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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자연사랑여행] 비봉산 넓디 너른 골짜기, 너리굴 문화마을을 찾아서
[자연사랑여행] 비봉산 넓디 너른 골짜기, 너리굴 문화마을을 찾아서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04.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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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너리굴 문화마을 전경.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너리굴 문화마을 전경.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안성]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너리굴 문화마을 입구에서 새삼스레 중얼거렸다. 경기도 안성 비봉산. 나지막한 산자락이 널따란 골짜기를 만들고 그 안에 나무와 돌로 만든 집들이 군데군데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다. 푸름이네가 자연과 예술이 어울려 산다는 마을을 찾았다.

엄마 목장? 한적한 국도를 따라가는데 불쑥 튀어나와 시선을 잡는 표지판이 있다. ‘너리굴 문화마을’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 아래 ‘엄마 목장’이라고 부제처럼 달려있는 설명.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낯선 곳에서 느닷없이 만난 ‘엄마’라는 어감의 정겨움, 그리고 왠지 모를 쑥스러움. 그러나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엄마는 원래 어디에나 있는 존재니까.

금속공방. 이렇게 각종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되어 있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금속공방. 이렇게 각종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되어 있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원래 목장이었다고 한다. 임계두 원장이 젖소 두 마리를 끌고 들어와 돌집을 지은 게 지난 1973년.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젖소가 사슴으로 바뀌었고, 돌집은 커다란 통나무집들로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이 한적했던 골짜기가 아이들로 북적인다는 것. 미술관과 도예 공방, 금속 공방, 조각 공방, 소조 공방 등 실습을 통한 산교육을 할 수 있어 학생 단체들이 많이 찾아온다.

이 날도 단체로 찾아온 수백 명의 학생들이 와글와글 거리며 목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물을 기르던 목장이 자연과 예술에 대한 아이들의 감성을 일깨우는 ‘목장’으로 바뀐 것이다.  

도자기를 빚으면 한꺼번에 구워서 보내준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도자기를 빚으면 한꺼번에 구워서 보내준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석고 신체 캐스팅을 하는 조소 공방에 들어가니 한쪽 벽면에 갖가지 작품이 걸려있다. 손 모양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코, 입, 얼굴 등도 전시되어 있다. 일단 먼저 손 모양을 뜨는 게 순서. 석회 가루에 물을 반 정도 붓고 잘 저으면 석회반죽이 만들어진다. 이 반죽을 손이나 입술 등 원하는 모양 위에 붓고 한 10분 기다리면 굳는다.

석회반죽으로 뜬 본을 잘 손질하는 모습.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석회반죽으로 뜬 본을 잘 손질하는 모습.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사포질로 면을 부드럽게 다듬는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사포질로 면을 부드럽게 다듬는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손에다 석고 반죽을 덮은 푸름이와 초록이, 입은 쉬지 않는다. “미국의 한 미술대학생이 가난해서 석고상을 살 돈이 없었대요. 그래서 직접 만들려고 석회 반죽에 풍덩하고 들어갔는데…하하. 글쎄, 그게 아주 단단한 공업용이었다나 봐요. 그래서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됐는데 나중에 그걸 깨는데 이틀이나 걸렸대요. 하하하….”

자기가 말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들썩거리는 푸름이. “형아, 움직이지 마. 모양이 이상해지잖아” 초록이가 걱정을 한다. 모양을 뜬 본에 이탈제를 바르고 그 위에 다시 석고 반죽을 붓고 기다리면 끝. 완성된 손 모양에 색깔을 입히고 액자에 담으면 훌륭한 장식품이 된다.

석고 캐스팅의 대상은 손, 입, 얼굴 등 다양하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석고 캐스팅의 대상은 손, 입, 얼굴 등 다양하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체험은 석고로 하는데, 가족들이 와서 장식용을 만들어 달라고 할 경우에는 수지로 만들어 드립니다. 떨어져도 깨지지 않거든요. 대신 화공약품을 다루어야 하니까 어린아이들 체험으로는 적당하지가 않지요.” 석고 캐스팅 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정민영 선생님은 월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출근을 한다. 너리굴 문화마을의 체험프로그램은 휴관일 외에는 항상 운영을 하므로 언제든지 와서 체험을 할 수 있다.

곤충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은 지나칠 수 없는 곤충관.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곤충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은 지나칠 수 없는 곤충관.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미술 체험 외에도 물로켓이나 열기구, 플러버를 만드는 과학교실, 곤충을 관찰할 수 있는 곤충관이 있고, 토끼, 오리, 거위 등의 동물농장도 있다. 단체 수련활동을 위해 공연과 세미나, 회의를 할 수 있는 강당과 3개의 운동장, 야외 공연장 및 수영장, 서바이벌 게임과 체력단련을 할 수 있는 모험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어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체험마을이다.  

단체는 물론 가족들이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콘도 수준으로 잘 되어있어 주말이면 인근 대도시에서 가족들이 찾아와 하루 묵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비봉산 산책로를 따라 숲길을 걸어도 좋고 미리내 천주교 성지, 고려시대 지은 청룡사, 장어구이로 유명한 금광호수, 안성천문대와 서일농원, 청학대 미술관 등 안성 지역의 관광명소들을 둘러볼 거점으로 삼기에도 적당하다.

숙소에서 취사를 할 수 없지만 바비큐 식당, 카페, 대식당 등이 있어 불편함이 없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숙소에서 취사를 할 수 없지만 바비큐 식당, 카페, 대식당 등이 있어 불편함이 없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배고파, 국수 먹고 싶어.” 키가 부쩍 크는 요즘 푸름이는 하루 여섯 끼를 먹는다. 점심 먹고 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배고프다며 문화마을 안에 있는 카페 고메에서 국수를 시켜 먹었다. 그 사이 코코아, 번데기 등 주전부리를 시켜 놓고 통창 너머로 안성 들판을 내다 보았다.

들판엔 어느새 봄기운이 어려있다. 이번 겨울동안 푸름이네 식구는 부지런히 일도 많이 했다. 아빠는 책을 한권 썼다. 배려를 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키워야 합니다.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결국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거죠. 그런 생각을 모아 쓰다보니 책이 됐어요.”

대강당이 있는 숙소. 세미나와 공연장으로 쓰인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대강당이 있는 숙소. 세미나와 공연장으로 쓰인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푸름이도 자기가 좋아하는 ‘공룡’을 주제로 뭔가를 썼다고 했는데 좀더 자세히 물어보려 했더니 아빠 엄마가 말린다. 푸름이는 신났는데 아빠 엄마의 표정이 묘해, 뭔가 속사정이 있나보다 하고 나중에 물어보기로 했다.

‘처음 여기올 때 엄마 목장이라고 해서 좀 웃겼거든요, 근데 3박4일 수련 와서 이틀 밤 자고 나니까 왜 엄마 목장이라고 했는지 알겠어요. 밤에 잘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나니까 엄마목장인 거예요. 하지만 낮에는 엄마 생각 별로 안나요. 친구들이랑 노느라고요.’ 팸플릿을 뒤적이다 이 곳을 다녀간 여자 아이가 써놓은 글을 읽고 한참 웃었다.

컴퓨터 게임 하느라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고 아들 걱정을 잔뜩 늘어놓던 이가 있었는데 답을 해줄 말이 생겼다. “한 2박3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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