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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곤충이야기] 고향 뜰에서 마주한, 추억 속의 곤충박물관!
[곤충이야기] 고향 뜰에서 마주한, 추억 속의 곤충박물관!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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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능소화와 호랑나비.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능소화와 호랑나비.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여행스케치=화순] 명절이나 휴가 때 나는 고향에 가면 앞산 백아산(해발 810m) 골짜기로 나가본다. 돌멩이, 바위, 나무, 도랑, 논밭이 모두 추억이 묻지 않은 곳 없다. 마음은 들뜨고 이내 설렌다. 올해 가을 들판에서 만난 곤충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여긴 버찌 따먹었던 자리고, 저긴 산딸기가 있었지. 그래! 또 저기는 꼴 베러 자주 갔던 곳이야….’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고구마 캐듯 한 올 한 올 아련한 기억을 건져 올린다. 동심으로 돌아가 더 많은 동무를 만나 대화를 한다. 땅을 헤집어 보면 굼벵이, 지렁이가 있다.

형님 일을 돕다 잠깐 쉬는 동안 베 짜는 솜씨가 직녀 못지않은 거미를 보고, 나비는 호랑나비부터 노랑, 하양, 검정 녀석들이 훨훨 노닥거린 걸 본다. 며칠 울려고 7년을 애벌레로 살았던 매미는 확성기를 단 걸까? 까만 듯 푸르댕댕한 두엄 냄새나는 물잠자리 따라 도랑에 빠져도 대수냐!

해바라기와 일벌.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해바라기와 일벌.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곤충채집하다가 궁금한 입을 놀릴 수 없어 방아깨비, 여치, 풀무치, 메뚜기를 볶아 얼마나 먹어댔던가. 두 번이나 그 놈들한테 쏘여 죽을 고비를 넘겼던 벌도 다양하다. 일벌, 호박벌, 똥벌에 대추벌, 땅벌, 왕벌 등도 아직 남아 있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눈 휘둥그레 뜨고 있는 잠자리, 순수한 색감의 청개구리도 즐겁게 맞이한다.

두꺼비.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두꺼비.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종족 번식 행위를 하고는 제 몸의 절반도 안 되는 수컷을 낼름 잡아먹고 마는 사마귀 보다 산란(産卵) 하기 위해 능구렁이에 잡혀 먹히는 떡두꺼비의 고귀한 정신에 아연 숙연해지는 건 왜일까? 소나기 오던 날 집으로 돌아오며 두꺼비가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양을 훔쳐봤다.  

행여 도망갈까 조심스레 바지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른다. ‘찰칵’ 소리와 함께 요 귀여운 뭇 생명이 내 눈과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방향을 돌려가며 담기에 여념이 없다. 오랜만에 만난 귀염둥이들은 태연하게 제 할 일을 한다.

어떤 놈은 끊임없이 줄을 뽑아낸다. 한없이 울어대는가 하면 날개를 쉼 없이 펄럭인다. 풀을 뜯다가 적을 발견하고는 옆 걸음질 치는 놈도 있었다. 단 것을 “쏙쏙” “쪽쪽” 빨아대고 눈을 휘둥그레 360도 돌리기도 한다.

풀뿌리를 따라 올라와 해가 부끄럽다고 얼른 숨는다. 언제 다 자라 땅 위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을지 궁금하게 언제나 그 모양 그 크기의 풀색을 띤 것도 만난다. 풀물 잔뜩 들여놓고 풀과 구분이 안 되도록 위장하는 솜씨마저 빼어나다.    

사마귀.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사마귀.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이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다보니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 곤충채집을 하러 나온 듯 하다. 보이는 족족 집으로 가져와 질식시켜서 죽기를 기다렸다가 오래된 냄비에 볶아서 말린다. 다 쓴 공책 사이에 넣어두거나 내장이 잘 마르지 않은 큰 것은 알코올에 넣어 보관했던 기억 새롭다.

후미진 추억의 한 귀퉁이에 처박아 뒀던 곤충과 벌레는 오랜 동안 고향에서 같이 놀았던 동무만큼 반갑다. 동무들은 다들 제 입에 풀칠하며 사느라 바쁘다. 이젠 명절 때도 만나지 못하는 고향 친구들이 더 많은 까닭에 겨울 빼고는 풀벌레와 친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이 친구들이 있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같이 장난치고 싶어진다.    

수컷을 등에 업은 방아깨비.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수컷을 등에 업은 방아깨비. 2003년 11월. 사진 / 김규환 작가

이제 가을이다. 풀벌레들은 가을 낙엽 빛깔로 새로 옷을 갈아입고 후드득 튀며 바삐 움직이리라. 고추잠자리 떼 지어 푸른 하늘을 날면 들녘 농부의 마음은 더 바빠진다. 귀뚜라미 “솔솔솔” 쓸쓸히 울어예는 싸늘한 밤은 깊어만 간다.  

어디 이뿐이랴! 무수히 기어가는 개미, 진딧물, 사슴벌레, 땅강아지, 딱정벌레, 장수하늘소, 무당벌레…. 그래서 고향 가는 길은 너무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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