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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족여행] 가을동화의 주인공이 되어보자, 화진포 기행
[가족여행] 가을동화의 주인공이 되어보자, 화진포 기행
  • 이종원 객원기자
  • 승인 2004.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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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무지개가 보이는 화진포해변.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무지개가 보이는 화진포해변.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고성] 정수가 차안에서 꿈 이야기를 해준다. 피터팬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며 나쁜 무리들을 무찔렀다며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딸의 꿈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실은 나도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고픈 생각을 가끔 했다. 분위기 물씬 나는 해변에서 주인공처럼 멋드러진 표정을 지으며 뭇여인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꿈. 그러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그렇다면 화진포해변에 한번 가보라.

가을동화 촬영지 화진포
가을동화의 주인공이 어린 시절 해변에 그림을 그리며 추억을 쌓은 곳이며 준서가 사랑하는 여인 은서를 등에 업고 마지막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 화진포해변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죽었을 때 참 많은 시청자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새도 가을동화 매니아들이 끊임없이 이 곳을 찾는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이 되었던 화진포.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이 되었던 화진포.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오전까지만 해도 비가 주룩주룩 내렸는데 화진포에 오자마자 날이 화창하게 개인 것이다. 파란 하늘도 고마운데 7색깔 무지개까지 하늘을 수놓고 있어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해변엔 나무 벤치가  일렬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 공간을 내가 대신 차지하면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본다.

파란 바다는 연신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얼마전 무의도에서 보았던 서해바다와는 바다색깔부터 차이가 난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묻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적당한 곳에 금구도란 예쁜 섬이 자리 잡고 있어 바다의 격조를 더욱 높여준다.  

화진포콘도.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화진포콘도.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화진포 콘도도 맘에 든다. 객실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결혼 20주년엔 꼭 저기서 묵어야겠다고 약속한다. 정수와 해변을 달려본다. 앞엔 눈부신 백사장이 한없이 이어지고 뒤는 소나무 숲과 해당화가 펼쳐진다. 부녀는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에 발자국을 만들어본다.

“아빠 발자국이 자꾸만 나를 따라와.” 파도가 밀려오자 정수가 서둘러 나오고 있다. “어휴 큰일 날뻔 했네….” 아빠가 그만 가자고 보채도 정수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저 바다가 좋은 것이다. 아파트에 갇혀서 온갖 스트레스 시달린 아이들에게 이곳은 천국이다. 정수는 동화를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보며 동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화진포에는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세 인물(김일성, 이승만, 이기붕)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만큼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세 별장을 통틀어 ‘역사안보전시관’이라고 부른다. 세월이 바뀌었으니 ‘민주통일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떨까?

김일성 별장에서 본 화진포해변.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김일성 별장에서 본 화진포해변.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김일성 별장은 해변에서 한참 계단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경치로 따진다면 세 별장 중에서는 단연 최고다. 송림사이로 예쁜 화진포 해변이 한 눈에 들어와 가슴마저 시원하다. 3.8선이 그어지면서 이 곳은 북한 땅이 되었다. 1948년부터 김일성과 그 가족들이 하계휴양지로 사용했으며 원래는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이었으나 전쟁 중에 훼손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별장 안에는 김일성의 단란했던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가족만큼이나 우리 민족을 사랑했으면 6.25의 비극은 없었으리라. 김정일의 6살 사진은 너무나 천진난만하여 시선을 멈추게 한다. 바다쪽으로는 아직도 철조망으로 둘러쳐 있다. 어여 빨리 통일이 되어 확 트인 바다를 봐야 할텐데….

자유당시절 일인지하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렸던 이기붕의 별장.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자유당시절 일인지하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렸던 이기붕의 별장.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김일성 별장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 소나무 숲 사이에 그림 같은 집이 보인다. 바로 이기붕 별장. 앞에는 화진포 호수가 보이고 뒤는 해변이 펼쳐져 있다. 별장 옆의 소나무 길을 사뿐사뿐 거닐어 보라. 역시 영화 속의 장면이 연출된다. 이기붕 별장이야말로 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기붕별장에 전시된 유품들이 부귀영화에 덧 없음을 알려준다.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이기붕별장에 전시된 유품들이 부귀영화에 덧 없음을 알려준다.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처음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되다가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이용되었고,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의 개인별장으로 사용되었다. 이기붕 가족이 사용했던 침대와 책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어쩌면 이승만이 독재의 길을 걸었던 것도 이기붕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무소불위 권력도 부정하게 사용하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가르쳐준다.

송림사이로 산책길이 놓여 있다.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송림사이로 산책길이 놓여 있다.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별장을 갈려면 화진포 호수를 둘러가야만 한다. 호수는 72만평이 되고 둘레만 16km로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다.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있으며 운 좋으면 청둥오리의 군무도 볼 수 있는 행운도 얻게 된다. 겨울엔 천연기념물인 고니가 찾아온다. 화진포 콘도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준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흔들리는 갈대를 보노라면 가을동화의 사랑스런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나는 7번국도에서 화진포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길을 사랑한다. 참 아늑하고 예쁘기 때문이다. 화진포 다리를 건너면 이승만 별장이 나온다. 권력자의 별장치고는 의외로 수수하게 꾸며져 있다.

이승만 별장.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이승만 별장.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청년시절 자료사진과 프란체스카 여사의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별장엔 침실과 집무실 그리고 응접실이 꾸며져 있다. 1954년 별장이 지어져 사용되다가 5.16혁명이 일어나자 폐허가 되어 철거되었다가 1997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시켜 놓았다. 비록 독재의 칼을 휘둘렀어도 대통령은 검소하게 살았음을 보여준다.

이승만 별장에서 고개를 넘으면 고인돌 유적지가 나온다. 청동기에서 철기시대에 이르는 선사 유적지가 분포되어 있다. 당시 이곳이 중요한 삶의 터전임을 말해준다. 해변쪽으로 다시 가면 해양박물관이 나온다.

3층 건물로 1-2층에는 세계적인 희귀 조개류와 산호, 화석 등 4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신기한 조개가 가득 전시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유익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3층 전망대에 올라가면 동해바다와 화진포의 정취를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다.

통일전망대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자. 부산서 출발하는 7번 국도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고성 통일전망대가 나온다. 그 곳까지 가는 해변 드라이브코스가 일품이다. 비무장지대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미터 고지에 통일 전망대가 서있다. 북위 38도 35분이다.

금강산을 바라보고 있는 성모상과 불상.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금강산을 바라보고 있는 성모상과 불상. 2004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남한에서 가장 최북단에 놓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금강산과 해금강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한나절 울음을 터뜨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통일을 염원하는 성모상과 미륵불상이 나란히 금강산을 바라보고 있어 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

금강산 육로관광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육로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관광객을 만났다. “금강산 멋있어요?” “멋으로 봅니까? 마음으로 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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