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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희원이네 여행기] 바람은 모래 언덕을 쌓고, 해안 식물은 습지를 만드는 곳, 신두리
[희원이네 여행기] 바람은 모래 언덕을 쌓고, 해안 식물은 습지를 만드는 곳, 신두리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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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신두리로 가족나들이를 나온 가족들.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신두리로 가족나들이를 나온 가족들.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여행스케치=태안] “언니! 빨리 일어나 우리 여행간데” 늦잠꾸러기 혜원이가 여행 간다는 소리에 웬일로 먼저 일어나 언니를 깨우는 소리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짧은 나들이라 생각했는데 무심코 한 ‘여행’이라는 말의 거창함이 꼬마까지 흥분시켰나보다. 나 역시 늦게 잠자리에 들고서도 일찌감치 눈이 떠지는 걸 보면 가족 나들이에 대한 기대로 생겨난 행복감 때문이었으리라.    

집에서부터 서둘러서 서울을 빠져 나오는 데도 한 시간이나 걸려 마음이 조급했지만 쭉 뻗은 서해안 고속도로는 하루쯤 일상을 뒤로 묻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큰 아이가 기대하던 서해 대교에 들어서자 구름 위로 솟은 듯 안개에 쌓여 우뚝 선 교각 주탑이 보인다. 높이가 여의도 63빌딩 높이고 다리 밑으로는 5만 톤급 선박이 왕래한다 하니, 과연 그 기술을 뽐낼 만 하다.

경기도 평택시에서 충청남도 당진군을 잇는 서해 대교를 지나는 동안 휴게소가 있는 ‘행담도’에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이들은 “우와”를 연발하며 마치 우주 정거장에라도 온 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호기심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낯선 곳의 신비감이나 좋은 경치를 보는 나 자신의 즐거움보다 내 아이들의 꾸밈없는 즐거움에서 더욱 더 가슴 뿌듯한 행복을 느끼니 말이다.

천연기념물인 해안 사구.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천연기념물인 해안 사구.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행담도를 떠나 서산 IC에서 1시간 정도 국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말로만 듣던 ‘태안해안 신두사구 지역’이다. 1백10여만 평의 국내 최대 해안 사구이며 그 중 30만평은 천연 기념물 제 431호로 지정된 일명 신두리 사막이라고 구두 또는 책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떠올리며 사구의 흔적을 찾아 연신 주변을 살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걸 보여 주기 위한 엄마의 극성과는 상관없이 ‘차량 통제 지역’입구까지 비포장 길을 달리자 들썩이는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아이들은 마냥 우습기만 하단다. 누가 이 아이들에게 감히 절도 있는 교육을 강요할 수 있을까? 다만 간절한 모성으로 자연과 하나 되길 꿈꿀 뿐이다.

일찍부터 서두르느라 아침식사를 변변히 챙기지 못해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한 식당의 뒷마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닷가에 온 이상 싱싱한 해물 맛을 봐야 하지 않을까? 얼큰한 꽃게탕에 우럭 매운탕은 주인아저씨의 친절함 만큼이나 시원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뒷마당에서 바다를 보는데, 너무나 멀어 아득하게만 보였다.

밀물 때라 얼마 후면 마당 앞까지 물이 든다고 사구 지역을 둘러본 뒤 다시 오라는 주인아저씨의 당부에 감사하며 식당을 나섰다. 그 곳은 역시 바람이 사는 곳이었다. 모래 언덕을 가로질러 걷는 동안 귓가에 속삭이는 바람소리와 바람이 나르는 찝찔한 갯내음이 마치 길을 안내하는 듯 했다.

날아드는 모래를 질긴 뿌리로 잡고 선 갈대숲.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날아드는 모래를 질긴 뿌리로 잡고 선 갈대숲.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먼지만큼이나 가늘고 고운 모래위에 발자국이라도 남길 양이면 침입자를 몰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금세 ‘휘이잉’ 바람이 지나간다. 그래서 모래 언덕엔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무늬가 생긴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저 먼 바다에서부터 거친 파도에 단련된 해풍이 자신이 쌓아올린 모래 산을 휘감아 돌며 만든 물결무늬와 심지어는 중앙에서 휘돌다 언덕을 깎아 내려 만든 묘한 기하학의 무늬가 그곳에 있었다.

아빠와 함께 뛰노는 아이들을 따라 모래언덕과 하늘이 맞닿은 곳으로 뛰어 올랐다. 그야 말로 탁 트인 바다다. 바닷가 모래 언덕 위 습지에 우거진 갈대 숲, 날아드는 모래를 질긴 뿌리로 잡고 버티는 갖가지 식물들과 비스듬히 서 있지만 여전히 늠름한 해송들에게서 얻은 감동이 채 가라앉기 전, 모래 언덕 꼭대기에서 바라본 바다는 자연에게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고나 할까.

모처럼 바다와 함께 하는 깊은 호흡으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는 사이 아이들은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카메라 앞에서 요리조리 예쁜 척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밀려오는 파도를 따라 깔깔대며 뛰어 다녔다. “와, 배다. 배!” 조금 떨어진 곳에 떠 있는 작은 어선을 발견하고는 좋아라 소리치고, 모래사장위의 작은 게들이 들락거리는 구멍들을 파보기도 하고, 모래집을 짓는다며 조막손 위로 모래를 토닥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반해 애들 아빠는 잠시 사진작가가 되기도 했다.

먼지만큼이나 가늘고 고운 모래.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먼지만큼이나 가늘고 고운 모래.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아! 천국이 이와 같을까!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거친 인생을 사는 동안 이 같은 평화가 우리에게 자주 찾아 주길 기도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밀물 때라더니 금세 모래언덕아래까지 파도가 밀려들었다. 우리는 다시 모래언덕위에 무성한 들풀사이를 거닐다 멋들어진 빨간 지붕 집을 발견했다.

아마도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새운 개발의 흔적이 아닐까. 그들이 하루빨리 그 곳의 부조화를 깨달았으면 한다. 바람이 쉼 없이 모래를 쌓아 올려 거대한 모래 언덕을 만들고 그 곳에 많은 해안가 식물들이 뿌리를 내려 습지를 만들고 그 뜻을 거스르는 힘마저 견뎌내며 그 생명력을 이어나갈 수 있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자전거를 타고 신이난 아이.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자전거를 타고 신이난 아이. 2003년 11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자연은 이렇게 하나의 위대한 작품을 내 놓기 위해 장구한 세월과 고통을 인내하나 보다. 저 거만하게 버티고 선 서해대교를 뽐내는 인간이 신에게 머릴 숙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리라. 내 사랑스런 어린 딸들이 그 순간 그 어떤 의미심장함을 얻었을 리 없지만 성장한 어느 땐 간 이 날의 감동을 기억했으면 한다.

자연의 인내와 경이를 꿈꾸는 엄마와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그곳을 찾길 바란다. 짧은 여정과 아이들의 체력을 염려하다보니 그토록 장관이라던 해당화 군락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차 뒷좌석에서 곤히 잠든 내 천사들의 얼굴을 보면서 먼 바다에서 찾아온 바람을 반겨 고운 모래분과 붉은 해당화 꽃잎으로 단장한, 푸른 머릿결 휘날리는 에덴동산을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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