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청양] 누에가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고 실을 뽑아보기도 했던 이번 여행은 몇 해 전에 현석이에게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누에가 나오는 책을 보던 현석이에게 누에 몇 마리를 구해 준다고 했는데 누에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양잠 산업의 쇠퇴로 누에치는 집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여행사가 누에 체험을 위해 청양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현석이와의 해묵은 약속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양으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여행이어서, 우리는 청양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누에 체험이 예정된 청양의 산골마을 목면 본의리에 도착했을 때, 서울에서 출발한 여행객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마을 입구의 제방에서 서울에서 출발한 팀을 기다렸다. 한쪽으로는 아담한 제방, 다른 쪽으로 전형적인 시골의 개울이 있었다. 현석이는 방죽 안으로 작은 돌을 던졌다. 다솜이는 제방을 돌아보며 작은 풀꽃을 발견했다. “이 꽃 좀 봐, 정말 예뻐” 다솜이의 손짓을 따라가니 작은 여뀌 한 송이가 있다. “소꼽놀이했던 꽃이야, 예쁜 색 꽃이니까 그걸 반찬으로 썼었지” 엄마가 다솜이만큼 어렸었던 시절을 추억한다.
그 사이 먼 길을 달려온 차가 누에 농장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초등학생과 그 부모들이었다. 먼 길을 달려온 피로를 잊고 환한 웃음을 띠며 차에서 내린다. 농장주의 인사가 있은 뒤 누에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뽕나무 줄기 하나를 집어 올리자 수많은 누에들이 뽕잎을 먹고 있었다. 아기 손가락만 한 누에나방의 유충, 누에.
“실크 좋아하시죠? 그 실크는 바로 이 누에들이 만듭니다” 실과 옷감을 만든다는 설명에 현석이와 다솜이의 두 눈에 호기심이 담긴다. 여성용 원피스 한벌을 만드는데 2백마리의 누에고치가 필요하단다. “2백마리만 가져갈까?” 실크 원피스란 이야기에 엄마들이 다들 한마디씩 한다.
설명을 이어가던 아저씨가 누에 한 마리씩만 손에 올려놓고 만져보란다. “자, 어떤 친구가 제일 먼저 올려놓을까?” 손바닥에 올려놓으란 이야기에 아이들이 주춤거리며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선다. 그 중 씩씩한 아이도 있다. 용감하게 나와 누에 한 마리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다른 아이들의 눈길이 그 아이에게 집중된다. 그 아이는 누에를 살짝 쓰다듬었다. “정말 부드럽네” 누에를 만져본 어린이의 한마디에 주춤거리던 어린이들이 하나둘 앞으로 나선다.
모두들 손에 누에 한 마리씩을 올려놓고, 부드럽게 만져본다. 아이들이 손에 올리고 만져본 누에는 3령이었다. 령이라는 것은 탈피를 한다는 뜻이며, 알에서 막 깨어난 1령의 애벌레를 털누에라고 한다. 한번 탈피를 할 때마다 1령씩 더해 4번의 탈피를 거치면 5령이 되는데, 5령이 되어 7일이 지나면 몸의 색이 노란색으로 변하며 고치를 만들 준비가 끝난다. 누에가 드디어 입에서 실을 토하면서 고치를 짓기 시작한다.
약 60시간에 걸쳐 2.5g정도의 고치를 만드는데, 고치 한 개에서 나오는 실 길이가 1.5km다. 설명을 듣고, 누에를 관찰한 뒤 고치에서 실을 뽑는 체험을 하였다. 가마솥에 고치를 넣고 불을 지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기다란 막대기를 솥에 넣고 휘휘 저었다. 그 끝에 고치에서 풀린 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실은 중간에 끊어진 곳이 없이 한 가닥으로 이어져 있다고 했다.
현석이와 다솜이도 고치 몇 개에서 실을 뽑았다. 그 사이 한쪽에서는 물레를 돌리며 고치에서 나온 실들을 모으고 있었다. 고치에서 나온 실 5`~7 가닥을 모아 제대로 된 한 가닥의 실이 된단다. 고치에서 실을 뽑고, 물레에 감는 체험하고 난 뒤, 누에를 가져가서 키워 볼 사람들에게는 누에를 판매하였다. 한 마리에 1백원이었다.
농장으로 가져온 가격이 1백30원쯤 된다는데 그냥 줄 수는 없지만 야박하게 다 받기도 어렵다며 그냥 1백원씩만 내란다. 아직 훈훈한 시골인심이다.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 10마리씩 구입을 했다. 그 누에를 가져가 키우면 한번의 탈피과정과 고치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단다. 우리도 20마리를 샀다. 우리가족이 10마리는 키우고, 가까이 사는 소나무 가족에게도 10마리를 줄 생각이었다.
누에를 구입한 사람들은 누에에게 줄 뽕나무 잎을 따려고 뽕나무밭으로 갔다. 우리도 비닐봉지 가득 뽕잎을 따서 담았다. 누에 농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소나무 가족의 집에 들려 누에를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선 집을 마련해 줘야 했다. 네모난 종이상자에 뽕잎을 깔고 하나씩 꺼내 놓았다.
모두 38마리나 된다. 10마리만 넣어 달라고 했는데. 너무 많이 넣어주었나 보다. 마리 수가 많아 좋기도 했지만 뽕잎이 부족할까봐 걱정이었다. 집에서 누에를 키우기 시작한지 닷새 후 탈피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식성 좋게 뽕잎을 먹었다. 그렇게 며칠, 어른 손가락만 한 크기까지 크더니 고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치를 지을 집으로는 계란 넣는 종이포장을 준비해 두었다. 누에들은 정말 예쁘게 고치를 지었다. 아이들은 입에서 실을 토하며 고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며 신기해한다. 꿈틀거리며 무려 1.5km의 실로 집을 짓는데, 그 모습은 어른이 보아도 신기하다. 우리가 가져온 38마리 누에는 모두 고치를 지었다.
앞으로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되고, 나방이 되어 고치 끝을 뚫고 나오게 될 것이다. 현석이와 다솜이는 고치를 뚫고 나오는 누에나방을 보며, 그리고 그 나방들이 알을 낳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누에농장에서 누에를 관찰하고 직접 키워본 경험은 현석이와 다솜이가 자연을 좀 더 가까이에서 사랑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