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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자연사랑여행] 한 겨울에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양평 윤희생태학교
[자연사랑여행] 한 겨울에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양평 윤희생태학교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02.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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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양평 윤희생태학교 풍경.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양평 윤희생태학교 풍경.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양평] 겨울 빈 논을 보며 한여름 무성하게 자라는 벼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나뭇가지에 매달린 자그만 번데기에서 어떤 모습의 나비가 날아오를지 아는 사람. 우리의 아이들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야, 봄에 오면 대단하겠는데?” 강가의 황량한 들판을 둘러보던 푸름이 아빠의 첫마디이다. 뭐가 있어서 그리 대단할까? 기자 역시 주변을 둘러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추위에 떨고 있는 앙상한 나무들뿐이다. 허브가 자란다는 화단은 어수선하고 저 멀리 강가로는 갈대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을 뿐이다. 봄이 왔을 때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는데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선입관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윤희생태학교 김윤희 원장이 '개미의 전쟁'에 대해 설명해준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여왕개마가 다른 불개미 집단을 넣었더니 10일 만에 한쪽 불개미 집단이 다른 쪽을 점령했다고 한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윤희생태학교 김윤희 원장이 '개미의 전쟁'에 대해 설명해준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여왕개마가 다른 불개미 집단을 넣었더니 10일 만에 한쪽 불개미 집단이 다른 쪽을 점령했다고 한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개미귀신이 지나다닌 흔적.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개미귀신이 지나다닌 흔적.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양평 윤희생태학교를 처음 소개 받았을 때 대뜸 ‘봄에 가야겠네’라고 생각했다. 나비가 날고 온갖 꽃들이 날아다니는 광경이 머리 속에 펼쳐졌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생태란 게 뭔가. 삶이란 봄 여름 가을 겨울 한순간도 쉬지 않고 흐르는 것 아닌가.

마른 잎사귀 하나 남지 않은 겨울나무지만 죽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꽃은 시들고 잎은 말라비틀어졌지만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푸름이 아빠에게는 그게 보인 것이다. 머리 속으로 이치를 따지고 나서도 보이지 않는 봄의 모습을 대뜸 가슴으로 느끼는 것. 그 차이가 참으로 크게 다가왔다.

아빠가 지닌 자연에 대한 ‘느낌’은 푸름이, 초록이에게 그대로, 거침없이 전해진다. 나비 장수하늘소 등등을 비롯한 각종 곤충과 두꺼비 등이 유리상자에 담겨있는 전시공간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이 녀석들이 어디 갔나?” 라고 중얼거리던 푸름이가 못내 아쉬워한다. “다 흙 속에 들어가 있어 보이지 않아요. 하긴 겨울잠을 자야하니까…”

곤충전시관에서 나비 번데기, 장수풍뎅이, 애벌레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곤충전시관에서 나비 번데기, 장수풍뎅이, 애벌레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그러고 보니 생태학교 전체가 겨울 잠을 자는 듯 했다. 나비생태온실에는 지금은 바싹 마른 화초 줄기뿐 적적하다. 장수풍뎅이가 산다는 생태관도 겉에서 보기엔 흙밖에 보이지 않고 수생식물 군락지는 푸름이와 초록이가 미끄럼 타는 놀이터가 됐다. 닭과 거위, 청둥오리와 염소 토끼들만이 추위에도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비표본전시관의 호랑나비. 오른쪽 나비는 봄 나비, 왼쪽 큰 나비는 여름 나비다. 같은 호랑나비라도 철에 따라 몸집이 다르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나비표본전시관의 호랑나비. 오른쪽 나비는 봄 나비, 왼쪽 큰 나비는 여름 나비다. 같은 호랑나비라도 철에 따라 몸집이 다르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생태학교가 있는 곳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치는 곳. 양수리 두물머리 강가에 있다. 1만8천평의 대지 가운데 1만5천평이 각종 식물과 곤충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조성되어 있다. 홈페이지에는 온실로 된 전시공간이 있어 일년 내내 나비와 곤충, 파충류를 관찰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3년을 준비해서 올 4월에 개장해서 가을까지 운영했는데 너무 힘에 부쳐 올 겨울은 사실상 휴관 상태입니다. 개선해야 할 점도 눈에 띄고, 새로 꾸며야 할 곳도 많은데 일손이 달려 이번 겨울은 생태학교도 동면중이죠.” 김윤희 원장은 자연생태교육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그리고 중요한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수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 봄 여름이면 연꽃을 비롯해 온갖 수생식물들이 만발한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수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 봄 여름이면 연꽃을 비롯해 온갖 수생식물들이 만발한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가만 이야기를 듣다보니 푸름이네 교육법을 이야기 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보니 푸름이 아빠와 엄마, 그리고 원장님 세 분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푸름이를 보고 보통 영재와 다르다고 해요. 공부만 잘하는 영재가 아니라는 거죠. 우리 가족은 아이들을 데리고 강가에 자주 나갔는데 거기서 다양한 자연을 만날 수 있었죠. 책에서 보고 자연에서 확인하고…. 그게 우선이었습니다.”

“그렇죠. 아이들은 그릇을 만들어주면 스스로 담을 수 있어요.” “푸름이가 영어를 시작한 지 3년인데 학원 한번 다니지 않았지만 25년을 영어공부한 저보다 낫습니다. 교육이란 건 어학, 수학 등등 낱개가 아니라 그 모든 분야가 하나로 연결된 전체입니다. 푸름이는 책에서, 그리고 자연에서 그런 교육을 받았죠.”

“맞아요. 자연을 관찰하고 자란 아이들은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그런 다음 다시 흙속으로 돌아가 다음해를 기다리는 순환을 머리가 아닌 눈으로,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교육이죠.”

장수풍뎅이 사육장. 여름에 오면 들어가서 관찰을 할 수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장수풍뎅이 사육장. 여름에 오면 들어가서 관찰을 할 수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학원 위주의 사교육 광풍이 휩쓰는 요즘 자연생태교육의 길을 걷는 동지를 만났다는 반가움에서인지 대화가 멈추지 않는다. 푸름이와 초록이에게 작은 나무토막과 잔가지, 풀을 주었는데 푸름이는 항공모함을 초록이는 곤충을 만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짧은 겨울 해는 뉘엿뉘엿 강 너머 산으로 내려가고 있다.  

Tip. 윤희생태학교 가는 길
양수리를 찾아가면 마을 중간쯤에 신양수대교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로 쭉 들어가 신양수대교 바로 밑에서 우회전하여 30m 정도 가면 오른 쪽에 윤희생태학교 간판이 보인다. 신양수대교 바로 밑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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