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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취미여행] 동호회 '조은 붕어'와 떠나는 공주 유구 밤낚시
[취미여행] 동호회 '조은 붕어'와 떠나는 공주 유구 밤낚시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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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습관처럼 낚싯대를 잡는 낚시꾼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습관처럼 낚싯대를 잡는 낚시꾼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공주] 낚시꾼은 고기만 낚나? NO. 그럼, 뭐를 낚지? ‘조은 붕어’ 낚시꾼들이 진짜로 낚는 것은 거시기 뭐여? 형광찌가 소류지에 별처럼 뜬 깜깜한 밤, ‘조은 붕어’와 나누는 소곤소곤 낚시 이야기.

입맛을 다시며 시작한 여행이다. ‘적어도 손바닥만한 붕어찜이나 얼큰한 매운탕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겠지, 숟가락 하나 준비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조은 붕어’를 따라 유구의 작은 저수지로 낚시여행을 떠났다.

조붕(‘조은 붕어’의 약칭)의 회장 김철호 씨를 아침 일찍 만나 함께 출발했다. “숟가락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괜찮죠?” 했더니 “그럼요. 유구 시내에서 음식을 시켜먹으니까 걱정 안해도 돼요.” “예, 매운탕 먹는 거 아네요?” “매운탕? 우린 매운탕 안 먹어요. 잡은 고기는 다 놓아줘요. 둘러보세요. 차안에 고추장 양념 그릇이 있나?”

일등부터 꼴찌까지 동호회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상품이 마련되어 있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일등부터 꼴찌까지 동호회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상품이 마련되어 있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야외에서 먹는 보글보글 매운탕 기대는 찬물을 맞았지만, 흐뭇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조은 붕어’는 21명 사나이들이 모인 낚시 동호회다. 스무살부터 오십대 초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이십대 청년과 오십대 아저씨가 친구가 되어서 영화 <친구>처럼 “우리는 친구아인가!”라며 주말 밤을 낚시터에서 함께 보내는 사나이들이다.

조붕은 낚시를 하면서 낚시터를 오염시키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낚시를 즐기면서 낚시터와 그 주변을 깨끗하게 지킨다. 낚시꾼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좋아서 뭉쳤다는 사나이들이 “친구아인가!”식 우정을 보여준다.

유구천 근방에 있는 낚시 용품점 사장님은 유구천을 사랑해서 늘 손수 유구천 청소를 다니는 때가 많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유구천 근방에 있는 낚시 용품점 사장님은 유구천을 사랑해서 늘 손수 유구천 청소를 다니는 때가 많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장소는 유구의 작은 저수지였다. 원래는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마을 사람들이 저수지에 물고기를 방류하여 낚시터로 만들려 했다가 계획으로 그치고 만 곳이다. 돌보는 이 없이 방치한 동안 많은 낚시꾼들이 찾아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오염을 시켰다. 조붕이 자주 들러서 청소를 하면서 깨끗하게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조붕에게 마음을 열고 근처에서 들일을 하다가 막걸리를 한잔 주기도 한단다.

먼저 온 사람들이 논 한가운데 텐트를 치고 볏집을 깐다. 밤샘할 준비를 한다. 일찍 온 사람들이 저수지 이쪽저쪽에서 자리를 잡는다. 제일 막내인 신현창 씨는 저수지에 물이 유입되는 곳에 낚싯대를 세운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바다 낚시를 즐겼다는 현창 씨는 민물낚시 5년째란다.

토종붕어.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토종붕어.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붕어낚시는 바다낚시처럼 다이나믹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고즈넉한 자리에 앉아서 어신을 기다리는 재미가 묘미죠. 처음 배우는 분들은 좀이 쑤신다고 투덜대다가도 맛을 들이면 일어나지 않죠.”  

현창 씨는 붕어가 없는 자리라고 하면서 꿋꿋하게 그 자리를 고수한다. 고기는 안 잡혀도 조용해서 좋다나. 문광준 씨는 저수지 물이 빠져나가는 수로 가까이에서 완자모양 떡밥을 빚어서 계속 똑같은 자리에 던진다.

