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성지순례]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 당진 솔뫼 성지
[성지순례]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 당진 솔뫼 성지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4.02.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솔뫼 성지 북쪽 소나무 숲 위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솔뫼 성지 북쪽 소나무 숲 위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여행스케치=당진] 한국 최초의 사제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 성지. 이곳은 성인이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내다 조부(김택현)를 따라 용인 골배 마실로 이사가기 전 일곱 살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한국 천주교 사회에서 신앙의 못자리라고 하는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 이라는 뜻. 이토록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성지는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라는 작은 마을에 있지요. 하얀 정문을 들어서자 왼쪽으로 곱게 깎인 잔디밭이 있고, 잔디 언덕 위에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그 고운 잔디밭이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터랍니다.

피정의 집 지붕에서 본 솔뫼 성지 전경. 소나무 숲과 잔디밭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피정의 집 지붕에서 본 솔뫼 성지 전경. 소나무 숲과 잔디밭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생가터를 지나서 가는 눈발을 맞으며 짙푸른 솔밭 사이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솔밭 끝에 우뚝 서 있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보기 위한 발걸음이었지요. 울창한 숲에서 어린 소년들이 콧물을 훔치며 뛰놀고 있었습니다. 2백년 전에도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있었겠지요.

찬바람이 불고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성지를 감싸고 있었지만, 솔밭 길을 걷다보니 왠지 포근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천주교도들이 신앙의 못자리라고 평하는 탓이 아닐까요. 산책로처럼 꼬불꼬불 만들어진 숲길을 걸으면서 이곳에서 초창기 한국 천주교가 새싹을 움틔웠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김진후. 1814년 순교), 종조부(김한현. l816년 순교), 부친(김제준. 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 등 4대에 걸친 순교자들이 살던 곳입니다. 어떻게 해서 김씨 일가는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으며 목숨을 던져 신앙을 지키려 했을까? 왜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을 몰살하겠다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낸 것일까?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 키가 크고 미남이었으나 몸은 약한 편이었다고 한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 키가 크고 미남이었으나 몸은 약한 편이었다고 한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가 면천(지금의 당진군) 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이존창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곧 벼슬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이곳 솔뫼는 교우촌이 되었지요. 두 사람의 친교가 얼마나 깊었는지 김진후의 아들과 이존창의 질녀를 결혼시켜 사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791년 박해의 회오리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지요. 김진후는 전주 홍성, 공주 감옥에 갇혔다가 출소하였지만, 1801년 신유박해 때 또 귀양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존창은 신유박해 때 사형선고를 받고 공주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황새바위에서 참수당했답니다. 나이가 열다섯이나 아래인 이존창이 일찌감치 사형당한 것은 그의 영향력이 그토록 컸던 탓이겠지요.

솔뫼 성지는 김대건 신부와 부친, 조부, 증조부가 살던 생가터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솔뫼 성지는 김대건 신부와 부친, 조부, 증조부가 살던 생가터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김진후는 그 후 귀양에서 돌아왔지만 1805년 또다시 붙잡혀 해미 감옥으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10년간 옥중 생활을 하던 중 1814년 마침내 76세를 일기로 순교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 뒤 김대건 신부가 태어났고, 일곱 살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답니다. 소나무 동산에서 뛰놀았을 소년의 얼굴이 여행객의 눈앞에 스쳐갔습니다.

당시 김씨 일가가 살던 집은 99칸이나 되는 큰집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우물과 집터만 남아 있더군요. 솔뫼에서 대대로 명망이 높았던 가문이었지만 김진후(증조부)가 15년간이나 옥중 생활을 한 까닭에 가세가 기울어 신앙을 지키고 살기도 어려웠답니다.

셋째 아들 한현은 부친이 옥중에 있을 때 경상도 안동으로 피난을 갔다가 붙잡혀 1816년 대구 감영에서 순교했고, 둘째 아들 택현은 1827년에 그의 아들 제준과 손자 대건 등을 데리고 경기도 용인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를 갔습니다.

성지 동쪽 마당에 있는 모자상.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성지 동쪽 마당에 있는 모자상.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오랫동안 뼈와 신앙을 키우며 살아왔던 집과 땅이 있는 고향을 떠나야 했던 김씨 일가의 피난길은 얼마나 서럽고 억울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오직 신앙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가 아니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김 신부의 부친 김제준은 기골이 장대하여 힘이 장사고, 얼굴이 아주 잘 생기고, 성실한 사람이었답니다. 선대의 신앙을 이어받은 그는 열심히 권면하고 가르치던 중 프랑스 출신 모방 신부를 만납니다. 1836년 6월 그가 몸담고 있던 ‘은이 공소’에 찾아온 모방 신부는 김제준의 아들 대건에게 해외 유학을 시키자고 권합니다. 사제로 만들기 위한 유학이었지요.

15세 소년 김대건은 그 길로 모방 신부를 따라 나섰는데 부자간의 마지막 작별이 되고 맙니다. 그 역시 1839년 기해박해로 체포돼 그 해 가을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것입니다. 마카오로 유학을 간 신학생 김대건은 1845년 8월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어 그해 10월 귀국합니다.

귀국 후 첫 사목지를 ‘은이 마을’로 정한 뒤 용인 일대에서 전교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김대건은 귀국한 이듬해 9월 새남터에서 25세라는 창창한 나이에 장렬한 순교로 일생을 마감하였습니다. 1814년 김진후로부터 김대건 신부까지 30여년 동안 김씨 일가는 4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한 것입니다.

솔뫼성지 피정의 집에 있는 성당.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솔뫼성지 피정의 집에 있는 성당.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솔뫼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 100주년을 맞은 1946년에야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었지요. 기념비를 세우고, 생가 터를 매입하여 김대건 성인의 동상과 탑을 건립하였습니다.

탄생 장소와 생가 터에는 아직도 김 신부가 어린 시절에 함께 어울렸을 법한 소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오른편 솔밭에는 김 신부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솔뫼의 역사를 보아왔을 소나무 몇 그루가 묵묵히 낯선 여행객을 보고 있네요. 소나무 숲 너머 산책로를 거니는데 ‘십자가의 길’이 나타났습니다.

솔뫼 성지 '십자가의 길'의 야외 기도처에 있는 예수상.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솔뫼 성지 '십자가의 길'의 야외 기도처에 있는 예수상.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십자가의 길'에는 예수님이 재판을 받고 싶자가에 못 박혀 사형당한 뒤 부활하기까지 과정을 15단계로 나눠 기도처로 꾸며 놓았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십자가의 길'에는 예수님이 재판을 받고 싶자가에 못 박혀 사형당한 뒤 부활하기까지 과정을 15단계로 나눠 기도처로 꾸며 놓았다. 2004년 2월. 사진 / 정대일 기자

예수님이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조롱당하고, 사형당한 뒤, 부활하기까지 과정을 15개 그림으로 장식하여 야외 기도처를 만들어 놓았더군요. 기도처를 하나둘 스쳐 지나가는 동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눈발이 좀더 거칠어지면서 귓불이 떨어져나갈 듯 추웠습니다. 피정의 집 사무실에 들러 따뜻한 차를 한 잔 얻어 마시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Tip. 솔뫼 성지 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 당진 IC-32번국도 예산방면 -> 합덕 방면 -> 우강면 송산리, 예산 -> 32번 국도 -> 합덕읍내 -> 우강면 송산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