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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자연사랑 여행] 얘들아 나오너라, 밤 따러 가자!
[자연사랑 여행] 얘들아 나오너라, 밤 따러 가자!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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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밤나무 아래 밤 따는 모습. 2003년 11월. 이민학 기자
밤나무 아래 밤 따는 모습. 2003년 11월.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가평] 몇 년 전부터 가을 밤따기가 유행입니다. 어렸을 적 뒷산에 올라가 밤을 땄던 추억을 가진 부모들이 아이들 손잡고 밤 따러 갑니다. 푸름이네도 가평 현리에 있는 중앙농원으로 밤을 따러 갔습니다.            

밤을 따기로 한 중앙농원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몰고 온 차들로 빽빽하다. 이 골짜기까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궁금해진다. “열에 여섯 가족은 매년 오는 분들이고 나머지 분들은 인터넷을 보고 새로 찾아오는 가족들입니다.” 한번 온 가족은 그 다음해 또 찾는다. 운악산 비가림 포도 맛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뭔가 정겨운 분위기가 있다.

지붕을 두른 평상에서농장식구들이 포도를 상자에 담고 있고, 엄마들은 그 옆에서 ‘공짜’ 포도를 먹으며 이런 저런 수다를 떤다. 저편 구석에는 한가족이 돗자리 깔고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고 아이들은 개울가에서 가재 잡는다고 난리다. 아빠와 조금 큰 아이들은 밤 따러 간다고 장대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데 모두 신이 난 표정들이다.  

농장에서는 오는 가족들에게 우선 한 바가지씩 포도를 담아 준다. 원래 포도농장인데 뒷산에 밤나무와 잣나무가 많아 포도를 사러온 가족들에게 그냥 따가라고 한다. 푸름이네도 장대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밤이 별로 좋지 않다지만 꼭 많이 따야 맛인가. 고향 뒷산에 올라 밤 따던 추억이 새록새록 솟는 것이 더 소중하다.

드디어 따낸 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드디어 따낸 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이영차!” 아빠가 소리를 내지르며 장대로 밤나무를 후려친다. 뒤로 물러서 있다가 후두둑 밤이 떨어지면 주울 준비를 하는 엄마와 푸름이, 초록이. 그런데 영 소식이 없다. 모두 고개를 꺾어 밤나무를 올려보니 밤이 그대로 있다. 머쓱해진 아빠가 “잘 안 떨어지네?”하며 다시 한번 기운차게 밤나무 가지를 친다.

이번에는 제대로 맞았는지 밤이 두두둑 떨어진다. “밤이다! 밤.” 초록이와 엄마는 밤송이를 줍는데 푸름이는 자기도 해보겠다고 한다. 장대를 건네 준 아빠는 발과 나무 막대기를 이용해 밤 까는 시점을 보인다. “이렇게 발로 누르고 막대기로 누르면…” 밤송이가 벌어지며 알밤이 툭 튀어나온다.

아빠가 가르쳐 준대로 밤을 까보는 아이의 모습.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아빠가 가르쳐 준대로 밤을 까보는 아이의 모습.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푸름이 아빠 말이 여린 밤은 그대로 까서 먹는 게 더 맛있단다. 푸름이는 연신 장대를 휘두르고 초록이는 떨어진 밤송이를 까느라 정신없다. 한가해진 엄마 아빠는 밤을 까먹으며 옛날에 밤따던 추억을 되새긴다. “좀 따셨어요?” 농장의 젊은 주인 신동용씨가 오면서 묻는데 손에 잣송이가 들려있다.

“어머? 잣 아냐?” 푸름이 엄마 눈이 반짝 빛난다. 가평은 예로부터 잣으로 유명한 곳이다. 농장 뒷산에도 잣나무가 수두룩하다. 특히 올해 잣이 좋단다.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한 10여 년 동안 잣이 나무에 매달린 송이채 썩어버리기 일쑤였는데 올해는 비가 많이 온 덕분에 기온이 낮아서인지 괜찮게 열렸다는 것이다.

잣송이를 털어 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잣송이를 털어 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저기 언덕에 많이 떨어져 있어요.” 비싼 잣을 밤 따듯이 따가겠다는 말은 차마 안나오는데 따가든지 주워가든지 마음대로 하란다. 인건비가 너무 비싸 따로 수확을 않는다는 것이다. 잣이 비싸다고 하지만 하루 일당만 10만원을 넘게 주어야 하기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단다.

올해는 잣이 잘 영글었다고 한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올해는 잣이 잘 영글었다고 한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또 잣을 따다 나무에서 떨어져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 죽는 사고도 많단다. 잣 따는 이들은 나무에 올라가 잣을 딴 후에 다른 나무로 옮겨 갈 때 내려 왔다 올라가기 귀찮아 타잔처럼 풀쩍 뛰는데 자칫 잘못해 떨어지면 크게 다친다는 것이다. 한동안은 원숭이를 훈련시켜 잣을 따는 방법이 유행했는데 잣을 따오면 바나나 하나 주는 식이었다. 근데 한 세 번하면 배가 불러 그 다음부터는 잣은 안 따고 손바닥에 묻은 잣송이의 끈적끈적한 진액을 주물럭거리며 논다는 것.

“헬리콥터로도 따던데요?” 푸름이가 TV에서 봤다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오죽하면 헬리콥터를 동원할 생각까지 했을까. 최근에는 중국산 잣이 많이 들어와 수지도 안 맞아 잣나무는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어쨌거나 잣을 따갈 수 있다는 데 이 기회를 놓칠 푸름이 아빠가 아니다. 가시 많은 두릅이 빽빽한 언덕을 이리저리 헤치며 올라갔다. 뒤로 초록이가 따라가며 아빠가 주은 잣송이를 봉지에 담는다.

잣나무는 소나무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른 점도 많다. 가지가 곧고 이파리가 가늘고 길다. 자세히 보면 이파리가 세 개씩인데 소나무는 두개 또는 다섯개이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잣나무는 소나무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른 점도 많다. 가지가 곧고 이파리가 가늘고 길다. 자세히 보면 이파리가 세 개씩인데 소나무는 두개 또는 다섯개이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아빠! 저기에, 저기도 있어요!” 몸이 빠른 아빠와 아들은 이내 언덕너머로 올라가버렸는데 잣송이를 발견할 때마다 신나서 지르는 환호성 덕분에 보지 않아도 어디쯤에 있는지 훤히 알 수 있다. “이야! 두릅도 많네, 봄에는 두릅 따러 와야겠다.” 엄마와 푸름이는 밤 따고 아빠와 초록이는 잣을 줍는데 가을 해가 짧다. 어느새 서편으로 해가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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