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1박2일 주말가족여행] 남한강 따라 떠나는 역사여행, 단양
[1박2일 주말가족여행] 남한강 따라 떠나는 역사여행, 단양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2.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온달산성의 모습.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온달산성의 모습.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단양] 아이 손잡고 단양으로 역사여행을 떠나자. 백년 전 비숍여사가 띄배를 타고 남한강 기행을 했듯이 우리도 단양 남한강 상류를 따라 백년 전보다 훨씬 옛날 지어진 고구려산성과 신라산성도 둘러보고 평강처녀와 온달청년이 사랑했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역사기행① 도담삼봉
새벽, 시린 손 끝 같은 물안개가 남한강을 따라 도담삼봉에 퍼진다. 멀리 노랫가락 소리가 흥얼흥얼 들리더니 노 젓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막걸리를 주고받듯 뱃사공의 노랫가락이 주거니 받거니 “올라왔소 소금배가 도담삼봉 양반들아 금년에도 철석철석 소금배가 당도했네 (중략) 도담삼봉 주모들아 술걸러서 가져오게 목이말라 못가겠네 수리술렁 내려올때 다시한번 놀다가세” 띄뱃(소금배)노래 들려온다.

도담삼봉은 11월 14, 15일 경에 물안개가 가장 예쁘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도담삼봉은 11월 14, 15일 경에 물안개가 가장 예쁘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1백년 전 도담삼봉은 큰 소금장이 서는 매포였다. 띄뱃(비숍, Bishop, Isabella Bird가 쓴 한국기행문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볼 수 있음)에 소금을 가득 싣고 오면 제천, 영주에서 와서 소금을 사갔단다. 그 옛날 저자거리의 소란함은 없어지고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뽕짝’이 강물을 따라 흐른다.

도담삼봉은 강 가운데 떠 있는 봉우리 3개를 말한다. 가운데 봉우리는 남편봉, 교태를 부리고 있는 봉우리가 첩봉, 남편봉을 등지고 있는 봉우리가 처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봉 뒤로 해가 떠오른다. 춥지만 도담삼봉에서 보는 일출은 바다와 또 다른 은근한 매력이 있다. 무지 추운날 꽁꽁 언 얼음 위에서 뜨는 해를 보는 것도 추억이 아닐런지.

Tip.
도담삼봉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호를 삼봉이라 칭할 만큼 도담삼봉을 사랑했다고 한다. 도담삼봉 앞에는 정도전 동상이 있으며 그 옆으로 정도전이 지은 시가 적혀있는 비가 있다. 아이에게 정도전과 삼봉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좋겠다.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삼봉산이 홍수에 떠내려와서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강원도 정선에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느 해 가뭄으로 세금을 내지 못하게 됐다. 온 고을이 고심하고 있는데 7세 밖에 되지 않은 정도전이 정선군 관리에게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고, 장마 때면 바위 때문에 범람해서 수해가 잦은바 소용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가지고 가라”하여 그 후로는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

비숍여사도 보았다는 금굴 유적지.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비숍여사도 보았다는 금굴 유적지.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역사기행② 금굴 유적지
도담삼봉에서 단양읍으로 가는 다리 위에서 눈여겨보면 볼 수 있다. 강 건너에 있는 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이다. 길이가 83m 정도.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선사시대 모든 시기의 층위가 쌓여있단다. 사슴뼈, 주먹 토기, 찍개, 사자 뼈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으며 백년 전 비숍이 보았을 때는 돌고드름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없다.

온달산성에서 바라본 구봉팔문.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온달산성에서 바라본 구봉팔문.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역사기행③ 온달산성, 온달동굴, 온달전시관
온달관광지에서 온달산성, 온달동굴, 온달전시관을 다 볼 수 있다. 온달산성은 30분 정도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다람쥐, 고라니가 뛰어나와서 놀라게 하는 일도 종종 있지만 가꾸지 않은 자연스런 길이 산책삼아 걷기에 좋다. 온달산성은 길이 6백82m, 면적 7천9백72평의 넓은 성이며 경관을 훼손하지 않아서 자연스런 멋이 그대로 있다.

특히 산성을 걷다보면 입이 저절로 딱 벌어지는 장관이 펼쳐지는데 구봉팔문이다. 구봉팔문은 9개 봉우리에 8개 골짜기를 문에 비유해서 이름을 붙었다. 아곡문봉, 밤실문봉, 여의생문봉 등 한 개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다. 봉우리 뒤 부채꼴 모양의 산이 표대봉(1,066m)이다.

온달산성 내에 넓은 분지에는 고라니를 비롯한 산짐승들이 많이 산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온달산성 내에 넓은 분지에는 고라니를 비롯한 산짐승들이 많이 산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고구려는 죽령을 넘지 않고는 남하 정책을 이룰 수 없었다. 그만큼 단양은 고구려나 신라에게 가장 중요한 땅이다. 당연히 삼국시대에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지역이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온달장군이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쌓은 성이다. 잘 알고 있는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의 그 온달이다.

