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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1월호
[문학기행] 상록수 그늘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 충남 당진 필경사
[문학기행] 상록수 그늘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 충남 당진 필경사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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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문학관에는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심훈의 일대기가 사진과 원고 등의 자료와 함께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문학관에는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심훈의 일대기가 사진과 원고 등의 자료와 함께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당진] 「우리의 붓끝은 날마다 흰 종이 위를 갈며 나간다.  한 자루의 붓 그것은 우리의 쟁기요 유일한 연장이다. 거칠은 산기슭에 한 이랑의 화전을 일구려면 돌부리와 나무등걸에 호미 끝이 부러지듯이 아아 우리의 꿋꿋한 붓대가 몇 번이나 꺽였던고…」 (심훈 <필경> 1연)

「그들은 저도 모르는 겨를에, 서로 목례를 주고받았다. 비록 오늘 저녁 공석에서 처음 대면을 하였건만, 여러 해 사귀어 온 지기와 같이 피차에 반가웠던 것이다. 동혁은 앉아 있기가 미안해서, “이리 앉으시지요.” 하고 일어서며 자리를 내준다.

영신은 머리를 숙이며, “고맙습니다. 전 섰는 게 시원해 좋아요.” 하고 사양하면서 도리어 반 걸음쯤 물러섰다. 동혁은 아직도 애티가 남아 있어, 귀염성스러운 영신의 입모습을 보았다. 그 입모습을 스치고 지나가는 미소를 보았다.」

신문사에서 주최한 농촌계몽운동 다과회에서 고등농림 학생 박동혁과 신학생 채영신이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농촌을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소 실천을 해야 한다’는 뜻이 같았던 그들은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고 서로를 격려한다.

이윽고 동혁은 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인 서해안의 한곡리로 내려간다. 신학생이었던 영신은 기독청년회 농촌사업부 특파원으로 경기도 청석골로 가서 농촌계몽운동을 벌인다.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상록수 원고.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상록수 원고.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은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 샘골마을에서 농촌계몽활동을 벌이다 유명을 달리한 최용신의 화신이다. 함경남도 원산 출생의 용신은 서울에서 신학대를 다니다 학업을 중단하고 궁벽한 농촌 샘골마을로 내려갔다. 그 때가 1931년. 그녀의 나이 22세. 흔한 말로 꽃다운 나이였다.

교회를 빌려 글을 가르치며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하던 그녀는 4년 뒤인 35년 1월 유학중에 얻은 병과 과로가 겹쳐 세상을 떠났다.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선생’이라 부르며 따랐던 마을 주민들은 슬퍼하며 마을 예배당 뒤에 안장하였다. 그녀의 사망은 신문에까지 게재됐다.

마을 어귀 상록수가 밀집한 공원 뒤편에 상록수의 남자 주인공 박동혁의 실제 인물 심재영씨의 고택이 아직 남아 있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마을 어귀 상록수가 밀집한 공원 뒤편에 상록수의 남자 주인공 박동혁의 실제 인물 심재영씨의 고택이 아직 남아 있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서해안 한벽한 궁촌 당진 부곡리에 내려와 소설 집필에 몰두하던 심훈(본명 심대섭)은 영신의 부고를 읽는다. 마침 조카 심재영이 친구 12명과 공동경작답을 조직하여 그 수입으로 농가부채를 갚고, 문맹퇴치에 앞장서는 등 농촌부흥운동을 벌이는 것을 유심히 보아왔던 터이다. 그의 머리 속에 순식간에 이야기가 그려진다.  

돌아보면 그의 삶 또한 파란만장하다. 16세에 결혼, 2년 후 3.1운동 참여했다가 감옥에 갇히고, 7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곧이어 만주로 건너가 북경 남경 상해를 거쳐 항주 원강대학에서 극문학을 전공하고, 3년 후인 1923년 귀국하여 스물 두 살의 나이에 동아일보 기자가 된 이래 신문사와 방송국 등을 전전한다.

이때 부인 이해영과도 자녀를 갖지 못해 헤어진다. 소설 ‘직녀성’은 이혼한 부인에 대한 회고작으로 알려져 있다. 준수한 용모로 장안 기생들의 마음을 울렸던 그는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6년여를 홀로 지내다 30년에야 재혼을 했다.

