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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박타기 체험여행] "이 박씨는 어떤 제비가 물고 왔어요?" 사릉수목원 박타기
[박타기 체험여행] "이 박씨는 어떤 제비가 물고 왔어요?" 사릉수목원 박타기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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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수박같이 둥근 이 열매가 박이다. 둥근 것은 박이고, 목이 긴 것은 조롱박이다. 2003년 12월. 김선호 객원기자
수박같이 둥근 이 열매가 박이다. 둥근 것은 박이고, 목이 긴 것은 조롱박이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양주] ‘박타기 체험’을 한다고 하니 아들 녀석이 반깁니다. 요즘 국어시간에 ‘흥부와 놀부’이야기를 공부하고 있는데 마침 그 고전극으로 연극을 연습 중이었던 모양입니다. 자기는 제비를 맡았다고 자랑입니다.

달빛을 받고 하얗게 피어나던 박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 열매를 보여주는 일이 세월의 간격을 조금 좁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내심 기대를 하며 길을 나섰습니다. 묘목사이를 지나니 수목원 측에서 벌써부터 박을 타고 있는 가족들이 보입니다.

수목원 여기저기에 한참 익어가고 있는 조롱박이며 둥근 박이 탐스러웠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수세미가 주렁주렁 떨어질듯 매달려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지요. 수세미가 어찌나 크게 익었는지 조금 과장하면 아이들 키랑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한 가족에 한 개씩 박이 제공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먼저 해보겠다며 작은 톱을 들어보였지만 생각만큼 박이 쉽게 갈라지지 않자 아빠에게 톱자루를 양보했지요. 작은 조롱박이었습니다. 행사장 중앙에는 흥부와 놀부의 복장과 톱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체험장 가운데에 흥부, 놀부 복장과 톱이 놓여 있다. 슬근슬근 톱질을 하는 체험객.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체험장 가운데에 흥부, 놀부 복장과 톱이 놓여 있다. 슬근슬근 톱질을 하는 체험객.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아이들은 흥부와 놀부가 되어 “이 박을 타면 무엇이 나올까”하며 톱질을 흉내 내어 보았습니다. 이야기 속의 흥부와 놀부보다 훨씬 다정한 모습으로 박을 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진촬영용지만….

이젠 우리가족이 배당받은 박을 타야 했지요. 힘센 아빠의 톱질로 반으로 짝 갈라진 조롱박. 산사에 들러 약수물을 마실 때 쓰던 그 바가지가 탄생하기 바로 직전입니다. 톱으로 썬 박은 그 속의 하얀 알맹이를 긁어내야 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수저로 박속을 박박 긁어냈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박타기.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생각보다 쉽지 않은 박타기.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어릴 때 그 박속을 가지고 반찬을 해서 먹던 생각이 나, 마침 긁어낸 박속을 모으고 계신 아주머니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걸 어디에 쓰나요?” 아주머니의 대답은 의외로 너무 간단했습니다. “요즈음 이걸 어디다 쓰겠어요? 그냥 버려요” 그 말에 아이들이 더 서운했는지 박 속을 뒤져 박씨를 몇 개 골라내더군요.

박씨를 집에 가서 심어 보겠다구요. 박속을 다 긁어내니 아이들 손에 딱 맞은 앙증맞은 조롱바가지가 두개 만들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난리였지요. 집에 가면 자기가 만든 바가지로 물을 떠서 먹겠다나요? 그런 즐거운 상상으로 자신이 만든 바가지를 소중히 챙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러웠습니다.

탈곡기가 탙탈거리며 수수알을 털어내고 있다. 2003년 12월. 김선호 객원기자
탈곡기가 탙탈거리며 수수알을 털어내고 있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바가지를 만드는 멍석에서 일어나자 탈곡기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옛날 농사꾼 복장을 한 할아버지 두 분이 아이들에게 탈곡기 돌리는 요령을 가르쳐 주고 계셨습니다. 수목원에서 수확한 수수를 한 묶음 가져오자 수수를 한 움큼씩 쥔 아이들이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탈곡기에 수수를 갖다댔습니다.

