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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외여행] 자신을 이겨낸 소년 배낭여행자의 아프리카 여행기
[해외여행] 자신을 이겨낸 소년 배낭여행자의 아프리카 여행기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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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우후루가의 풍경.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우후루가의 풍경.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여행스케치=아프리카] 어느 날 문득,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낯선 길에 나서기’를 자주 해왔던 나는, 이번에는 초등학교 4학년인 조카 주혁이와 함께 아프리카로 길을 잡았다.                                 

“아프리카에는 흑인들만 있잖아.” 함께 갈 의사를 물었을 때 마치 딴 세상에 가는 것처럼 멀고 험할 것으로 생각하는 주위사람들의 반응과는 달리 주혁이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아시아를 벗어난 해외`라고 하면 어쩌면 백인들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혁이는 긴장과 피로로 인해 이틀에 걸쳐 자주 코피를 흘렸다. 여행 이틀이 지나서야 코피를 흘리지 않았다. 여행의 긴장이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여행기간 중 킬리만자로 등반을 끝내고 하산하면서 딱 한차례 코피를 더 흘린 것 외에는 그는 누구보다도 빨리 여행에 적응해나갔다.

하루의 빵을 위해 거리 행상으로 나선 소년들.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하루의 빵을 위해 거리 행상으로 나선 소년들.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처음에 우연하게 만난 남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로부터 “저기가 흑인촌이예요. 저곳에는 온갖 범죄들이 일어나지요. 경찰들도 들어가기 꺼려해요. 흑인들은 얼마나 냄새가 독한지… 같이 있지를 못해요.”라는 잇단 흑인들을 범죄자와 동일시하는 말에 나는 비위가 상했다. 난 오히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들로부터 지독하게 역겨운 냄새를 맡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인종민족차별이 가장 심한 국민들이 한국 사람이라는 나의 지론에 여지없는 증거를 준 셈이다. 그런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정보도 어떠한 교육적 가치도 발견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흑인들에 대한 편견이 있는 초등학생에게 편견을 강화시켜주는 그런 미친 짓거리를 하러 여기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잠비아 카로피에 있는 야채 시장.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잠비아 카로피에 있는 야채 시장.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택시도 흑인운전사들이 대부분이고 위험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줄 수 있는 흑인 거주지역 소웨토`로 향하였다. 소웨토 투어로부터의 시작은 주혁이에게 아프리카 여행의 한 의미를 알려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소웨토에 있는 만델라 생가.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소웨토에 있는 만델라 생가.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소웨토와 아파라세이트(인종차별정책)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인종차별에 따른 억압의 역사를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박물관에서 흑인들의 항거 역사를 담은 비디오를 보고 눈을 붉히고 있었다. 소웨토 투어로부터 돌아온 날부터 그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흑인들과 거리낌없이 장난치고 껴안고 지내기 시작했다.  

“하루 쉬고, 하루 버스 타고… 와! 힘들다.” 버스로 국경을 넘어야 했고, 버스도 여행객을 위한 버스가 아닌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버스를 탔다. 국경을 넘는 버스에는 짐과 사람으로 가득 차 다리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8-12시간을 가야했다. 그런 경험을 계속 해야 했던 주혁이는 농담처럼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그는 비싼 버스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추위 때문에 중무장을 하고 자는 소년 배낭여행객.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추위 때문에 중무장을 하고 자는 소년 배낭여행객.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허기사 포로 수용소와 다름없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기도 했었다. 양초로 불을 밝히었고 더러운 화장실, 구역질 나는 냄새가 가득한 숙소를 주혁이가 주저없이 선택하는 그는 이미 소년 배낭여행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킬리만자로에 등반을 하게 되었을 때 주혁이는 새로운 긴장에 있었다. 고산병이었다. “이모. 걱정되는 것이 있는 데 고산병 걸리면 어떻게 하지?” 내심 걱정되는가보다. “고산병 걸리면 너는 헛에 머물러 있고 이모 혼자 올라가야지.” “그런데 고산병은 죽을 수도 있다는데? 이모는 겁나지 않아? 나 죽으면 억울해, 이모는 살만큼 살았지만 난 결혼도 안했는데…” 기가 막힌 말을 듣고 파안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주혁이에게 섭섭하다고 장난스럽게 말을 하였더니 주혁이는 이내 자신의 말에 대한 해명을 늘어놓는다. “걱정마. 주혁아! 너는 해낼 수 있을꺼야” 이렇게 시작된 주혁이의 킬리만자로의 등반은 이번 아프리카 여행의 정수였다.  

호롬보헛으로 가는 길. 3시간 남겨놓고 부축을 받았다.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호롬보헛으로 가는 길. 3시간 남겨놓고 부축을 받았다.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어린 아시아 소년의 등반은 등반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어른들도 고산병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킬리만자로 등반을 주혁이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의지였다. 정복에 대한 의지가 아닌 고통을 이기는 인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주혁이의 1차 고비는 만다라헛(2,700m)에서 호롬보헛(3,720m)으로 이어지는 6시간의 행로였다.

우후루가 등반객들.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우후루가 등반객들.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흙범벅이 된 주혁이의 얼굴에는 어느새 눈물자국으로 얼룩졌다. “이 친구는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전에 또래 소년도 만다라헛까지 밖에 못 올라갔거든요.” 메인가이드 죤이 한 이야기를 주혁이는 알아들었다.  

“마지막 한 시간은 쉬지 않고 올라가자. 만약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킬리만자로의 등반은 포기하자” 라고 제의를 하였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배경으로 찰칵.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배경으로 찰칵.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천천히 (pole pole 뽈래뽈래)” 그의 걸음이 조금 더 빨라진다 싶으면 나는 뒤에서 “천천히”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나머지 한 시간. 그는 마침내 쉬지 않고 호롬보 헛까지 올랐다. 주혁이는 이것을 기점으로 사막의 외길을 걷는 키보헛(4703m)까지 올랐다. 키보헛에서 고산병으로 우후루 피크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 주혁이는 자신을 이겨내고 올랐다. 주혁이를 만나는 등산객들은 한결같이 “great boy”라고 연발했다.

해발 4,702m 키보헛.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해발 4,702m 키보헛. 2003년 11월. 사진 / 변현단

그는 나의 가이드를 받으면서 한 아프리카 배낭여행이었지만 언제나 그의 결정이 함께 있었다. 주혁이는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냈다. 행선지 결정과 교통수단, 숙소, 먹거리 등 그의 의견을 들었고, 때로는 의견이 상충되었을 때 서로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역사와 가난을 보았다.

걸식하는 아프리카 어린이들, 하루 빵을 위해 거리 행상인으로 나선 또래 소년들. 그들은 배낭을 맨 또래 아시아 소년 여행자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주혁이는 그들에게 미안스럽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교육. 그것은 종이교육과 학교교육에서 배울 수 없는 짧지만 실제 체험이었고 , 놀이였다.  

그나마 살만한 가정에서 태어난 주혁이기에 가능했던 이 소중한 체험이 그의 세계관과 인성형성에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를 보낸 뒤 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했다던 주혁이 엄마인 여동생이나 이모인 나의 마음은 그것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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