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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사찰]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천성산 내원사
[이달의 사찰]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천성산 내원사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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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내원사 풍경.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내원사 풍경.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양산] 부산여행 중이였습니다. 겨울이 따뜻해서 목도리를 풀러 가방에 메고 겉옷의 단추를 풀어 헤치며 걷고 있을 때입니다. 한순간 찬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들어 저절로 옷깃을 다시 여미어야 했습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말입니다. 

그녀를 보았을 때, 비구로 알았습니다. 너무 말라서 비구니라고 상상도 못 했죠. 속세를 떠난 사람에게 성이 무슨 상관있겠냐만은 나 같이 범속한 사람에게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이었습니다.

저렇게 연약한 여인네의 심장에 뭐가 들어있길래 목숨을 걸고 지킬게 있는가? 조금은 저속한 호기심이 들더군요. 그러나 내 안의 세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의심하는 이 각박한 세상에 나는 그녀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간월당 문 앞에는 겨울에 쓸 장작더미가 수도자처럼 단정하게 쌓여있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간월당 문 앞에는 겨울에 쓸 장작더미가 수도자처럼 단정하게 쌓여있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내원사 지율 스님의 천성산 사랑이야기
그녀는 부산시청 정문 앞에서 43일째 단식 농성 중이었습니다. 소량의 죽염과 간장으로 몸을 지탱하며 39일 동안은 봉고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40일째부터 차가운 시청 소파 귀퉁이에서 잠을 청하면서 온 몸으로 천성산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환영받지 못 했죠. 여행잡지 기자였기에….

천상산을 지켜야 하는 사람에게 천성산을 여행지로 소개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었겠죠. 그 만큼 천성산에는 사람들 손이 타면 사라지고 마는 것들. 여리고 힘없는 것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녀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것들이…. 그녀는 천성산 내원사 지율스님입니다.

부산 시청앞에서 단식농성 43일째인 지율스님.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부산 시청앞에서 단식농성 43일째인 지율스님.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지율스님은 천성산 수많은 생명들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스님에게는 박노해 시인의 시구처럼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노선이 천성산 18km를 관통한답니다. 저는 스님이 그렇게 지켜야하는 천성산과 스님이 기거하는 내원사가 궁금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2시간 동안 내원사 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가는 길에 차도는 있는데 사람이 다니는 길이 없어서 고생 좀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내원사 매표소까지 차는 빡빡하게 세워져 있는데 걸어가는 사람은 저와 아저씨 한 분밖에 없더군요. 제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차도로 조만한 새 한 마리도 날지 않더군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천성산은 8백12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입니다. 특히 맑고 깨끗한 내원사계곡은 유명해서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합니다. 겨울이라 계곡 물이 줄고 나뭇잎이 많이 쌓였더군요. 물이 시리도록 깨끗합니다. 내년에 이 나뭇잎에 꼬리치레 도롱뇽이 알을 낳겠군요. 천성산은 산세가 뛰어나서 옛날부터 소금강산이라고 불렸답니다.

요사채 죽림원 창호지 문에 나무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요사채 죽림원 창호지 문에 나무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골이 깊고 조용해서 일찍이 원효대사가 불도에 정진했다고 합니다. 천성산은 여러 개의 늪이 있어서 끈끈이 주걱, 땅귀개, 이삭귀개 등 다양한 습지 희귀식물 1백50여 종이 있으며, 천연기념물 참매,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꼬리치레 도롱뇽 등 희귀동물과 곤충이 많이 살고 있답니다.

매표소에서 30여분 정도 걸어가니 절이 산기슭에 조용히 기대고 있습니다. 절은 수도도량이라 들어갈 수 없었지만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절 한번 드렸습니다. 절은 조용하지만 묘한 활기가 있더군요. 스님들께 죄송하지만 아마 꽃향기가 아니겠는지요.

내원사는 절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 수도도량이라서 후문으로 살짝 들어가서 대웅전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2004년 1월. 김연미 기자
내원사는 절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 수도도량이라서 후문으로 살짝 들어가서 대웅전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2004년 1월. 김연미 기자

내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의 말사로서 1천3백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께서 지은 절입니다. 6.25동란으로 절이 전부 소실되었다가 비구니 수옥스님에 의해서 10년 만에 비구니 선원으로 새로 중창되었죠.

1979년 도용스님을 모시고 18명의 스님들이 모여 삼년결사를 시작한 후 지금도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도량인 선찰입니다. 그래서 특히 절은 조용히 다녀야 합니다. 근데 오랜만에 소풍 나오듯 절에 오니 조용하기가 쉽지 않죠. 대웅전 마루에 앉아서 선방 지붕 너머로 천성산 정상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선방은 수도도량이라 들어갈 수 없다. 사람들은 대웅전 앞에서 거닐다 돌아간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선방은 수도도량이라 들어갈 수 없다. 사람들은 대웅전 앞에서 거닐다 돌아간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나무가 서로 붙어서 수다스럽게 떨던 잎을 떨구고 적당히 사이를 두고 한 겨울 침묵에 들어갔습니다. 눈을 감고, 귀를 크게 열었습니다. 시끄러운 방문객에게 산은 많은 것들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 속에 숨겨있는 생명을 나는 알지 못 합니다. 그냥 가슴이 답답해져 오네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지율스님은 부산시청 앞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드리던 45일간의 단식을 푸셨다고 합니다. 17만 명의 도롱뇽 소송인단이 모이고 스님은 회향식을 마친 뒤 인가로 행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단식할 수 있는 한계를 넘기면서까지 연약한 스님이 길로 나서야 했는지, 작은 미물에 대한 극진한 사랑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것은 부처의 사랑이고 사람 사랑이지요. 우리는 알면서도 눈을 감는 게 아닌지 답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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