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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섬] 겨울바다 섬을 만나다, 보령 호도 / 대천해수욕장
[이달의 섬] 겨울바다 섬을 만나다, 보령 호도 / 대천해수욕장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0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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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보령 호도의 풍경.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보령 호도의 풍경.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보령] 바다는 미끄러웠다. 누르면 드러나는 힘살, 배는 푸르게 돋아난 물줄기를 타고 흐르듯 간다. 겨울 바다 그 성긴 속살이 속삭인다. 그대, 살아 있는가?

대천항을 떠난 배는 멀리 외연도까지 간다. 가는 길에 호도가 있다. 대천항에서 약 40분. 물때에 따라 출항 시간이 달라지는데 대개 10시나 12시30분 가운데 하나다. 겨울철이라 하루에 한번 왕복한다니 놓치면 항구에서 하룻밤 묵어야 한다.

대합실에서 꼼짝도 않고 기다렸다가 개찰하자마자 배 앞에 가서 섰다. 2백 명이 탄다는 웨스트프론티어호이건만 승객은 이십 명이 채 안된다. 주말인데도 여행객은 없고 섬 주민이거나 일 때문에 방문을 하는 차림이다. 하긴 겨울바다 섬 여행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삽시도 남쪽을 지나 10여분 더 갔을까?

은빛 규사가 반짝이는 해변이 아름답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은빛 규사가 반짝이는 해변이 아름답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멀리 바다에 병풍 같은 절벽이 우뚝 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도(狐島). 섬 모양이 여우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방파제를 따라 들어가니 바로 마을이다. 70여 채 정도 된다는데 보이는 집집마다 민박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작은 골목길이 이리저리 나 있는데 사람 다니는 기색이 없다.

자세히 보니 집들도 태반이 비어 있는 듯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 있는 노래방도 식당도 문들이 굳게 닫혀있다. 점심을 미루고 온 것이 후회가 됐다. “낚시꾼들이나 가끔 올까? 한 겨울에 이 섬까지 올 사람이 있나요?” 마을 입구에 있는 자그만, 이 섬에서 유일한 가게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젊은 안주인이 이런 저런 섬 사정을 들려주었는데 여름 한철 북새통을 이루다가도 겨울이면 발길이 끊겨 민박이나 식당도 문을 닫는다고 한다. 다만 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민박집은 이야기를 하면 묵을 수 있고 식사도 부탁할 수 있을 것이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든든해지니 그제야 저 멀리 산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호도에는 마을이 하나뿐이다. 뒷산이 당산.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호도에는 마을이 하나뿐이다. 뒷산이 당산.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이 곳 사람들이 ‘큰산재’라고 부르는 산이다. 그 산 아래로 내려가면 바닷가 절벽에 커다란 굴이 있다고 한다. 한 여름철 썰물 때면 굴에 들어가서 놀다 오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마을 바로 뒷산이 당산, 방파제를 내려다보는 산이 선배산. 작은 섬이지만 산들이 아기자기하게 제자리를 잡고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 가는데, 아! 갑자기 바다가 턱 나타나 길을 막는다. 드넓은 은빛 백사장에는 발자국 하나 찍혀 있지 않았다. 이곳 해변은 규사로 이루어졌다는데 고운 모래가 마치 분가루 같았다. 해변 양쪽은 절벽으로 닫혀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굴을 따서 바닷물에 씻어 바로 먹으면 꿀맛!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굴을 따서 바닷물에 씻어 바로 먹으면 꿀맛!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사실 도착해서부터 이 한적한 섬을 겨울여행지로 소개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는데 이 해변을 보고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밀려드는 파도만 보고 있어도 하루가 갈 법 했다. 다시 방파제쪽으로 오다가 굴을 따서 씻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한 바구니에 얼마냐고 했더니 잠시 망설이다 5천원만 내라고 한다. 자연산 굴 한 바가지에 5천원. 섬이 아니면 생각도 못할 값이다.

호도 주민의 생업은 어업. 어망 손질에 바쁘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호도 주민의 생업은 어업. 어망 손질에 바쁘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아주머니들은 이렇게 굴이나 조개를 채취하고 남정네들은 고기잡이를 한단다. 예전에는 벼농사도 했었던 듯 논밭의 형태가 남아 있는데 지금은 잡초들만 가득하다. 사실 한해 힘들게 벼농사를 지어 버는 소득보다 한 여름철 관광수입과 낚싯배 대여로 얻는 수입이 더 수지가 맞지 않나 싶다. 원룸식으로 대여하는 민박이 한 겨울철에도 하루에 5만원. 공동욕장을 쓰는 민박이 3만원이니 말이다.

크지 않은 섬이지만 당산에도 올라보고 선배산 밑에 있는 전교생 7명인 분교도 둘러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녹도를 거쳐 외연도까지 갔던 배가 돌아올 시간이다. 뜻 맞는 일행이 있다면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며 하룻밤 묵었으면 좋으련만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방파제 선착장에 도착하니 배가 벌써 와 있다.

겨울철에는 하루에 한번 배가 드나든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겨울철에는 하루에 한번 배가 드나든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주말이라 그런지 뭍으로 가는 승객이 많아 돌아오는 길은 적적하지 않아 좋았다. 고작 두 시간 남짓이지만 혼자 돌아다닌 시간이 쓸쓸했나보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런 면에서 대천해수욕장은 겨울 바다를 만나기에 좋은 장소였다. 대천항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바로 해수욕장이 나온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백사장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가족, 연인, 친구 끼리끼리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가끔씩 불꽃놀이 폭죽이 피어오른다.

겨울 낭만의 바다, 대천해변.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겨울 낭만의 바다, 대천해변.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모터보트를 타고 해안선을 달리는 사람들, 마차를 타고 해변을 달리는 가족들. 얼굴 하나 가득 웃음꽃들이 가득하다. 묘한 것이 예전부터 있던 횟집촌은 황량한데 새로 형성된 바다가 보이는 횟집촌은 사람들이 도심 한복판처럼 붐빈다는 것이다. 처음엔 무슨 행사나 축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횟집촌 뒤로 모텔과 노래방, 조개구이 집들도 무수한데 새로 지은 건물들이라 깔끔하다.

이 달의 섬으로 호도를 기획할 때 의도가 ‘한적한 섬 마을에서의 오붓한 하룻밤’이었다. 막상 가보니 그러기에는 너무나 한적하고 편의시설이 없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저녁 조용히 머리를 식히는 뜻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지만 강권할 수는 없는 일.

대천 해변은 가족끼리 와서 폭죽을 터뜨리거나 마차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대천 해변은 가족끼리 와서 폭죽을 터뜨리거나 마차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좀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여행자라면 호도를 둘러보고 나와서 대천해수욕장에서 하루 묵는 일정을 잡는 것도 좋을 듯. 겨울 밤바다에서 폭죽도 쏘아 올리고 조개도 한바구니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면 긴 겨울밤도 짧게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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