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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취미여행] 걷기 여행 동호회, '뚜벅이의 길'
[취미여행] 걷기 여행 동호회, '뚜벅이의 길'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1.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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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동호회 '뚜벅이의 길' 회원들의 소요산 산행. 2004년 1월. 김연미 기자
동호회 '뚜벅이의 길' 회원들의 소요산 산행. 2004년 1월.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경기] 왜? 걷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걷지요. 터벅터벅, 느릿느릿, 뚜벅뚜벅 걸음에도 생김새가 있네요. 생김새만큼 걷고 걷는 만큼 생각하지요.

우거진 풀 헤치며 아득히 찾아가니 물은 넓고 산은 멀어 갈수록 험하구나. 몸은 고달프고 마음은 지쳐도 찾을 길 없는데 저문 날 단풍숲에서 매미 울음 들려오네. 김지하 시 <소를 찾아 나서다> 중에서 낙엽 쌓인 숲길을 걷다보니 시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옛 사람들은 생각을 깊게 하려고 일부러 소를 탔다고 합니다. 요즘 ‘느릿느릿’이라는 말을 잘 쓰는데 소걸음이야 말로 느릿느릿이겠죠. 말을 타는 것은 거리를 좁히려는 교통수단이니, 사유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말은 지금의 기차, 비행기, 차랑 같겠죠.  

산의 골이 깊다. 그 골에 사람들의 길이 있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산의 골이 깊다. 그 골에 사람들의 길이 있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사람에게도 사유를 할 수 있는 속도가 있답니다. 그 사유의 속도가 바로 걷기입니다. 농담 같지만 가끔 거리를 걸어가는 동료나 친구들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터벅터벅, 또 다른 사람은 느릿느릿, 뚜벅뚜벅 어쩐지 생김새와 걸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 걸음이 그 사람의 사유의 깊이일지도 모릅니다.

제 걸음은 느릿느릿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만난 사람들은 뚜벅뚜벅 ‘뚜벅이의 길’입니다. 그러니 느릿느릿 걷다가 뚜벅뚜벅 한 템포 빨리 걸어야 했으니, 제가 얼마나 숨찼겠습니다. ‘뚜벅이의 길’은 인터넷 동호회입니다. 20대초부터 40대 후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때로는 한강, 탄천을 따라 걷고 때로는 강촌에서 경강역까지 발이 움직이는 대로 가장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그냥 걷지요.

뚜벅뚜벅 바위를 오르는 회원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뚜벅뚜벅 바위를 오르는 회원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보통 하루에 5∼6시간 정도 걷는답니다. 걷는 데는 돈도 안듭니다. 회비도 1만원 정도. 이렇게 여행 경비가 싼 동호회는 또 처음입니다. 도시락은 각자 준비해서 가지고 오고 대중교통인 기차, 버스를 타고 집합 장소에 모입니다. 그때부터 가고자 하는 길을 내내 걷지요. “그냥 걷지요”라고 하는데 각자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오직 뚜벅뚜벅 생김새를 닮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요. 소요산을 등산하고 소요산 입구에서 동두천까지 걸어간답니다. 아이디가 산과 구름인 ‘산운’ 이미희 씨는 고향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산면 산운이 고향인데 참 좋은 곳이라며 취재를 한번 하라고 하더군요.

소나무를 지나면 정상에 다다른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소나무를 지나면 정상에 다다른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농담처럼 젊은 친구들과 같이 걷다보니, 걸어서 좋고 젊은 기를 받아서 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즐거운 농담을 합니다. 인생을 한고비 넘긴 분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소요산의 칼 같은 바위들을 올라가면서 내내 손을 잡아준 ‘무명인’ 박성철 씨는 이름이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자체로 기억되고 싶다는 23살의 이제 길에 나선 풋풋한 청년입니다.

덕분에 다른 등산객에게 “애인끼리 손잡고 다녀야지!”라는 행복한 오해를 받기도 했답니다. ‘하늘지기’ 정지혜님은 “뛰는 것보다 걷는 게 좋다”는 취업 준비생입니다. 지금의 나는 길에서 잠깐 쉬었다 가는 중이라며 씩씩한 웃음을 남기대요.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산자락 구비구비 세상구경을 한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산자락 구비구비 세상구경을 한다. 2004년 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차를 타고 다니면 풀 한포기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걷기는 보지 못 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풀 한포기 내 것으로 온전하게 가질 수 있지요.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보이는 듯 합니다. 뚜벅뚜벅 세상을 걸어가는 게 쉬울 것 같지만 무지 어렵습니다.

그날 뚜벅이들은 비가 온 뒷날 미끄러운 산길을 오르다보니 등산시간이 길어져서 진짜 그들의 걷기는 뒤로 미루어야 했습니다. 대신 소요산역까지 10분 정도 걸어가는데 다들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우울, 짜증, 화가 나는 사람들은 지금 책상을 박차고 걸어보세요. 뚜벅뚜벅 세상을 걸어보세요’  

‘뚜벅이의 길’이 추천하는 걷기 좋은 길
■강촌역 -> 백양역 -> 경강역 코스 : 3시간 정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오른쪽으로는 북한강이 흐르고 북한강 너머에 경춘국도가 있다. 그 너머에 산과 들이 있고 그 너머에 하늘이 있다. 왼쪽으로 경춘선 기차가 지나가고, 빠르게 달리는 기차를 몇 개 쯤 떠나보내고 걷는 재미가 솔솔하다.
■중남미문화원 -> 최영장군묘 코스 : 1시간 30여분 소요. 조금은 썰렁하다고 느낄 수 있는 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중남미 문화원에서 유스호스텔 방향으로 언덕을 넘어 가면 성녕대군묘가 있다. 그 묘를 지나서 올라가면 최영장군묘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잔 고개를 몇 개 넘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강남역 -> 역삼역 -> 삼릉공원 -> 삼성역 코스 : 약 10km 정도. 강남역 부근부터 시작되는 테헤란로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빌딩 숲이 이런 거구나 비교도 하면서 중간에 삼릉공원, 잠실종합운동장, 석촌호수, 올림픽공원도 구경하면서 자연과 사람이 만든 공원을 비교도 해보며 도심 속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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