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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산] 우정으로 오랐다가 연인으로 내려오는 산, 가평 연인산
[이달의 산] 우정으로 오랐다가 연인으로 내려오는 산, 가평 연인산
  • 여행스케치
  • 승인 2004.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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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가평 연인산 산길.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가평 연인산 산길.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가평] 가평 현리 마을 입구에서 좌측으로 갈라진 길에 '연인산 명지산 오르는 길' 이란 표지가 있어 그리로 들어갔다. 운악산 입구를 지나 상판리까지 이르렀는데 올라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장재울 계곡 유원지만 쓸쓸할 뿐이다.

가다보니 길이 끊기고 버스 종점이 나온다. 종점에 있는 식당에서 물어보니 좀 아래 쪽에 묵공장이 있는데 그 뒤로 올라가라고 한다. 아무래도 찜찜해서 미적미적 내려가는데 앞에 아저씨 아주머니가 손을 흔든다. 오늘이 마침 장날이라 현리에 나가신단다. 냉큼 태워드렸다.

“연인산? 이 쪽에서 오르면 길이 좀 험한데…. 지난 겨울에 올라갔다가 눈이 가슴까지 빠져서 그냥 내려와 버렸지. 핸드폰도 안되고… 좀 겁나더라니까.”

우정능선에서 내려다본 운악산. 험준한 바위산이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우정능선에서 내려다본 운악산. 험준한 바위산이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겨울 눈 쌓인 북쪽 계곡은 위험하다. 자칫 깊은 눈구덩이에 빠지면 그 길로 황천 가는 수도 있단다. 겨울 산은 남쪽에서 능선타고 오르는 게 안전하다. 아저씨의 충고를 따라 현리까지 다시 나왔다가 마일리쪽으로 들어갔다. 마일리 국수당에 이르니 등산로 입구 분위기가 좀 난다.

토종닭 등을 하는 식당이 몇 채 있는데 겨울 평일이라 그런지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할 뿐 쓸쓸하기만 하다. 입구에서 산행안내도를 보니 약 4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코스다.

산책하듯 오르는 우정능선. 눈이 쌓이면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산책하듯 오르는 우정능선. 눈이 쌓이면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첫번째 목표지점인 우정고개로 올라가는데 한 이삼십여미터나 갔을까? 길 좋은 산림도로를 나뭇가지로 막아 놓았다. 옆으로 자그마한 흙길을 내놓았는데 그리로 가라고 리본을 달아놓았다.‘음. 우정고개까지 산림도로를 타고 가면 등산이 너무 심심해서 그랬을까?’

새로 난 길은 오르락내리락 걷는 재미는 있는데 힘이 들었다. 옆에 잘 닦인 산림도로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중간쯤에서 산림도로를 만나자 이번엔 막아 놓은 나뭇가지를 넘어 올라갔다. ‘편하다….’ 왜 산림도로를 막아 놓았는지 그 이유는 내려올 때 알게 되었다.

원래 있던 산림도로. 돌들이 위험해 옆으로 흙길을 만들었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원래 있던 산림도로. 돌들이 위험해 옆으로 흙길을 만들었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내려올 때도 산림도로를 타고 왔는데 대개 산림도로에 깔린 돌들은 서로 아귀가 맞아서 흔들리지 않는데 이 길은 그렇지 않았다. 돌들이 굴러다니는 통에 두 번이나 미끄러지고 카메라를 부서뜨릴 뻔 했다. 눈이라도 덮였을 때는 허리나 엉덩이를 다치기 십상일 것 같았다. 두 번째 넘어졌을 때 엉금엉금 기어 새로 난 흙길로 나와서 내려왔다. ‘역시, 다 이유가 있었구나.’

우정고개에 오르니 우측으로 929.2m 매봉 오르는 길과 앞으로 연인골로 내려가는 산림도로, 그리고 좌측으로 우정능선 오르는 길로 갈라진다. 우정능선으로 오른다. 등산이라기보다는 마치 동산을 산책하는 듯한 느낌. 둥그스름한 흙길을 따라 오르는데 우측으로 송림이 펼쳐져있다.

아담한 능선 길에 갑자기 솟은 우정봉.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아담한 능선 길에 갑자기 솟은 우정봉.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20여분 올랐을까? 어느새 능선 위쪽까지 올라왔다. 가끔 경사가 있는 길이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비스듬한 산책길이다. 옆에서 몰아치는 바람만 아니면 정말 마음에 드는 산행이 될 것 같았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누런 소 잔등 같은 능선을 타고 편히 가는데 갑자기 우뚝 봉우리 하나가 막아선다. 해발 906m 우정봉이다.

갑자기 ‘그래서 우정봉이구나!’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길이 좋으니 남녀가 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능선을 타고 왔다가도 우정봉에 오면 앞서가는 사람이 손을 잡아주게끔 되어 있다. 우정이 연인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1086m 연인산 정상 연인봉이 푸근하게 맞아준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1086m 연인산 정상 연인봉이 푸근하게 맞아준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우정봉에서 연인산 정상까지 가는 길 능선 좌우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그만이다. 중간에 헬기장에서 보니 남쪽으로 저 멀리 현리가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는 운악산이 내다보인다. 연인산 정상에는 넓은 평야가 있다. 그래서 인근 주민들은 이 산을 ‘아홉마지기’라고 불렀다.

