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화순] 명절이나 휴가 때 나는 고향에 가면 앞산 백아산(해발 810m) 골짜기로 나가본다. 돌멩이, 바위, 나무, 도랑, 논밭이 모두 추억이 묻지 않은 곳 없다. 마음은 들뜨고 이내 설렌다. 올해 가을 들판에서 만난 곤충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여긴 버찌 따먹었던 자리고, 저긴 산딸기가 있었지. 그래! 또 저기는 꼴 베러 자주 갔던 곳이야….’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고구마 캐듯 한 올 한 올 아련한 기억을 건져 올린다. 동심으로 돌아가 더 많은 동무를 만나 대화를 한다. 땅을 헤집어 보면 굼벵이, 지렁이가 있다.
형님 일을 돕다 잠깐 쉬는 동안 베 짜는 솜씨가 직녀 못지않은 거미를 보고, 나비는 호랑나비부터 노랑, 하양, 검정 녀석들이 훨훨 노닥거린 걸 본다. 며칠 울려고 7년을 애벌레로 살았던 매미는 확성기를 단 걸까? 까만 듯 푸르댕댕한 두엄 냄새나는 물잠자리 따라 도랑에 빠져도 대수냐!
곤충채집하다가 궁금한 입을 놀릴 수 없어 방아깨비, 여치, 풀무치, 메뚜기를 볶아 얼마나 먹어댔던가. 두 번이나 그 놈들한테 쏘여 죽을 고비를 넘겼던 벌도 다양하다. 일벌, 호박벌, 똥벌에 대추벌, 땅벌, 왕벌 등도 아직 남아 있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눈 휘둥그레 뜨고 있는 잠자리, 순수한 색감의 청개구리도 즐겁게 맞이한다.
종족 번식 행위를 하고는 제 몸의 절반도 안 되는 수컷을 낼름 잡아먹고 마는 사마귀 보다 산란(産卵) 하기 위해 능구렁이에 잡혀 먹히는 떡두꺼비의 고귀한 정신에 아연 숙연해지는 건 왜일까? 소나기 오던 날 집으로 돌아오며 두꺼비가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양을 훔쳐봤다.
행여 도망갈까 조심스레 바지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른다. ‘찰칵’ 소리와 함께 요 귀여운 뭇 생명이 내 눈과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방향을 돌려가며 담기에 여념이 없다. 오랜만에 만난 귀염둥이들은 태연하게 제 할 일을 한다.
어떤 놈은 끊임없이 줄을 뽑아낸다. 한없이 울어대는가 하면 날개를 쉼 없이 펄럭인다. 풀을 뜯다가 적을 발견하고는 옆 걸음질 치는 놈도 있었다. 단 것을 “쏙쏙” “쪽쪽” 빨아대고 눈을 휘둥그레 360도 돌리기도 한다.
풀뿌리를 따라 올라와 해가 부끄럽다고 얼른 숨는다. 언제 다 자라 땅 위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을지 궁금하게 언제나 그 모양 그 크기의 풀색을 띤 것도 만난다. 풀물 잔뜩 들여놓고 풀과 구분이 안 되도록 위장하는 솜씨마저 빼어나다.
이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다보니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 곤충채집을 하러 나온 듯 하다. 보이는 족족 집으로 가져와 질식시켜서 죽기를 기다렸다가 오래된 냄비에 볶아서 말린다. 다 쓴 공책 사이에 넣어두거나 내장이 잘 마르지 않은 큰 것은 알코올에 넣어 보관했던 기억 새롭다.
후미진 추억의 한 귀퉁이에 처박아 뒀던 곤충과 벌레는 오랜 동안 고향에서 같이 놀았던 동무만큼 반갑다. 동무들은 다들 제 입에 풀칠하며 사느라 바쁘다. 이젠 명절 때도 만나지 못하는 고향 친구들이 더 많은 까닭에 겨울 빼고는 풀벌레와 친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이 친구들이 있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같이 장난치고 싶어진다.
이제 가을이다. 풀벌레들은 가을 낙엽 빛깔로 새로 옷을 갈아입고 후드득 튀며 바삐 움직이리라. 고추잠자리 떼 지어 푸른 하늘을 날면 들녘 농부의 마음은 더 바빠진다. 귀뚜라미 “솔솔솔” 쓸쓸히 울어예는 싸늘한 밤은 깊어만 간다.
어디 이뿐이랴! 무수히 기어가는 개미, 진딧물, 사슴벌레, 땅강아지, 딱정벌레, 장수하늘소, 무당벌레…. 그래서 고향 가는 길은 너무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