영화 '장한몽'에 대역으로 잠깐 출연했던 장면. 영화인이기도 했던 그는 '먼 동이 틀 때'에서 원작과 각색, 감독을 맡아 성공시켰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영화 '장한몽'에 대역으로 잠깐 출연했던 장면. 영화인이기도 했던 그는 '먼 동이 틀 때'에서 원작과 각색, 감독을 맡아 성공시켰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영화는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 같다. 극문회에 가입하고 연극, 영화계 인물들과 교류하였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공부를 하기도 했다. 27년에는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 각색, 감독 1인 3역으로 맡아 제작하였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그는 1백여 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시를 보면 열정이 넘치는 천성이 느껴진다. 그 젊은 열정은 일제라는 군국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았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 신문 호외에 실었던 시 구절로 인해 그는 절필을 하게 된다. 신문에 연재한 중편소설 ‘동방의 애인’과 ‘직녀성’도 사사건건 검열에 걸려 결국은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의 서재는 지금이라도 불을 밝힐 수 있다. 상록수는 필경사에서 집필됐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그의 서재는 지금이라도 불을 밝힐 수 있다. 상록수는 필경사에서 집필됐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1931년 그는 붓 하나 달랑 들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하고 싶은 문학과 영화가 이리 꺾이고 저리 잡혀 움치고 뛰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 개인적으로는 이혼과 재혼이라는 삶의 굴곡을 겪은 그는 은둔하여 글을 쓰면서 때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의 시 <그 날이 오면>처럼.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필경사 전경. 심훈의 사망이후 한동안 교회로도 이용되었는데 지금은 당시 모습대로 복원을 했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필경사 전경. 심훈의 사망이후 한동안 교회로도 이용되었는데 지금은 당시 모습대로 복원을 했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필경사라는 이름은 ‘필경’이라는 그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장조카 심재영의 사랑채에 머물며 적당한 집터를 잡기 위하여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중 아끼던 상아 파이프를 잃어 버렸다. 그것을 찾기 위하여 다시 되짚어 다니다가 찾은 곳이 지금의 필경사 자리이다.

그가 직접 설계하고 손수 지은 아담한 집 한 채. ‘7원짜리 셋방 속에서 어린 것과 지지고 볶고 그나마 몇 달씩 방세를 못 내서 툭하면 축출 명령을 받아 가며 마음에 없는 직업에 노명을 이어갈 때보다는 맥반총탕일망정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끓여 먹고 저의 생명인 시간을 제 임의로 쓰고 티끌 하나 없는 공기를 마음껏 마시는 자유나마 누리게 되기를 별르고 바란 지 무릇 몇 해였던가’(필경사 잡기)

지금 필경사는 그가 심은 해송 한그루가 지키고 있다. 정문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철제 조형물(이종섭 作. 2001년)이 들어온다. 철로 된 의자와 상록수 한그루 벌떡 일어나 있는 듯한 조형물에는 의미심장한 한 구절이 씌여 있다. ‘그날, 쇠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라’ 이제야 녹이 슬어가는 조형물이 언제 흙이 될 것인가. 그래도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상록수의 실제인물, 안산 샘골마을 최용신. 최용신은 문맹퇴치 등에 힘을 기울였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상록수의 실제인물, 안산 샘골마을 최용신. 최용신은 문맹퇴치 등에 힘을 기울였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소설 ‘상록수’는 박동혁과 채영신의 절제된, 그러면서도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굵은 심지를 이룬다. 영화를 염두에 둔 듯, 남녀 주인공 두 사람의 심리와 표정 묘사가 아기자기하다.  

채영신은 당시로서는 당찬 여성이다. 자신에게 정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동혁을 찾아가 담판(?)을 벌인다. 이를테면 ‘난 당신이 마음에 있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이다. 오히려 박동혁이 머뭇거린다. 해당화가 진 해변가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한 두 사람은 삼 년 후를 기약하고 각자의 일터로 돌아간다.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에 있는 최용신 선생 묘. 그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천곡교회 뒷동산에 있다. 인근은 온통 아파트와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한때 이곳이 궁벽한 농촌이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다. 안산시는 그를 기리기 위해 '용신로' '상록수역' '상록수공원' 등등의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에 있는 최용신 선생 묘. 그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천곡교회 뒷동산에 있다. 인근은 온통 아파트와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한때 이곳이 궁벽한 농촌이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다. 안산시는 그를 기리기 위해 '용신로' '상록수역' '상록수공원' 등등의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영신은 일본 유학중에 얻은 각기병과 맹장염, 영양실조로 그만 쓰러지고 만다. 동혁이 지주의 농간에 의해 감옥에 갇힌 사이, 마을 주민들의 정성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세상을 등지고 만다.

이윽고 풀려난 동혁, 뒤늦게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그녀의 시신조차 보지 못한다. 영신의 무덤에서 하룻밤을 새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던 끝에 동혁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농촌운동에 전념하리라 다짐을 한다.

상록수 실제 인물 당진 부곡리 심재영. 심재영은 공동경작을 통해 농가부채를 갚는 운동에 힘썼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상록수 실제 인물 당진 부곡리 심재영.(중앙의 팔짱 낀 인물) 심재영은 공동경작을 통해 농가부채를 갚는 운동에 힘썼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고향 마을로 돌아오는 길. 동혁은 마을 어귀 상록수를 보며 새 힘을 얻는다. 모진 겨울바람을 맞고도 푸르디 푸르게 살아 있는 상록수. 소설은 동혁이 ‘상록수 그늘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심훈은 35년 가을부터 ‘상록수’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이듬해 이를 영화로, 책으로 펴내고자 서울에 왔다가 그만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6세. 한창 나이에 꽃 지듯 바삐 가버리고 말았다.

박동혁의 실제 인물 심재영 씨만이 남아 상록마을을 지키다 지난 95년 작고했다. 모진 세월이 흐르고 한때 젊은 꿈을 불사르던 그들은 이제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떠난 부곡리 상록수 숲을 거닐다 문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그늘 사이로 누군가 ‘뚜벅 뚜벅 걸어나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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