온달청년과 평강공주 이야기 전시관.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재미있어 한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온달청년과 평강공주 이야기 전시관.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재미있어 한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온달동굴 올라가는 길에 철계단이 놓여있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온달동굴 올라가는 길에 철계단이 놓여있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온달동굴은 온달산성 아래에 있다. 동국여지승람 <남굴>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에 발견된 동굴이다. 4억5천만년 전에 생성된 석회암 동굴이며 종유석과 석순 등이 많이 있다. 등을 구부리고 걸어야 하는 터널도 있으며 어디선가 박쥐가 휙 날아오를 것만 같은 신비하고 웅장한 동굴이다. 동굴 길이가 8백m, 수심 1m의 냇물이 흐르고 있어 동굴을 구경하는 동안 물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계절 내내 섭씨 14~16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겨울에 구경하기에 좋다. 전시관은 고구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삶을 이야기로 엮은 온달관과 고구려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생활관, 인물관, 고분관 등이 있다. 특히 문화유산해설사가 있어서 고구려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골짜기 위에서 내려다 본 구인사.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골짜기 위에서 내려다 본 구인사.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역사기행④ 구인사
구인사는 60여 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천태종 총본산이다. 최대 사찰로 1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5층 법당과 50여 동의 거대한 건물이 골짜기 사이에 드라마틱하게 세워져 있는 현대적 사찰이다. 구인사 맨 꼭대기에 금으로 지어진 조사전은 대목수 신흥수 씨가 지어서 유명하다.

천태종은 대중불교, 생활불교, 호국불교로 구인사 스님은 ‘주경야선’을 실천하여 낮에는 농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선을 닦는다. 특히 구인사는 금계포란형으로 신도들이 닭고기와 계란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구담봉 가는 길에서 본 충주호.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구담봉 가는 길에서 본 충주호.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역사기행⑤ 구담봉유람선 타기
구담봉과 옥순봉은 유람선을 타야 볼 수 있는데, 볼이 차갑지만 유람선이 천천히 돌면서 그야말로 ‘유람’을 시켜주기 때문에 볼만하다. 특히 거대한 산들이 달려오다 남한강에 살짝 발을 담근 형상이 장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엽다. 충주호가 생기기 전에는 거북이를 닮은 봉우리는 있었지만 이름에 있는 담자가 붙을 만한 물은 많지 않아서 구담봉이란 이름과 지형이 다르다고 말이 많았었다.

그러다 충주호가 생기면서 진짜로 거북이가 물을 만나게 되어 이름과 지형이 딱 들어맞게 되었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앞을 내다볼줄 아는 선인의 지혜가 놀랍다.  

구담봉 유람선과 선착장의 모습.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구담봉 유람선과 선착장의 모습.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유람선을 타고 가면 거북모양의 바위가 두 군데가 있는데 둘 중 하나만 찾아도 장수한다고 한다. 옥순봉은 청풍군에 속해 있었는데 조선 명종초 관기 두향이가 단양 군수로 부임하는 퇴계 이황 선생에게 단양군으로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나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지 않아 퇴계선생이 석벽에 <단구동문>이라는 글을 암각에 새겼다.

물이 가득 차서 볼 수 없었지만 물이 빠질 때 보인다고 한다. 기녀 두향의 이야기를 선장님의 깔끔한 목소리로 듣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높진 않지만 사방이 다 보이는 적성산성.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높진 않지만 사방이 다 보이는 적성산성.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역사기행⑥ 신라적성비, 적성산성
단양구경을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단양휴게소뒤 편에 있는 신라적성비를 볼 수 있다. 높이 93cm로 자연석 화강암 편편한 면에 음각기법으로 얕게 글을 새겨 넣었다. 본래 고구려 땅인 적성(단양의 옛지명)의 지명이 적혀있다. 신라 진흥왕이 내린 교시인데 신라의 율령제도에 관해 기록했으며 호적이 구분되어 있고 대인, 소인, 남자, 여자, 노인 등이 구분되어 있다.

진흥왕 때 세운 신라적성비.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진흥왕 때 세운 신라적성비.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현 주거민에게는 적성의 지역인으로서 신라를 돕고 충성한 적성인 야니차의 공훈을 표창하고, 앞으로 야니차와 같이 신라에 충성을 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표창을 하겠다는 왕의 약속과 점령한 땅에 대한 민심을 안정시키는 내용이 적혀있다.

적성비 바로 위에 있는 적성산성은 신라 진흥왕 때(545-551년경) 축조된 성으로 추정한다. 해발 3백23m의 높지 않은 산성이지만 단양천, 주령천, 한강물 등 사방을 골고루 정찰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특히 적성산성 주위로 온달산성, 가은암성, 독락산성, 죽령산성 등 많은 산성이 있다. 신라의 기지로 사용했을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성내에는 삼국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있어 유심히 보면 찾을 수 있다.
 

<여행스케치>에서 추천하는 1박2일 코스
이 여행은 토요일 일찍 시작해야 합니다. 적어도 단양에 오전 중에 도착해야죠. 첫째 날은 조금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요즘 해가 짧잖아요. 여기서 추천하는 코스는 여행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거니까, 욕심 부리지 말고 가족과 함께 느긋하고 편안한 여행을 하세요.

첫째날 : 도담상봉(유람선 40분정도, 그러나 겨울에는 물이 얼어 유람선을 운행하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에서 30분 정도 구경하고 단양읍쪽으로 가세요. 가는 길 7백m 쯤 오른쪽 강 건너 금골유적지가 있으니 아이에게 들려주시기만 하세요.(강을 건널 수는 없잖아요.)

단양에서 이른 점심을 먹거나 아님 구인사 앞에서 늦은 점심을 드셔야 하는데 아이들 배 시계에 맡기시고 온달관으로 이동하세요. 가는 길이 50분 정도 소요됩니다. 온달산성 1시간 30분, 온달동굴 30분, 전시관에서 문화유산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30분. 총 2시간 30분 정도 걸리겠네요. 구인사 가는 길 5분거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구경하는데 1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하루 일정이 끝나지요.

둘째날 : 제가 소개한 펜션을 제외하고 구담봉으로 가는 길 약 40분 정도 소요. 구담봉유람선 1시간 정도.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이 막히니 서둘러 가야지요. 가는 길에 단양휴게소에 들러 신라적성비, 적성산성을 돌아보세요.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