좁씨를 한가마니나 뿌릴 수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뚜렷한 이름도 없이 1068m봉, 우목봉으로 불렸고, 옛 문헌에 월출산이라 했다하여 그렇게도 불리던 산이다. 1999년 가평군에서 산 정상에 철쭉을 많이 심고는 ‘연인산’이라 이름 지어 붙였다.

전설도 있는데 이 산에서 숯도 굽고 화전을 부치던 길수라는 청년과 소정이라는 아가씨의 사랑이야기이다. 길수는 김참판집에 숯을 가져다주다가 소정을 사랑하게 됐는데 소정은 집안이 가난해서 돈에 팔려와 종이 된 신세. 김참판은 숯가마터를 내어 놓던지 조 백가마니를 가져오던지 해야 소정 아가씨를 내주겠다고 했다.

연인봉은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란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연인봉은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란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길수는 산 정상 평야에 조씨를 뿌렸고 조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김참판은 약속을 어기고 길수에게 역적의 자식이란 누명을 씌웠다. 관군에 쫓기던 길수가 소정을 찾아 도망치려 하는데 소정은 길수를 기다리다 지쳐 찾아오기 이틀 전에 이승을 떠난 뒤였다.

길수는 아홉마지기로 돌아가 조를 불태우고 그 속에 함께 타는데 홀연 죽었다던 소정이 나타난다. 다음날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보니 두 사람의 신발만 남아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주위의 철쭉과 얼레지만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연인산 정상 표지석에 새겨진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산’의 유래인데 연인들이 와서 사랑과 소원을 빌면 그대로 이루어진단다. 연인산 정상에 서면 북쪽 명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명지산 뒤쪽으로 보이는 산이 화악산. 날이 좋으면 시계방향으로 삼악산, 북한강, 유명산, 축령산, 인수봉, 도봉산, 운악산, 청계산 등을 볼 수 있다.

연인봉 뒤로 난 능선을 따라가면 명지산으로 이어진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연인봉 뒤로 난 능선을 따라가면 명지산으로 이어진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연인능선을 타고 내려오는데 급경사 구간이 있다. 가다보면 중간에 계곡으로 가는 길과 능선으로 가는 길로 나뉘는데 눈이 쌓였을 경우 능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 계곡은 낙엽이 수북하여 무릎까지 빠지는데 그 위에 눈이라도 쌓이면 그야말로 가슴까지 푹 빠질 수도 있다. 또 자칫 발목을 다치기 십상이다.

겨울 산행은 주의를 하고 또 해야 하는데 연인산도 마찬가지이다. 길이 완만하다고는 하지만 한겨울에는 허벅지까지 눈이 쌓이는 곳이다. 누가 눈을 치워주는 것도 아니니 말 그대로 눈밭을 헤치고 가야하므로 산행시간도 넉넉히 잡아야 한다. 겨울 산행기를 찾아보니 같은 길로 오르는 데만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연인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만나는 산림도로에는 1백년 된 푸른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연인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만나는 산림도로에는 1백년 된 푸른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2004년 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연인능선을 내려오면 산림도로가 나온다. 연인봉에서 맺은 약속이 푸른 솔처럼 변치 않기를 다짐이라도 하라는 듯 좌우로 송림이 펼쳐져있다. 쭉쭉 뻗은 수령 1백년의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서 산길을 가는 나그네를 내려다본다. 우정고개로 되돌아와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이 정확히 4시간 30분. 그런데 그 시간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평일이라 그랬나?  

Traveler’s Guide <연인산 등산코스>
연인산은 여러 길로 오를 수 있다. 백둔리쪽에서 오르면 소망능선이나 장수능선, 용추구곡을 통해서 오르면 청풍능선, 연인골까지 들어와서 오르면 연인능선, 마일리 국수당쪽에서 오르면 우정능선을 탈 수 있다. 산 북쪽 상판리쪽에서 오르는 길도 있는데 눈이 녹지 않는 계곡길이라 겨울산행에는 마땅치 않다.

제1코스 (약 5시간 30분소요) : 백둔리 -> 장수고개 -> 장수능선 -> 연인산 -> 우정능선 -> 우정고개 -> 마일리

제2코스 (약 4시간 30분소요) : 마일리 -> 우정고개 -> 우정능선 -> 연인산 -> 연인,장수삼거리 -> 연인능선 -> 산림도로 -> 우정고개 ->  마일리

제3코스 (약 5시간 소요) : 백둔리 -> 장수고개 -> 장수능선 -> 연인산 -> 소망능선 -> 백둔리자연학교 -> 백둔리

제4코스 (약 7시간 소요) : 백둔리 -> 소망능선 -> 연인산 -> 연인능선 -> 연인골 - 용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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