아이들은 탈곡기가 농작물의 알곡을 털어낼 때 쓰는 기계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발판을 밟으면 그 힘으로 탈곡기가 돌아가면서 낟알을 털어내는 탈곡기가 꽤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수수가 탈곡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했던 녀석들이 그만하고 가자는 엄마, 아빠의 재촉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탈곡기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맷돌에 수수를 넣고 가루를 만드는 체험.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맷돌에 수수를 넣고 가루를 만드는 체험.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이젠 탈곡한 수수를 가지고 맷돌을 돌리는 체험을 할 차례입니다. 도우미 아주머니의 설명을 듣고 아이들도 맷돌을 돌려 보려 애썼지만, 그 무거운 돌덩이는 쉽게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맷돌을 돌려 수수가 맷돌에 갈려 가루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너무 빨리 끝나 아쉬움이 컸습니다. 맷돌은 한정이 되어 있고 아이들은 줄을 섰으니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을 따라 서너 번 돌리고는 금방 내려와야 했거든요.

맷돌이 놓인 오두막 옆에서 고구마 익는 냄새가 고소하게 올라왔습니다. 참가하는 가족들에게 세 개씩 배당된 고구마가 이런 저런 체험을 하는 동안 알맞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쇠로 커다란 사각틀을 만들고 굵은 모래를 채운 후 장작불을 지펴 고구마를 굽고 있었거든요.

모래 안에 은박지를 싼 고구마를 넣고 장작불을 피워서 굽는다. 노랗게 익은 고구마가 체험객들의 시선을 끈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모래 안에 은박지를 싼 고구마를 넣고 장작불을 피워서 굽는다. 노랗게 익은 고구마가 체험객들의 시선을 끈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장작불 타는 냄새와 고구마 익는 냄새가 수목원에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먹는 따듯한 시간. 가을햇살은 나무아래로, 풀밭으로, 그리고 하얀 목화솜으로, 골고루 내리고 있었습니다. 풍요의 계절, 결실의 계절을 맘껏 느낀 하루였습니다.

봄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여름동안 부지런히 열매를 익힌 과실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1월 중순경에 바로 이곳에서 '산수유 열매따기 행사'가 있을 거라더군요. 그때쯤 가족끼리 다시 한번 와도 좋을 듯 싶었습니다.

긴 열매는 수세미다. 수세미도 박과 같은 덩굴과 식물.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긴 열매는 수세미다. 수세미도 박과 같은 덩굴과 식물. 2003년 1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체험학습 일정을 마치고 다시 초록융단이 깔린 길을 돌아서 오는데 입구에서 모자 쓰신 분이 체험학습에 참가한 기념이라며 노란국화가 활짝 핀 화분을 건네주셨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국화꽃화분을 받고 어리둥절했다가 '화분까지 주시니 참 고마운 분이네'하는 아이들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네요.

Tip.
박은 박 과에 속하는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랍니다. 4월 중순에서 5월 하순 중에 파종을 한답니다. 7월~9월에 걸쳐 하얀 꽃이 피고, 9월~10월 중에 열매를 맺습니다. 박꽃의 꽃잎은 해가 지면 활짝 피었다가 해가 뜨면 몸을 오므립니다. 그래서, 예전 우리어머니들께서는 박꽃이 필 때 저녁을 지었다고 하네요. (지금으로 보면 5시~6시 정도 되는데, 여름에 피는 박꽃이 시계구실도 했나 봅니다)

박이 익으면 박속을 긁어내서 박나물을 해 먹기도 하고, 덜 익은 박은 국수처럼 길게 썰어 말린 후 박고치 반찬을 해먹거나 김치를 담아 먹기도 했답니다. 물론 박 껍데기로는 바가지를 만들어 유용하게 썼고요, 요즘은 박으로 작은 술병이나 꽃병, 장식소품을 만드는데 상당히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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