“떡밥은 한번 던지면 반경 10cm안에서 집중적으로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냄새를 맡고 몰려들지요. 낮에는 붕어가 잘 움직이지 않아요. 밤에 움직이지. 다른 스포츠는 60살이 넘으면 하기 힘들지만 낚시는 80살에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좋죠. 월척? 월척 잡으면 하산해야지. 그래서 일부러 잡지 않고 있어요. 그냥 풍경 보면서 즐기는 거죠.”

소류지 둑에서 바라본 들녘에 안개가 가득하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소류지 둑에서 바라본 들녘에 안개가 가득하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어둠이 내려오자 길 위에 차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트렁크 안에서 두꺼운 방한복을 꺼내서 밤샘할 준비를 한다. 소류지에는 하늘보다 먼저 별이 뜬다. 소류지 가장자리에 야광찌가 별처럼 하나둘씩 뜬다. 수면이 어두워지자 낚시꾼들은 보이지 않고 사방 보이는 것은 야광찌 밖에 없다.

시선이 집중되고 무아지경에 들어간다. 오로지 물 밑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뿐이다. 논두렁과 저수지둑을 다니면서 조붕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같이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낚시터에서 제일 먼저 쫓겨날 것이다.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태환 씨는 석축이 꽂혀지지 않아서 자리를 옮길까 고민을 하고 있다. 태환 씨는 이곳에 와서 고교 동창을 10년 만에 만났다고 한다. “사이트에서 보니까 사진이 비슷해요. 그래서 메일을 보냈더니 맞는 거 있죠. 자주는 못 다니고 한 달에 한번은 친구랑 꼭 낚시를 하죠. 좋더라구요.”

구운모 씨는 “‘구운몽’에서 ‘o’을 빼면 제 이름이죠. 쉽죠”한다. 집에서 설거지 두 번 해주고 오는 낚시다. “사람들은 고기 잡히는 손맛이 좋다고 하는데 저는 손맛을 느낄 사이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여서 빨리 끄집어내야 합니다. 물고기가 재밌어요. 잠시 자리를 비워두면 낚시줄을 모두 얽어놓고 가요.” 까만 어둠 속에서 웃으니 흰 이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낚시터는 늘 조용하다. 텐트를 치고 밤샘을 준비하는 낚시꾼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낚시터는 늘 조용하다. 텐트를 치고 밤샘을 준비하는 낚시꾼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점점 밤은 깊어가고 낚시터는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 도대체 어디서 붕어가 잡히고 있는지 도통 알 수 가 없다. 김철호 씨 주위에서 얼쩡거리며 낚싯대를 몇 번 던져봤지만 한번도 제대로 던지지 못 했다. 쉬운 게 아무 것도 없다.

“압구정에서 노는 사람 있고, 신촌에서 노는 사람이 있듯이 물고기마다 노는 물이 다르고 가는 길도 달라요. 큰 붕어가 가는 길이 있고 잔챙이가 다니는 길이 있어요. 또 계절별로 다르죠. 특히 토종붕어는 조용한 곳을 좋아해요.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정말 고수죠.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직접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있어요.

밤샘한 새벽 낚시터. 붕어는 다 어디로 갔는지 물속은 조용하기만 하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밤샘한 새벽 낚시터. 붕어는 다 어디로 갔는지 물속은 조용하기만 하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붕어는 시끄러우면 잘 움직이지 않아요. 아주 민감해요. 신기하죠. 물 속에서 밖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우리는 물 속의 일을 모르잖아요. 오직 찌 하나가 물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 해 주는 거죠. 겨울에는 붕어 잡기 힘들죠. 수온이 내려가면 붕어를 비롯한 수중생물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최소한의 먹이활동만 하거나 전혀 먹이활동을 하지 않죠. 그래서 겨울에 낚시를 하려면 진짜 붕어가 있는 곳에서 해야죠. 붕어 코앞에 낚시를 던져야 그나마 먹죠.”

그 밤 조붕의 조업 성과가 신통치 않았다. 못 잡아도 후회는 없다. 낚시는 그냥 정직한 버릇이다. 그러나 푸짐한 낚시 상품은 서로 탐내는 눈치다. 그날 잡혔던 고기들은 모두 그들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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