속에 푹 묻혀 있는 절. 산 속의 한 점, 그 한 점을 찾아 구도자의 자세로 천천히 걸어가보라. 겁이 쌓인, 인간의 시간을 넘는 세월을 만날 수 있다.             

불교에는 ‘겁’이라는 말이 있다. ‘찰나’와 반대되는 말. 사방 길이가 10km 정도 되는 큰 바위를 백 년에 한번씩 내려온다는 천녀가 입은 치맛자락이 스치고 지나가 이 바위가 모두 닳아 없어지는데 걸리는 시간, 그 시간을 불교에서는 1겁이라고 한다. 인간의 시간으로 따지면 43억2천만 년, 헤아릴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아득한 시간. 청량사에 가는 길이 그랬다. 겁이 쌓인 세월을 너머 가는 길, 아득해서 아름다웠다.

청량사 가는 길
나무 사이로 안개가 곱게 내려앉아 있다. 조금 쌀쌀하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듯 발걸음이 가볍다. 구도자가 닦아놓은 길처럼 혼자 걷기에 좋다. 도토리가 길을 안내하듯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길도 색깔이 있는가, 마음이 겸손해지는 길이다.

청량사는 콘크리트길로 가기 보다는 청량산 민박휴게소에서 200m 정도 내려오면 있는 등산로를 이용하는게 좋다. 20분쯤 오르니, 절벽 틈 사이에 가뭄에도 물의 양이 항상 일정하게 솟아나고 깨끗하다는 ‘총명수’가 있다. 최치원이 청량사 오는 길에 이 물을 마시고 정신이 더욱 맑아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

물은 고여 있으나 깨끗하지 않다. 길이 갈라진다. 청량사 가는 길과 응진전 가는 길. 청량산의 구심점은 청량사다. 금탑봉, 경일봉, 자소봉, 의상봉 등 여러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청량사를 싸고 있다. 그래서 어느 지점에 닿으면 좀 험해서 그렇지 길은 청량사로 모인다. 20분쯤 오르면 콘크리트를 뭉쳐서 세워놓은 듯 보이는 높다란 절벽 금탑봉이 보인다.

웅장한 바위 밑에 위치한 은진전.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웅장한 바위 밑에 위치한 은진전.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그 금탑봉 아래 스님이 정좌를 틀고 앉아있듯 응진전이 있다. 응진전은 1300년 전 신라 문무왕(683년) 때 의상대사께서 세우고 머물렀던 곳이다. 깎아지는 절벽 아래를 바라보며 의상대사는 무얼 생각을 했을까? 응진전에서 바라보니 봉우리 사이로 청량사 오는 도로가 구불구불 고행길이다.

다시 등산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청량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은 바위가 있다. 산 속에 푹 묻혀 있는 절. 그러면서도 절대 산에 묻히지 않은 절, 산 속의 한 점, 그 한 점에서 스님들의 불경 외는 소리가 산 속으로 은은하게 퍼진다. 가파른 길에 들국화가 해맑게 웃는다. 경일봉 750m. 힘겹게 올라온 듯하지만 막상 정상에 서면 그렇게 높지 않다.

산속에 폭 파묻힌 청량사의 모습.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산속에 폭 파묻힌 청량사의 모습.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청량산 봉우리가 그렇다. 아주 높은 산에 오르는 듯하지만 보면 850m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사람을 웃게 만든다. 하지만 결코 놓칠 수 없는 풍경들이 많다. 자소봉 앞길에는 바위 하나가 딱 버티고 있어 바위에 매달려서 올라가야 한다. 물론 바위 아래는 절벽. 조금 다리가 후들거리며 약간 아찔할 뿐이다. 절대 밑을 보지 말 것.

사람 눈이 멀리 높이 난다. 대도시의 빌딩에 갇혔던 시야가 트이고 산자락이 너울너울 파도처럼 자소봉을 향해 몰려온다. 산에서 “야호”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어쩐지 소리 높여 “사랑합니다” 외치고 싶다. 메아리는 어디까지 가는지… 사람의 가슴은 멀다.

마른 잎 마르는 소리가 나는 청량사
나무 그늘을 벗어나니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햇살을 잘 받은 마른 잎처럼 바스락 바스락 바람 소리가 난다. 청량사에 볕이 좋다. 다리가 풀리면서 절에 기대어 나른하게 단잠을 자고 싶다.  

원효대사(신라 문무왕 3년, 663년)가 창건했다는 청량사는 큰 절이었다. 예불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에서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산을 깨웠단다. 하지만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서 절은 급속히 쇠락했다. 풍기군수 주세붕은 절터에 소수서원을 짓고 청량사에 와서는 승려들을 꾸짖고 봉우리도 유교식 이름으로 고치기까지 했다고 한다.

약사여래불을 모신 유리보전.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약사여래불을 모신 유리보전.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그 당시 숭유억불정책이 얼마나 심했는지 봉우리마다 세워졌던 암자들은 하나둘 사라져 그 터만 남고, 유리보전과 응진전만이 남아 절의 명맥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이 청량사를 찾는다. 주지 지현 스님의 노력으로 절은 ‘산사음악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려 절을 찾는다.

가을, 스님의 독경소리처럼 노랫소리가 산사를 울리고 청량산 봉우리로 퍼져나간다. 산이 깨어난다. 청량사는 아픈 사람의 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는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특히 지불, 종이로 만든 부처님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금칠이 되어있다.

약사여래불을 모신 ‘유리보전’ 현판은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잠시 머물다가 쓴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름을 남기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부석사 무량수전의 필체와 같다고 한다. 부석사를 다녀왔다면 한번 눈여겨서 비교해 보기 바란다.

찻집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전경.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찻집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전경.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은 범종각 밑에 있는 찻집이다.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풍경이 시원하다. 솔잎차를 마시며 한숨 자고 싶다. 자고 일어나면 1겁의 세월이 흘러버리지 않을까? 바람소리에 묻히고 싶도록 볕이 좋다.  

Tip. 
축서사
의상대사(신라 문무왕, 673년)가 부석사보다 3년 앞서 창건했다. 6.25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현재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아 있으며, 최근에 요사채가 불에 타 재건축 중이다. 보광전의 불상은 통일신라말(9세기)에 조성됐다.

축석사의 불상.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축석사의 불상. 2003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8세기 석굴암과 비교해 보면 불상의 비례감과 양감이 떨어지고, 자세와 안면의 표현에 있어서 초상화 같은 느낌이 강하다. 얼굴, 팔, 몸통, 가슴 등 양감이 약하다. 이러한 불상의 특징은 당시의 정치, 사상에서 큰 변화가 이루어져서 조형미술에도 영향을 끼쳐 권위적인 모습을 거부하고 지역장인들의 자율적인 창작태도로 나타난다.

불상들에서 부분적으로 미소가 되살아나고 숭고감이 약화되면서 친밀감과 서민적 체취를 감지할 수 있다. (여행 중 동국대 미술사학과 이상송 씨를 만나서 불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각화사의 모습. 2003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각화사의 모습. 2003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각화사
원효대사(신라 문무왕 16년)가 창건했으며 원래는 남화사였다. 춘양고교에 있던 절을 현재 자리로 옮기면서 남화사를 생각한다는 의미로 각화사로 이름을 바뀌었다. 이 곳은 모든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삼불재불입지’라 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5대 사고지 중 하나로 ‘태백산 사고지’다. 현재는 흔적만 남아있고 조선왕조실록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중이라고 한다. 공부하는 절이므로 절대 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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